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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맘 Sep 05. 2020

이 비행은 팀 비행이다. 공동육아  

육아는 팀플이다.

승무원 업무는 매 비행 하나의 팀으로 이루어진다. 비행기의 크기에 따라 승객 예약률에 따라 근무하는 인원이 달라진다. 보잉 737 같은 소형기에선 3~4명 근무하기도 하고, 에어버스 380 같은 대형기에서는 25명 가까운 승무원들이 함께 일하기도 한다. 항공사에 따라 비행하는 팀을 구성하는 방법은 다르다고 한다. 대한항공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팀이 바뀌는 시스템으로 승무원을 관리한다.


비행마다 같은 팀 멤버로 움직이기도 하고, 스케줄에 따라 두 개의 팀이 움직일 때도, 처음 보는 승무원들과 조인되어 비행을 하기도 한다. 보통 팀은 15명 정도로 구성된다. 팀이 되면 1년 동안 비행을 함께 다니기 때문에 가족들보다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팀 발표가 나는 달이면 "김 00 팀장님 " 어때? "박 00 언니는 블랙리스트 아니야? "라는 말을 비밀리에 주고받으며 희비가 엇갈린다.


비행은 팀워크이다.

승무원의 업무는 '승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는 것!'. 맡은 임무에 따라 각자의 자리와 담당 Door 가 정해진다. 팀장은 L1이라는 비행기 왼쪽 첫 번째 문에서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한다. 문지기가 된 승무원은 문 주변의 비상 장비를 체크하고 사용법을 숙지한다. 비행기에는 여러 상황에 대비해 다양한 의료 장비, 화재 진압장비 등이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다. 각자 맡은 장비들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비상시 재빠르게 찾아 가져와야 한다. 만약 300명이 가까운 승객들을 단 몇 분 안에 탈출시켜야 한다면 어떨까? 각자 맡은 문 앞에서 담당 승무원들은 승객을 최대한 안전하고 빠르게 탈출시키기 위해 같은 목소리로 소리칠 것이다.


"탈출구 정상" "이쪽으로" "빨리! 피해"



"승무원들 밥이나 주는 거 아니야??" 밥을 줄 때도 팀워크는 중요하다. 비행기는 보통 두 개의 통로로 되어있다. 양쪽에 순서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게 밸런스를 맞추며 서비스해야 한다. 맡은 일을 빨리 끝냈다면, 앞뒤를 옆을 살펴 다 같이 끝낼 수 있도록 돕는다.  음료 서비스가 끝나야 식사가 서비스될 수 있고, 식사가 끝나야 티 커피가 나갈 수 있다.  나 혼자 빨리 잘한다고 업무가 끝나지 않는다. 스포츠 경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게임을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함께 뛰어야 한다. 누구 하나 잘 뛴다고 이기는 경기가 아니다. 수비가 부족하면 수비수가 되어주고 공격이 부족하면 공격으로 포지션을 바꿔줘야 한다.  


언젠가 비행에서 비빔밥에 실려야 하는 밥이 부족하게  실린 사건이 있었다. 이륙 후에 발견하게 되었는데  바쁘다고 카트 뒤쪽까지 열어서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한 잘못이었다. 비행업무 특성상 '뉴욕 땅콩 사건'같이 큰 문제가 없는 한 문을 닫은 비행기는 그대로 가야 한다. 이코노미 클래스 승무원들과 고민하다 상위 클래스에서 쓸 수 있는 그릇과 서비스하지 않은 밥, 승무원용 밥을 다 모았다.  다행히 앞쪽 좌석이 분리되어 있어 앞쪽 3~4열 승객에게 사기그릇에 담긴 따뜻한 밥을 서비스했다. 사정을 알리 없는 승객들은 평소보다 고급스럽게 준비된 비빔밥을 맛있게 드셨다.  



