위로도 해주고, 이해도 해주고, 밥도 사준다. 같이 아파해주고 눈물도 흘려주고, 연대해서 싸워주기도 한다. 거대 권력에 힘없는 개인의 신분으로 맞서야 하거나 세상의 무관심과 싸워야 할 때, 남들이 아무리 위로해 주더라도 힘들고 어려울 뿐이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남는다. 억울함을 밝혀내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끝까지 싸우는 것도 응원받을 수 있고, 갖가지 문제로 싸움을 계속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비난받지 않는다. 포기조차 격려를 부른다.
2번은 골 때린다.
이미 일은 다 망했다. 일이 그 지경이 되도록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본인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안다. 심지어 뭘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알려줘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본인은 억울하기만 하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너네는 내 입장이 아니니까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억울한데, 비난의 화살까지 온몸으로 맞아야 되니 더 억울하다.
특히, 어떤 조직의 리더가 이따위 생각을 하고 앉아있으면 그 조직은 그냥 파멸이다. 저런 사람들은 대부분 싫은 소리가 들려오면, 비판이나 충언으로 생각하지 않고 본인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비난당했다고 생각해 노발대발 역정만 내기 때문에, 바른말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없고, 대부분 쫄짜 예스맨들만 끼고 산다. 대충 작은 조직만 이끌다가 커리어를 끝내면 아무 문제도 없는데, 이런 놈들 분들은 또 권력욕이나 명예욕은 어찌나 충만하신지, 옆에 있는 쫄짜들을 들들 볶으면서 어떻게 또 입신양명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다. (출세하는 길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듯) 심지어 남의 말 안 듣고 목표로만 돌진하는 성격이,추진력이나 승부근성 따위로 포장되면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을 가진 리더감으로 각광받기도 한다.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다면평가에서는 '사이코패스'라거나 '소시오패스'라거나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왜 이런 험악한 용어가 본인을 평가하는데 쓰였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또 억울해한다. 나도 따뜻한 마음이 있는데 어쩌고 하면서, 갑자기 평생 안 사던 커피를 사면서 환심도 사보려고 한다. 조직원들을 챙기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뽐내고자 노력해 본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서 금세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커피를 홀짝대며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면 죽는데, 저 인간 왜 저러나' 잠깐 그분의 생사를 걱정하던 조직원들은 '저 인간이 죽지는 않겠구나'하며 안도한다.
중요하고 거대한 조직의 수괴,우두머리 리더는 억울해할 틈이 없다. 억울해해서도 안 된다. 모든 조직의 통솔권과 결재권이 본인에게 있었는데, 일이 돌아가는 형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갑자기 성질을 내면서 남을 탓하거나 누군가를 겁박해서는 안된다. 그런 형편으로 일이 돌아가게 된 것도 다 본인 책임이다.
일이 다 어그러진 후에 리더가 내뱉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는 말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똑같은 대답이 지나간다.
"그걸 아직도 모르냐"
불행한 일이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거나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완고해진다. 듣기 싫은 소리를 점점 안 듣고 싶어 진다. 또한 그 말을 듣기 싫은 이유는 '맞는 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불행하다. 그래서 듣고 싶은 말만 듣고, 그런 소리 하는 놈들만 주변에 둔다. 점점 사람들이 안 만나준다. 불러주는 사람도 없다.
이런 분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가 다 조져놓고, 억울하다는 분들을!
<모두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내 인생 내 뜻대로 사는 용기>
이런 책만 잔뜩 읽고서는 더 이상 안 가져도 되는 미움받을 용기만 이빠이 풀충전 해놨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