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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맘 Oct 29. 2020

승무원 워킹맘

"엄마 비행 다녀올게~"


첫아이를 낳고 비행하는 승무원 워킹맘으로 살았다. 이제 아홉 살이 된 딸은 아직도 그때 얘기를 무용담 꺼내듯 한다. "엄마 나 두 살 때 너무 힘들었잖아.  엄마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다! " 여섯 살이 되어도 아기 같은 막내에게 “넌 엄마도 있는데 왜 징징 거려! 난 아기 때부터 엄마도 없었어!” 더디게 크는 막내와 달리 큰아이는 너무 빨리 커버려서 미안하다.




 


장거리 비행을 할 땐 친정 부모님께서 아이를 돌봐 주셨다. 대전에 살면서 부천에 있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인천 공항으로 출근했다. 엄마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강아지 마냥 현관에서 기다리던 딸. 어떤 날은 엄마가 오는 줄 알고 현관에 나가 기다리다 할아버지가 오셨단다. 실망했는지 방에 들어가 혼자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아이. 비행 가기 싫다고 하면 “아니야~ 엄마는 비행 가야지~ ” 하던 우리 딸.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강아지 마냥 팔짝팔짝 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가 출근할 때 풀 메이크업을 하고 유니폼 입은 걸 보고 "우리 엄마 너무 예쁘다! 천사 같아!"를 외치며 하트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다. 엄마는 승무원이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랑을 하고 다니는 덕에 동네 앞 슈퍼 나갈 때도 왠지 더 신경을 쓰게 됐다.  엄마가 비행 끝나고 돌아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이유는 가방에 가득 들어 있는 선물이었다.  “엄마가 맨날 비행 갔으면 좋겠다~" 했던 딸. 역할 놀이할 때도 가방을 질질 끌고 "엄마 비행 갔다 올게~ 할머니 말 잘 듣고 있어! 그럼 엄마가 선물 사 올 거야~" 한다.





어린이집 창문으로 엄마 뒷모습을 안 보일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던 아이. 그 모습을 보고 뿌리와 새싹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 풍선께서 시를 지어 주셨다.






비행 가는 엄마 떠나보내듯


창문 너머 엄마 뒷모습 따라가는


어린 사슴 같은 아이…


말괄량이 갈래 머리


나붓나붓 나비 걸음


맨발에 첨벙첨벙


쏜 살 같은 달음질


뿌새의 아이 여라


“풍선, 머리 아픈 거 다 나았어?”


새까만 머루 송이 눈동자에


속 깊은 심성 어리 우네


버들피리 부는


긴 호흡, 깊은숨으로


어려움도 이겨내거라




풍선- 서준화











엄마가 안 보일 때까지 울고 있던 아이




 엄마와의 애착형성이 중요한 시기에 엄마 없는 시간을 보냈다. 일을 그만둔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엄마의 빈자리가  티가 난다. 지금도 상담 때마다 듣는 소리 "아이가 또래답지 않게 너무 독립적이에요. 도움이 필요한 일도 혼자 다 한다고 해요. 어른들과 다 잘 지내긴 하는데 담임 선생님에게 딱 붙지 않고 겉돌아요. "  아이에 성향일 수도 있지만 괜히 찔린다.  "제가 아이 어릴 때 비행을 해서 엄마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있었어요~"라고 얘기하면 그제야 아이를 이해하고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하게 된다.  모든 엄마들이 힘들겠지만 며칠씩 집을 비우는 승무원 엄마는 조금 달랐다. 특히 승무원 워킹맘의 일상은 상상할 수 없는 죽음의 스케줄이었다.








보통 승무원의 일상


만약 오후 5시 출발 LA 비행이 있다.


-> 2시간 전에 브리핑


-> 브리핑 한 시간 전에 출근함


-> 출근시간 2시간 전에 집에서 나가야 함


-> 한 시간 반 전 메이크업 유니폼 머리 준비


-> 비행 전날/ 브리핑 준비, 가방 싸기, 유니폼 다리기 등등등








엄마가 되고 나서는 장거리 비행 당일 아침 아이 예방접종도 시켰다. 며칠 동안 못 보니까 문화센터 수업도 따라갔다.  오감발달을 도와준다는 수업은 한 시간 내내 아이를 들고 매고 뛰고 안고 뒹굴었다. 끝나고 나면 기운이 쭉쭉 빠졌다. 그리고 비행을 갔다. 처녀 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녀 때 장거리 비행 전날이면 예민하고 불안했다. 애인과 가족에게 온갖 짜증을 내고 있었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매일 올라오는 지시 공지, 고객 불만을 미리 공부해야 했다. 유니폼도 다려야 하고 가방도 싸야 하고 뭐가 그리 힘들던지. 비행 다녀와서는 피곤하다고 스트레스받았다고 짜증을 내고 힘들어했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비행 업무의 스트레스와 짜증과 불안이 사라졌다. 비행 전이나 후나 우선순위가 아이와 가족이 되었다.  일할 때도 집에서도 한결 편해진 ‘복직한 언니’가 되었다. 도착하면 하루 종일 자기 바빴던 내가 날을 새고 와서도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바리바리 사 온 장난감을 꺼내 들고 토끼 눈으로 즐겁게 놀았다. 비행을 가서는 아이를 볼 생각에 일이 힘든지 모르고 왔다.  비행에선 혼자 잘 수 있는 호텔방의 뽀송뽀송한 침대와, 혼자 하는 쇼핑에 신이 났다. 승무원은 워킹맘으로 꽤 괜찮은 직업이기도 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예전에는 결혼이 여성 경력 단절 이유 1위였다면 요즘 경력단절 이유 1위는 단연 '육아' 다. 아이가 하나일 땐  '당연히 일을 해야지' 하는 생각에 복직을 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돌이 갓 지난 아이는 자주 아프다.  밤새 열이 나는 날이 잦았다. 수족구, 독감, 모세 기관지 염 유행에 어찌나 민감하신지.  아픈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길은 발걸음이 더 무거웠다. 내가 없는 날 신랑과 엄마가 고생이 많았다. "아이 하나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둘은 절대 못하겠어. " 신랑이 두 번째 복직을 앞두고 백기를 들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다. 외식비가 두 배 이상 늘었다.  아이를 맡기는 비용, 청소 도우미 월급, 대전에서 공항을 왔다 갔다 하는 교통비 등등. 일을 한다고 돈이 많이 모이는 것도 아니었다.  '버티다 보면  진급도 하고 월급도 오를 텐데 훨씬  나아질까?' 나만 집에 있으면 아이도, 남편도, 엄마도 모두가 편하다는데 내 욕심만 부릴 순 없었다. 복직을 위해 신체검사도 받고, 교육 날도 받아 놓았지만 돌아가지 못했다.






내가 비행을 그만둬야 하는 날이 이렇게 올 줄 몰랐다. 비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지막 비행에 대한 로망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내 품 안에 영원히 랜딩 해!

마지막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입국장에서 닭살스러운 플랜카드와 꽃을 들고 있을 동료와 가족들. 펑펑 울지도 못하고 미스코리아처럼 웃으며 눈물을 흘리는 영화 같은 그날을 상상했다. 육아 때문에 사표를 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퇴사를 하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저 그만두고 왔어요~선생님이 시 써주셔서 저 그만두기로 딱 맘먹었잖아요!"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주룩 흘렀다. 선생님도 나를 꼭 안아주셨다.  나는 승무원 워킹맘에서 그냥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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