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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맘 Aug 09. 2020

엄마 준비는 왜 취직 준비처럼 안 하지?

엄마 준비


코로나 이후로 엄마에 역할은 더 진화하게 되었다. 전쟁통에도 학교는 갔다고 하던데... 엄마들은 아이의 전 과목 선생님 역할까지 부여받았다. ‘학교는 급식실이라도 있지’.'학교는 몇 번이나 갔다고 방학인 거야?'

엄마가 하는 업무는 어디까지일까? 온 가족의 코디네이터, 개인 비서, 청소, 빨래, 육아, 식사, 교육, 의료, 재정관리, 부모님, 친구 관리, 학부모들과의 교류 등' 엄마가 빠지는 일이 또 있던가?'


엄마가 되면 벌어질 일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했을 뿐 제대로 준비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남들도 다 하는 일’,‘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다들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나만 부족하고 징징거리는 이상한 엄마인가?"취직 준비를 할 때는 고작 직업을 하나를 갖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몇 년간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고 유학도 가는데 왜 엄마라는 직업은 준비도 없이 그냥 하는 거지?


승무원을 준비했던 순간은 다른 세상에서 날개라도 얻어와야 하는 투쟁과도 같았다. 나라는 사람을 '승무원'이라는 열쇠 구멍 속에 맞추기 위해 외모부터 말투 행동까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어려서부터 승무원이 되는 게 꿈이었던 사촌 언니는 항공 운항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엔 미인대회에 나가 갈비 아가씨 '진'이 되어 가문에 영광이 되어주었다. 꿈이 없나는 하루종일 소설책이나 읽으며 이어폰을 끼고 책상에 엎드려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들었다.


학교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도왔다. 처음에는 경양식 레스토랑을 갈빗집을 호프집을 운영하셨다. 가게 오픈 준비부터, 알바 구하기, 직원 관리 등…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밥 주는 일에 재능이 있다는 걸’ , '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사람 대하는 걸 잘한다는 것을'


손님으로 오셨던 아빠 친구분께서 졸업하고 승무원이 되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해 주셨다. 승무원은 나랑 먼 얘기인 것 같았다. 막연히 영어를 잘해야 될 것 같아 졸업을 하면 어학연수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장사는 거의 망하고 있었고, 아빠 사업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캐나다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요!"  딸이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말을 처음 들은 엄마는 굳은 마음으로 화장실 천장에 숨겨 놓았던 전 재산과 다름없던 현금 천만 원을 꺼내 주었다. 그동안 엄마 일을 도와준 퇴직금이라고 했다. 그 돈으로 캐나다 밴쿠버를 가게 되었다. 공항을 갈 때는 에쿠스를 타고 갔는데 돌아와 보니 집도 차도 많이 작아져 있었다. 밴쿠버에서 신랑을 만나게 되었고, 승무원이 되었고, 든든한 큰딸 노릇을 하게 되었으니 우리 엄마 투자 한번 제대로 했다.



꿈이 생기고 나서부터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꿈’을 외치는구나 생각했다.

그때는 승무원이 되려면 학원을 꼭 가야 되는 줄 알았다. 더 이상 용돈을 받을 수 없는 집안 사정에 백만 원이 훌쩍 넘는 학원비를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내레이터 모델을 하면서 간단한 통역과 VIP 의전 업무 등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기업 가족 행사에서 선물을 나누어 주는 일, 통신사 신제품 홍보를 위한 룰렛 게임, 뿅 망치 게임 진행을 했다. 크리스마스엔 산타 아가씨가 되기도 했다.

산타 아가씨 시절


처음으로 지원했던 대한항공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고 우울한 마음으로 대학로에 갔다. 어느 화장품 가게 앞에서 새로 나온 향수 시향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어떤 아주머니께서 멀리 신호등을 건너오셔서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아니~ 대한항공 승무원 같은 언니가 왜 이런 길바닥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라고 해주셔서 눈물이 울컥 났다. 그 아주머니 뭔가 보는 눈이 있으셨나 보다.


첫 지원에서 임원까지 얼떨결에 가게 되어 기대를 너무 많이 했었는지 인생에 첫 탈락이라는시련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의기소침해서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네가 한 번에 붙어서 의기양양한 꼴을 내가 어떻게 보겠냐 잘 됐구먼!!!” 하며 깔깔 웃어 주었다. 같이 웃고 있었는데 눈에는 미스코리아처럼 눈물이 흘렀다.


