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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맘 Aug 29. 2020

아빠는 기장님, 엄마는 승무원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 중 소통에서 나왔던 개와 남편과의 공통점, 차이점을 기장님과 남편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다.


<기장님과 남편의 공통점>
1.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다.
2. 안 보여서 자꾸 까먹는다.
3. 제때 밥을 안 챙겨 주면 화를 낸다.
4. 가장 바쁠 때 밥을 달라고 한다.
5. 승객한테만 잘해주면 삐진다.
6. 문 닫고 들어간다.


< 기장님과 남편의 차이점>
1. 월급을 갖다 주지 않는다.(아빠가 기장이면 제외)
2. 비행이 끝나면 웬만해서 다시 보지 않는다.
3. 그의 부모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 일은 없다.
4. 나의 분신을 만들어 준다.







한 비행기에 탄 운항 승무원과 객실 승무원의 최우선 업무는 '승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는 것!'. 운항 승무원들은 비행기 제일 앞쪽에서 두꺼운 철문을 걸어 잠그고 보이지 않게 중요한 일을 한다. 그들이 없이 비행기는 절대 뜨지 못한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비행기에 기장님, 그들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기도 한다.



승무원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승객에게 '밥을 주는 일이다.' 그 안에는 운항 승무원에 식사를 챙기고 음료를 제공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보통 조종실 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는 승무원들이 그 업무를 담당한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담당 승무원은 비행 중 필요한 생수와 종이컵, 이어폰, 슬리퍼 등등 필요한 용품을 준비해준다.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얼음을 넣은 음료를 건네며 비행 전 긴장을 풀기도 한다. 승객과의 만남에서도 첫인상이 중요하듯 기장님과의 첫 만남에서 그날의 비행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비행 중 승무원의 시계와 운항 승무원의 시계는 너무도 다르다. 공항을 떠나 이륙을 하고 안전 고도에 도달할 때까지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좌석벨트를 매고  앉아 있는다. 비행기가 순항하게 되면 좌석벨트 사인이 꺼지고 승무원들의 쇼 타임이 시작된다. 우리가 앉아있는 그 시간. 그 순간이 기장님들에겐 비행 중 가장 바쁘고 어렵고 중요한 시간이다.



(기장님 인터뷰 ) 보통 이륙 5분, 착륙 8분을 마의 13분이라 부른다. 평균적인 전체 비행시간에서 이착륙이 차지하는 시간은 약 6%밖에 되지 않지만 항공기 사고의 70%가량이 이 시간에 일어난다. 이륙 시 항공기의 엔진은 최대 운용 한계에 가깝게 추력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한쪽에 엔진이 꺼지는 등의 이상 생길 수 있다. 좌우 날개 중 더 많은 추력을 내는 엔진 쪽이 몇 초 안에 비행기 방향을 활주로를 벗어날 정도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초 단위 내로 방향 유지를 하고 항공기를 무사히 하늘로 이륙시킨다.



그래서 이 어려운 일이 끝나고 안전 고도에 도달하면 기장님들은 긴장이 풀리고 배가 고프다고 하나보다. 기장님의 바쁜 시간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승무원들에 업무가 시작된다. 식사를 준비하고, 음료가 나가고, 특별식을 따로 챙기고, 식사 서비스, 티 커피 서비스, 면세품 판매, 화장실 정리, 입국서류 배포, 등등등 널뛰듯 바쁘다. 그래서 이륙하자마자 밥을 달라는 기장님의 주문이 반갑지만은 않다.



비행 전 합동 브리핑


비행 전 운항 승무원과 함께 하는 합동 브리핑 시간에 담당 승무원은 "기장님 식사는 언제 하실 거예요?? "를 꼭 물어본다. 하지만 승무원 중에는 항공성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많아 자주 깜빡한다. 정신없이 일하다 갑자기 떠오른다. '헉! 기장님 식사 깜빡했다. ' 일하느라 바쁜 걸 잘 아시기에 이해해 주고 넘어가기도 하지만 밥으로 삐진 사람을 달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좁고 답답한 조종실에서 유일한 즐거움인 밥시간만을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이 짠하기도 하지만 앉아서 편히 차려주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승무원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정기 안전훈련을 받는다. 이때 빠지지 않는 시간이 CRM이다. 운항승무원과 객실 승무원, 운항관리사분들과 함께 의사소통을 하는 시간이다.

