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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맘 Aug 24. 2020

난 엄마처럼은 안 할 거야!

청개구리 딸 엄마랑 반대로 육아하기


"우리 딸 뉴욕 간다고?? 힘들게 또 뉴욕을 가?"


" 우리 딸이 엊그제 파리에서 왔는데 내일은 뉴욕을 간데 몸도 약한데 너무 힘들어서 걱정이야” 친구들만 만나면 일부러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식 자랑 찐하게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한항공 승무원이 돼서야 드디어 자랑스러운 큰딸이 되었다. “딸이랑 파리 갔다 왔어. 루브르 박물관 알지? 모나리자도 보고 에펠탑도 가봤다니까. 베르사유의 궁전은 진짜 멋있어. 다들 꼭 가봐 ” 비행을 가기 전엔 어디 간다고?, 다녀오면 어디 다녀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보는 엄마한테 "뉴욕이라고!! 뉴욕!! 뉴욕"을 짜증 내며 답하기 일쑤였다.


공항 가는 출근길은 항상 엄마 아빠가 번갈아 가며 인천공항 회사 앞까지 곱게 모셔다 주셨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자랑스러운 유니폼을 입은 딸을 옆자리에 태우고 가는 길이 두 분에게 가장 즐거운 드라이브였다. 덤으로 딸에게 받는 두둑한 용돈도 즐거움이었겠지.


사실 엄마에게 난 자랑스러운 딸은 아니었다. Y대학 대학원 석사, 해군 장교 출신 자랑스러운 남편. 며느리가 못 살고 못 배워 왔다고 구박하는 지독하게 못된 시어머니. 엄마는 자식을 통해 그 탈출구를 찾고 싶으셨던 것 같다. 교육에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셨고 나는 성적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은 엄마가 싫어서  엇나가기만 했다.


아빠 앞에서, 밖에서는 한없이 착하고 순한 엄마. 하지만 나에게는 팥쥐 엄마 같았다. 청소며 빨래며 집안일은 온통 내 차지였다. 항상 일을 했고, 아이 셋을 혼자 키웠으니 힘들었겠지. 엄마가 오시기 전 집을 치워놔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놀다가도 같이 빨래를 개기도 했다. “동생처럼 공부를 잘했으면 내가 일을 시키겠니?” 동생이 둘이나 있었지만 언제나 집안일, 가게일은 내 차지였다. 나는 밖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어딘가에 따뜻하고 착한 진짜 우리 엄마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난 이런 엄마가 되고 싶다.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엄마

사랑한다고 매일 얘기해 주는 엄마

편하고 재밌는 엄마

기다려 줄 수 있는 엄마

아이에게 긍정적인 대화를 해주는 엄마

과정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엄마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는 엄마

육아나 집안일에 부담 주지 않는 엄마

경제적인 부담을 ‘절대’ 주지 않는 부모





처음 엄마가 되서는 엄마처럼 안 하는 것이 나의 육아의 모토였다. ‘육아’라는 말이 나오는 책이나 강연, TV 프로그램에서 ‘애착 형성’의 중요성을 말한다. 몇 권에 육아 관련 책을 읽고 강연을 찾아 들으며 육아 선무당이 되었다. 나는 엄마와 애착 형성이 잘 안되었구나. 필요한 사랑을 제때 충분히 받지 못했구나. 스스로 애정결핍이 있다고 생각하고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아이는 처음 태어나 엄마라는 세상을 만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 전부가 엄마인 줄 알고 산다. 태어나서부터 3년쯤은 (동생이 태어나기 전)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바쁘고 무서웠다. 특히 첫째인 나에게 유독 높은 기준을 가지고 엄격하게 대하셨다. 친구들이 엄마와 반말을 주고받는 게 부러워 용기를 내 엄마에게 반말을 했다가 “내가 네 친구인 줄 알아??” 하고 엄청 혼났었다. 엄마는 바빠서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대신 학원을 충분히 보냈다.



4살 때 한국무용을 배웠다. 몸치 중에 몸치. 무용 학원에 가기 싫어서 매일 울었다. 6살쯤엔 피아노를 시작했다. 10년 동안 피아노를 쳤는데 손가락을 볼펜으로 때리던 무서운 선생님만 생각난다. 어찌나 무서웠던지 선생님이 피아노 괴물로 변하는 악몽을 꿨는데 오래전에 꾼 꿈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미술학원, 선생님은 다른 걸 배워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윤선생 영어는 아침마다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선생님의 전화가 모닝콜이었다. 유명한 단과학원들과 수학 소수 과외, 영어 특별반 등등할 수 있는 모든 사교육 체험을 했다.