아시아나는 실무면접을 붙어놓고 윗몸일으키기를 못해서 체력에서 떨어지는 웃지 못할 일이 생겼다. " 체력 불합격으로 떨어진 사람 여기 있어요!" 학창 시절 항상 체력장에서 5급을 맡아놓았다. 달리기는 한번 빼고 꼴등을 놓친 적이 없던 나였다. 결국 헬스장에서 PT까지 받으며 체력테스트 준비도 병행했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외모와 서비스 마인드 어학실력뿐만 아니라 ‘체력’도 중요하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계속 실패를 하다 보니 부모님도 마음이 조급해지셨다. “누가 그러는데 학벌이 안 좋아서 그런대~”, “영어를 못해서 떨어진 거라며? ” “든든한 백이 없으면 힘들대”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실패와 좌절의 시간을 보내면서도승무원이 되는 걸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도 신기하다.


백수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학원에 가서 선생님들을 뵙기가 부끄러워졌다. 스터디룸 빌리는 것도 돈이 아까웠다. 이동시간이라도 줄이기 위해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스터디 멤버를 찾게 되었다. 운이 좋게 딱 맞는 멤버들을 만났다. 집에서 면접 스터디를 하며 부모님들께 면접관 역할을 부탁드리는 오순도순 즐거운 스터디를 만들었다.


우리는 ‘슬기로운 백수생활’ , ‘슬기로운 취준생 생활’   했다. 평일 점심특선 먹으러 다니고, 면접 답변을 만든다고 최신 영화도 챙겨 보고 (추억의 명화 "드림걸스") 인천대공원으로 벚꽃놀이도 가고 놀고먹으며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스터디에서 만난 여성스러움이 뼛속까지 배어있는 친구를 만난 후 그동안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난 말을 너무 잘하고 똑 부러지게 정답만 얘기하고 있었다' 실무 면접에서는 보이는 것들 '외적인 이미지, 자세, 목소리, 태도'를 본다고 한다. 임원 면접부터는 당장 비행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승무원 같은 사람을 뽑는 것 같았다. 이전에 나라면 '승객과 내 말이 맞다고 싸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친구처럼 말투를 여성스럽게 바꾸는 연습을 시작했다.


임원 면접을 볼 때부터는 유니폼을 입고 면접을 봤다. 두 번째로 유니폼을 입으니 더 간절하게 이 옷을 입고 싶어 졌다. 첫 임원 면접에서는 사진도 한 장 못 찍었는데 화장실에 가서 셀카를 찍는 용감함도 생기게 되었다. 연습했던 기내 방송분을 읽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대한항공 임원면접


영어 면접은 생활회화 수준의 간단한 질문이었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소개해봐? " 삼겹살을 제일 좋아하고 소주가 어울리지!" 그분도 삼겹살에 소주를 좋아하시는 분이셨다. "가고 싶은 취향 지는?" "난 캐나다에서 영어 공부를 했어, 대한항공이 취항하는 캐나다 밴쿠버를 다시 가고 싶어." 하트를 뿅뿅 날리며 진심으로 승무원이 되어 가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영어 면접을 본 후 무시무시한 임원진들이 앉아있는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다들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지원자들이 다 현직 승무원같이 느껴졌다. 대답을 하기 전에 계속 생각했다. ' 예쁜 친구 느낌으로 얘기하기, 한번 쉬고 말하기, 말하고 웃기’ 등등… 면접이 끝나고 '난 최선을 다했어! 될 거야 이 정도 했는데 안되면 어쩔 수 없어, 내가 아님 누가 하겠어? "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포기하게 되더라도 이만하면 됐다 싶을 만큼 후회 없이 했다.


드디어 몇 주 뒤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살면서 이렇게 큰 성취감을 느껴 봤던 건 처음이었다.


대한항공 합격 통지서


‘내가 대한항공 승무원이 되다니!’

 이렇게 준비를 하고, 간절히 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승무원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직업 하나를 갖는것도 이렇게 긴 스토리와 준비 과정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 준비는 어떨까?어떤 준비를 하고 엄마가 된걸까? 대체  뭘 해야 괜찮은 엄마가 될수 있을까? 엄마로 합격 할수 있을까?




 '아무튼 하루키'에서 이지수 작가는 말했다. "어째서 육아는 더럽게 고생스럽고 피눈물 나게 힘든 일이라고 말해주는 이가 여태 없었을까? 분명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모종의 엠바고 같은 거겠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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