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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맘 Aug 02. 2020

나는 엄마이자 여전히 나입니다.

엄마 사람


엄마가 된 후로 만나는 엄마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게 싫어 그녀들의 이름을 물어보고 ㅇㅇ언니ㅇㅇ 엄마로 핸드폰에 저장했다. 이름이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엄마가 된 후 만나는 사람들, 아이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은 사이.



사원증 내 이름표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면서 소중하게  간직해 두었던 사원증을 걸고 출근을 했다.유난히 활짝 웃고 있는 어색한 증명사진과 내 이름이 쓰여 있는 사원증.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내 이름을 크게 써놓은 교육생용 이름표 붙이고 복직 교육이 시작되었다. 회사 다닐 때는 그렇게 가기 싫던 교육원도 복직 교육을 받을 땐  출근길이 어찌나 신나던지. 입사 후 받았던 수많은 교육 중 유일하게 편한 마음으로 받았던 교육이었다. “경민 씨~”라고 불러 주는 게 어찌나 좋던지!!!  주주 엄마에서 김경민 승무원으로 변신이라도 한 것 같았다.


복직하고 워킹맘으로 널뛰기하듯 정신없이 지냈다. 하지만 워 라벨로 보자면 승무원은 엄마들에겐 좋은 직업임에 틀림없었다. 상전 같은 아이들 모시며 식사 준비하고, 치우고, 씻기고, 재우고 전쟁처럼 살아가는 엄마들. 장거리 비행이라는 합법적인 외박 찬스가 있는 승무원 맘의 생활은 우아한 편이였다. 비행이 끝나고 보송보송한 침구가 준비되어 있는 호텔방에 ‘혼자’ 들어가던 그 기분…


아이 없이 하는 쇼핑은 얼마나 즐겁던지 매 비행 득템 하느라 통장이 텅장이 되었다. 아침 뷔페에서 사무장님이 3시간 동안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셔도 기분 좋게 앉아있었다. 따뜻한 커피와 빵, 준비되어 있는 맛있는 음식들 '어른들끼리 하는 식사!'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아이와 식사할 때마다 '물 달라'' 화장실 가겠다'' 우유가 엎질러졌다 '등등. 제대로 앉아서 끝까지 밥을 '한 번에' 먹어본 적이 있었나?


단, 엄마의 빈 시간 대신할 누군가가 꼭 있어야 했다. 나의 빈자리는 남편과 내 엄마 아빠가 메꿔 주었다. 아이가 아픈 날에는 하루 종일 동동 거리다 신랑에게 바통터치를 했다. 장거리 비행을 갈 때는 비행 준비를 다 하고 아이를 챙겨서 친정인 부천에 갔다.비행을 하면 온 가족이 나에 스케줄에 맞춰 하나의 팀이 되어 움직여 줘야 했다. 한번 다녀올 때마다 아이가 훌쩍 훌쩍 크는 것 같았다.


복직을 하고 일 년 동안 정말 열심히 다녔다. 영어 자격도 팀에서 최상위였고 근무 평가도 잘 받았다. 팀장님께서도 당연히 내가 진급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누군가는 조기 복직을 해 독하게 자격을 따고  평가가 좋아 바로 진급을 했다고 했다. 육아휴직은 법적 휴가라 진급에 영향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복직 동기들은 아무도 그 해에 진급하지 못했다. 독하게 일 년을 더 보낸 뒤에야 하나 둘 진급을 하였다.


유니폼 재킷에 하얀색은 일반 평사원, 파란색은 대리 직급 이상의 승무원을 나타낸다. 진급에 누락될수록 흰 재킷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경민 씨는 싹싹하고 일도 잘하는데 왜 진급을 못했어?"라고 물어볼 때마다 첫해는 교통사고가 나서, 육아휴직 중이라, 복직을 해서...라고 말해야 하는 사연이 길어졌다.

파란자켓을 입은 곰돌이



그때쯤 아이에게 눈 깜빡임 틱이 왔다. 처음엔 심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져 갔다. 가끔 깜빡깜빡 거리는 정도라 신경 써야 느껴질 정도였다. 병원을 가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대  한 계절이 지나도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심해져 갔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의 상태를 보면 한눈에 티가 날 정도여서 걱정하는 말들을 건넸다.


나는 쿨병( 쿨한척하는 병)이 있어서 “괜찮아~그냥 그럴 수 있는 거래~”"관심이 필요한 병이라던 대?” “시간이 필요한 거야~”라고 별일 아닌 척 넘기려고 했다. 복직을 하고 경주하듯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무엇을 향해 가는지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길을 잃은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찾는다고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다. 그럴수록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내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사직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둘째 아이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승무원은 임신을 하면 비행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임신과 동시에 산전 휴가가 시작된다. ‘그래 잠시 쉬어 갈 때가 된 거야 아이에게 가정에 집중하라는 뜻이야!’ 지금 쉬게 되면 회사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 울 것이란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비행을 안 가니 아이의 눈 깜빡임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둘째 임신을 하고 쉬게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플라잉맘’이라는 닉네임으로 우리 아이와 가족의 일상을 공유하고 나의 비행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내 글을 보고 승무원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댓글을 달고 취직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 사연이 얼마나 구구절절하던지, 매달 무료로 승무원 지망생들을 만나는 재능기부를 진행했다. 주변 엄마들과 함께 원데이 클레스를 만들었다.  수업마다 현직 승무원 엄마들, 아나운서 엄마, 메이크업 아티스트 엄마를 섭외했다.

그동안의 경험과 아이를 키워온 시간들이 나를 플라잉맘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어디에서도 나답게 누군가를 챙기고 모으고 키우는 일을 계속 할수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함께 한 학생이 항공사에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줄 때마다 내가 합격했을 때 보다 더 떨리고 좋았다. 회사에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용기가 생겼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육아와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에 장점 발견해 주고 예쁘게 잘 키워주는 일.  마지막 수업 시간 변화된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 펑펑 울기도 했다.


특히 학부모들께서 아이가 있으면서 경력이 오래된 나를 믿고 신뢰해 주셨다. 현직 승무원들도 아이를 낳고 복직과 사직을 고민할 때 나를 찾아와 주기도 했다. 점점 주변 학교, 병원, 구청에서도 강의 요청이 왔다. 하지만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에게 벌어지는 일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신랑의 중국 발령으로 갑자기 중국에서 살게 되었다. 구정을 보내러 귀국 했다 코로나로 살던 집도 내손으로 정리 못한 채 하게 한국에 표류하게 되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어떤 상황이 생기더라도,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나는 나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인생 최고의 승객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것!


어떤 이름표가 붙던  나는 엄마이자 나 플라잉맘 김경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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