엄마들의 영원한 멘트 "우리 아이가 하면 잘하는데 욕심과 끈기가 없어요." 원치 않는 사교육, 학습 의지가 없는 아이에게 맞지 않는 교육은 엄마의 욕심일 뿐이었다. 호기심과 학습 욕구를 완전히 꺾어 버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아이가 되었다. 좋아하던 책 읽기도 놓아버리게 된 계기가 있었다. 독서논술 학원을 다니며 매주 두 권씩 정해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퀴즈를 풀게 했다. 그다음부터는 책도 읽기 싫어졌다.



사춘기 시절 어긋난 엄마와의 관계는 아이를 낳고도 회복하기 힘들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최선을 다했다. 못 따라온 네 잘못이다!라고 했고, 돈은 돈대로 쓰고 원하는 결과가 없으니 나는 실패한 실망스러운 딸이 되었다. 취직을 하고 승무원이 돼서야 자랑스러운 엄마 딸이 되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참 멀게만 느껴졌다. 좋은 결과만이 엄마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래서 내가 선택한 육아 방법은 엄마랑 무조건 반대로 가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엄마, 사랑한다고 매일 얘기해 주는 엄마, 편하고 재밌는 엄마, 늦어도 기다려 줄 수 있는 엄마, 아이에게 긍정적인 대화를 해주는 엄마,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엄마,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는 엄마, 육아나 집안일 부담 주지 않는 엄마, 경제적인 부담을 ‘절대’ 주지 않는 부모



엄마랑 반대로만 하고 있지만 아이를 둘을 낳고 첫째 아이가 9살쯤이 되니 엄마가 조금 이해가 간다. 엄마는 항상 "너네는 좋겠다. 엄마가 젊고 예뻐서"라고 하셨다. 연세가 많으셨던 외할머니는 엄마가 고등학생 때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23살 꽃 같이 어린 나이에 결혼해 호랑이보다 무서운 시부모를 10년 넘게 모시고 살았다.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되서야 지하 셋방을 얻어 겨우 분가를 했다.



언젠가 명절에 찍은 행복한 가족사진이 기억난다. 나는 예쁜 노란색 깨끼 한복을 입고 할머니 할아버지 없이 우리 가족끼리 단란하게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는 사진. 난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할머니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명절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엄마에게 기름병을 던졌고 머리에선 피가 철철 났다. 병원에 가서 머리를 꿰매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명절에 유람선을 타러 한강에 갔다.



 아픈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떤 일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하게 태어난 동생은 돌도 되기 전 몇 번에 큰 수술을 했다. 언젠가 엄마가 썼던 병상일기를 본 적이 있다. 눈물로 쓴 일기에는 동생과 엄마가 병원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이 있었다. 6개월 된 아기는 더 이상 주사를 꼽을 혈관을 찾을 수 없어 머리를 밀고 머리에 링게를 꼽고 있었다. 26살 엄마는 참 어리고 예뻤다. 큰 아이를 낳고 첫 접종인 BCG를 맞추러 간 날 주사를 맞고 우는 아이를 붙잡고 있다 나도 눈물이 펑펑 났다. 주사를 맞히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그 큰 수술들을 엄마랑 동생은 어떻게 견뎌 온 건지. 항상 얄미운 동생도 딸아이 둘을 낳고 나니 조금 이해가 간다.



우리 엄마는 60이 다 되어도 항상 우아하고 예쁘다. 나랑 다르게 참 하얗고 피부도 광이 난다. 누가 봐도 부잣집 사모님 같은 우리 엄마. 난 어렸을 때 엄마가 백설공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 사업이 망한 후로 식당 일에, 요양보호사, 간병인, 회사 급식소, 휴게소 음식점 등등 진짜 힘든 일만 골라서 하는 엄마.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엄마.


엄마인지 할머니인지 오해받는걸 제일 즐기는 우리 엄마






내가 아이들 키우는 거 보고 엄마가 너희들 키울 때 여유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한다.  너처럼 애들 못 키운 것 같다고 잘한다고 애쓴다고 칭찬도 잘하는 우리 엄마. 이제서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리를 키웠다는 걸 알 것 같다. 엄마가 견뎌온 그 시간. 엄마 덕분에 우리는 계속 잘 크고 있다.


 나의 목표는 엄마처럼 딸 둘을 우리처럼만 잘 키우고, 엄마처럼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참 좋다. 난 엄마의 자부심이니까 더 멋지게 잘 살아야겠다.


 고마워요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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