<비행기 사고 이후 항공업계에 CRM(Crew Resources Management, 인적자원관리) 개념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그룹 멤버 간의 엄격한 상하관계가 그룹 간의 의사소통 및 정보교환을 방해하는 것을 보완,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을 내릴 때도 상호 간의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을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CRM은 항공 회사의 기초적인 안전 관리 방식과 훈련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 위키 백과 >

그동안 있었던 비행기 사고를 분석하고 공유를 한다. 만약 우리 비행기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고 발표하기도 한다. 비행기에서 사고가 나거나 위중한 환자가 발생하는 등등의 모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권한을 기장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종실에서 객실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기에 승무원과의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전훈련에서 많이 나오는 자율 토픽 역시 '기장님의 밥 타임'이다. 밥으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지……. 승객이나 기장이나 아이나 남편이나 시댁에서도 어디든 밥이 문제다. 밥으로 삐지기도 하고 밥으로 화해하기도 하는 건 땅이나 하늘이나 다 똑같다. 매년 교육을 통해, 비행 전 브리핑을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된다. 같은 공간에서도 보내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밥에 관한 기억에 남는 부부 싸움이 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4살이었던 큰아이가 "아빠가 밥 달라고 소리 질렀잖아 "라고 기억할 만큼 큰 소리가 났던 처음이자 마지막 (지금까지는) 사건이었다. 첫째 아이가 있어 산후조리원을 일주일만 예약하고 산모 도우미님을 집으로 모시고 조리를 했다. 예민한 둘째는 신생아 때부터 두 돌이 지나도록 한 시간마다 깨서 울었다. 위가 작은지 조금씩 먹으니 잠을 오래 잘 수가 없었다.



신생아가 하루 종일 잠도 안 자고 이모님이 퇴근하신 후에야 겨우 낮잠을 잤다. 너무 피곤해서 남편과 큰아이가 오는 줄도 모르고 아기와 같이 잠이 들어버렸다. 신랑은 퇴근 후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있던 큰아이를 픽업해 집에 왔는데 불도 다 꺼져있고 반겨주는 사람 없이 편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나 보다. "사람이 들어왔는데 인기척도 없고 저녁도 안 차려 놓고 뭐 하는 거냐고……. 이모님까지 불러줬는데 사모님인 줄 아느냐고!!! " 큰 소리에 깜짝 놀라 깨고 말았다.



겨우 아기를 낳은 지 열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속이 상하고 억울해서 더 큰소리로 펑펑 울고 말았다. 아이들도 많이 놀랐다. 남편도 아이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일도 힘들고, 큰애까지 챙겨 오느라 힘들었는지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배가 많이 고팠던 것 같다. 힘들고 배고픈 사람에게 이해와 자비를 바란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소리를 지르고 스스로도 많이 놀랐는지 바로 사과를 했고, 다시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해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칭찬할만했다.



기장님과 승무원도 같은 비행기 안에서 함께 일하지만 다른 시간, 너무 다른 업무를 하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기장님들끼리도 작은 조종실에서 일하다 서로 치킨을 먹겠다고 싸우기도 한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린다. 우리는 같은 배를 (비행기를) 탄 동반자이자 동업자이다. 이 비행이 끝날 때 까지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승객을 위해 이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입사 후 몇 달간 받았던 입사 교육처럼, 매년 받는 정기 안전교육, 보수 교육처럼 우리는 서로를 끊임없이 알아가고, 이해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한다.



더 해빙의 이서윤 작가는 전작 ' 내가 춤추면 코끼리도 춤춘다.'에서 '배우자를 가정이라는 사업체를 이끌어가는 동업자로 인식하기보다는 사랑의 감정을 앞세워 연인으로만 대할 때 결혼이라는 사업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서로 동업자와 연인이라는 두 가지 배역을 동시에 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결혼은 사랑으로 이루어졌지만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힘든 시간을 같이 겪어 나가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동반자로 팀으로 생각해야 한다. 서로가 없었다면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가끔은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스케줄이 달라져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되었다면, '우리의 VIP 진상 고객님' 우리의 아이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릴 수 있도록 즐비 안비. 즐겁고 안전하게 비행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우리 진상 승객들을 위해 열심히 달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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