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아프다 안 할 테니까, 더 좋은 대학 붙기를
지난주 금요일은 대학 수시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이어서 이번 주는 수시합격자 등록이 있고, 최초합격자 등록이 끝나면 추가합격자 발표가 난다.
고3 담임을 맡으면, 학급 학생 30명을 대학에 보내게 된다. 미친 듯이 상담을 해서 어떻게든 괜찮은 대학에 밀어 넣으려고 갖은 수를 써본다. 그래도 입시는 생물이라, 매년 다른 변수가 생기는 수시는 매번 예측이 어렵다. 안정권이라고 생각하고 냈지만 한 번도 못 맞춘 적 없던 수능 최저를 못 맞춰버리거나, 그나마 제일 경쟁률이 낮다 싶은 데를 골라서 냈더니 올해 그 과만 경쟁률이 터지거나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락이 결정되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이, 수시 입시도 학생과 부모와 학교와 컨설팅업체가 다 붙어서 난리를 쳐서 준비해도 운이 엄청나게 좌우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담임 입장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예쁜 학생의 입시 결과가 별로 안 좋으면 모든 것이 다 내 탓 같아서 마음이 한없이 불편하다. 반대로 성적에 비해서 좋은 대학에 붙어버리면, 그건 다 내 공 같아서 뿌듯하다. 우리반 아이들이 내 자식도 아니건만, 내 자식처럼 다른 반 아이들이랑 비교도 된다. 성적이 비슷한 다른 반의 학생이 우리 반 학생보다 더 좋은 대학에 붙어버린 경우는 슬그머니 질투심도 올라온다.
어쨌든 합격자 발표날은 학생이든,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두근두근 가슴 떨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초합격발표에서 합격의 기쁨을 맛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예비번호를 받고 기다리는 학생들 이 훨씬 많고, 합격한 학생들도 더 좋은 학교에 추가합격 되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 있다 보면 <노력은 결과를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증명되는 순간을 매순간 직접 경험한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붙고, 떨어지는 대입을 관찰하다 보면 <인생은 한방이다>라는 말이 더 실감 나는 순간이 많다.
"야.. 쟤가 저 대학을 떨어지네.."
"와... 저 인간이 저 점수로 저 대학을 가네.."
라는 순간이 교차됨을 느끼다 보면, <행운의 여신은 항상 준비된 자를 찾아온다>라는 것도 다 틀린 말 같기도 하다. 준비 안 된 놈들한테도 행운의 여신이 들이대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봤다. 대학 아니라 그냥 인생에서도.
다 떨어지고 꿈꾼 적 없는 재수생이 되어버리는 학생도,
모두가 미쳤다고 했던 우주상향지원 대학에 운 좋게 붙어 입이 찢어지는 학생도
다들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강력한 운명의 토네이도에 휩싸여 정신 못 차리긴 매한가지다.
수시에서 최종 위너는 <문 닫고 들어가는 마지막 추가 합격자>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좋은 학교에 가장 꼴찌로 '문 닫고' 들어가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식당 웨이팅처럼, 내 앞에 있는 누군가가 빠져나가야 내 순서가 되기 때문에 앞사람이 빨리빨리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선생님! 저 후보 7번이에요."
"오? 작년엔 9번까지 됐는데.. 되겠지?"
"제발요 ㅠㅠ"
"선생님! 저 이제 3번까지 올라왔어요."
"오. 대박 ㅋㅋ 야. 수만휘에서 너 앞에 누군지 찾아봐. 빨리 ㅋㅋ"
"지금 1명은 찾았는데 다른데 등록한대요."
"나머지도 찾아봐 ㅋㅋ 그리고 걔네들 더 좋은 대학 합격하게 기도해."
"네 ㅋㅋㅋㅋㅋ"
담임과 학생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 수만휘(수험생 커뮤니티)에는 "OO대 oo과 추합 가능성 있을까요" 글로 도배가 된다. 본인이 몇 번인데 무슨 학교 붙으면 등록 안 할 테니, 기도해 달라는 댓글도 달린다. 무슨 중고거래처럼.
부모님도 애가 탄다.
남의 집 자식 잘되는 꼴을 보면 그렇게 배가 아프고 샘이 나는데, 이 시기에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의 자식,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 자식 앞길 가로막고 있는 남의 자식이 더더더더더 잘 되길 손꼽아 기도한다. 요즘 자식이 재수길로 들어서면, 부모에게는 <징역 1년에 벌금 5천만 원> 형과 같다고 한다. 어디라도 원하는 대학에 한 방에 붙어버리면, 세상 이런 효자가 없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더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아이 앞에 있는 학생, 더 좋은 대학 가게 해주소서"
이렇게 다른 집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랐던 적이 있는가!
그것도 진심으로!
이 간절한 기도가 모이고, 돌고 또 돌아서
우리 자식들에게도 행운의 여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전국의 예비합격자들이여, 남 잘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시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합격이 선물처럼,
많은 이들에게 도착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