복도에서 갑자기 승객이 쓰러진 일도 있었다. 발견한 승무원이 승객을 살피는 동안 근처 승무원은 인터폰으로 환자 위치를 공유했다. 필요한 비상 장비 산소통, 혈압계, 심실 재새동기 등을 각자 위치에서 찾아왔다. 방송 담당 승무원은 기내 방송으로 의사를 찾았다. 승무원들의 빠른 대처로 승객은 곧 의식을 찾았고 건강하게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힘들게 일했던 것은 잊어버렸지만 팀원들과 함께 보낸 재밌었던 시간들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팀워크에 따라 아무리 힘든 비행도 서로 힘이 되어주어 견딜 수 있었다. 매비행 나를 가루로 만들었던 부팀장님도 비행기에서 욕을 하며 난동을 피우던 진상 승객도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여서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즐거울 것 같은 뉴욕, 하와이, 피지도 멤버에 따라 지옥 비행이 될 수 있다. 다른 팀에 홀로 조인되어서 갔던 피지에선 그림 같은 바다를 보며 '우리 팀 하고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팀원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좋은 팀을 많이 만났다. 하와이 와이키키를 함께 누비던 여전사들, 뉴욕에서 졸면서 봤던 '오페라의 유령' 몰디브의 쏟아지게 많은 별, 지중해에서 해수욕을 했던 순간, 푸껫에서 보냈던 크리스마스.  유난히 힘든 일이 많았던 비행이었다. 고객 불만을 받고, 무서운 선배에게 무진장 깨졌던 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습한 동남아 날씨에 스카프는 우리처럼 축축 힘을 잃고 마음대로 휘어졌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피곤함을 던져 버리고 챙겨간 파티 용품으로 선배 언니의 비밀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일하고 왔던 것도 잊고 해가 뜰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행복한 추억들로 비행에 대한 기억은 아름답게 편집되었다.


와이키키 여전사들



결혼 후 신랑의 직장이 있는 대전에서 살게 되었다. 임신과 동시에 산전 휴직으로 쉬게 되면서 아는 사람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책도 읽고 커피숍도 가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겨 보았다. 한 달쯤 지났을까? 지역 맘 카페에 글을 하나 올렸다. '저랑 밥 먹어 주실 분...' 몇 번의 번개팅을 통해 마음이 맞는 아줌마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요일마다 점심 특선 할인이 있는 식당들이 많아 '수요모임'이라는 이름까지 정하게 되었다.



육아 동지들을 만나 산전 요가부터 출산, 육아를 함께 했다. 조리원에서 퇴소하는 날 엄마는 감기에 걸려서 못 오셨고, 주말이라 산모 도우미 이모님도 못 오셨다. 수요모임 언니들은 미역에 반찬거리를 챙겨 와 뚝딱 미역국한솥과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 가득 채워 주고 갔다. 혼자 아이와 시름하다 보면 밥 한 끼 챙겨 먹는 것도 어렵다.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점심 준비를 하면 언니들은 아이를 함께 돌보고 설거지에 청소까지 싹 해주고 갔다.



육아에도 로맨스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밤에 핀 벚꽃이 어찌나 예쁘던지 육아 동지들에게 꽃 사진을 날리며 데이트 신청을 했다.  눈이 펑펑 오던 한밤중 가족들이 다 자는 시간 몰래 나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힘든 육아 중이었지만 함께 하는 육아 동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애기 눈사람


팀 육아하면 '조동모를' 빼놓을 수 없다. 조리원 동기 모임에 약자로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함께한 동기들이다.

아이들의 생일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예방접종 정보나 최신 육아 템들을 공유하며 밤중 수유를 할 때도 혼자 외롭지 않게 카톡방 수다가 24시간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 사진을 찍겠다며 100일 사진을 같이 찍었는데 어찌나 울던지 아이들 우는 소리가 한동안 환청처럼 들려왔다.


승무원들 세계에서 시니어 리티는 입사 연도 순이였다면, 엄마들의 세계에서 시니어 리티는 아이를 먼저 낳은 순서이다. 또 둘째 엄마 셋째 엄마들은 육아계의 마스터 대우를 받는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어딜 가나 내가 막내였는데 둘째 아이를 낳고서야 난 마스터 엄마가 되었다.


아이고 귀요미들!!!!



공동육아에 관심을 갖고 뿌리와 새싹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마을과 아이를 함께 키워 가는 마을 공동체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를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키우며 나도 함께 크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혼자서는 절대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 함께!제대로 놀수록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한다. 그리고 어른들도 함께 놀아야 힘든 육아를 조금이라도 나눌수 있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함께 고생하는 동지이고, 함께 놀아야 하는 친구이다.  고맙다 내 곁에 있어준 끈끈한 젖을 나눈 육아 동지들. 당신들이 없었으면 나는 진작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꺼야. 사랑합니다.

공동육아로 크는 우리 마을 어린이들


육아 비행도 팀 비행이다. 물론 좋은 팀을 만나야 좋은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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