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서비스가 끝나면 쉬어가야 합니다.
손님 여러분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좌석벨트를 매주시고
음... 좌석벨트를 매주 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식사 서비스가 정신없이 끝나고 나면 창문 덮개를 내리고 기내 조명을 점점 어둡게 낮춘다.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 한숨 잘 분위기를 조성한다. 비행기에선 편의에 따라 조명을 켰다 껐다 한다. 양계장에서 형광등을 환하게 켜고 끄고를 반복하며 닭을 사육하는 것 같다. "승객들 보면 가끔 안쓰럽지 않아?? 사육당하는 것 같다니까? 마음대로 밥도 못 먹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라면 자야 되잖아! " "밥이나 먹고 얼른 쉬러 가자! 우리도 빨리 먹고 가서 자야지!!"
드디어 기다리던 '레스트' 휴식 시간표가 나왔다. 두 번째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까지 반씩 나누어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비행기 어딘가에 있는 비밀 문을 열면 승무원만을 위한 침대가 준비되어 있다. 벙커라 불리는 이 공간은 승무원만을 위한 휴식 공간이다. 벙커에 눕기만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둘 셋! 레드썬! ' 스르르 잠이 든다. 레스트 타임은 장거리 비행을 버텨내는 꿀 같은 시간이다.
승객들도 승무원들도 곤히 잠들어 있는 그 시간 갑자기 비행기가 흔들리며 좌석벨트 표시등이 띵!! 하고 켜졌다. 그때 바로 나와야 하는 기내 방송이 있다.
Turbulence 방송 손님 여러분,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좌석벨트를 매주 시기 바랍니다.
기내 방송은 시대의 흐름을 탄다. 요즘은 코로나 관련 방송문이 새롭게 생겼다. 기내 방송은 점점 더 간소화되고 해야 하는 방송도 많이 줄고 있다. 마침 내가 방송 사고를 친 전날 방송문이 바뀐 탓에 ' 좌석벨트를 매주시고 등받이와 테이블을 제자리로 해주십시오'에 등받이와 테이블 부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었다. 비행 전 새롭게 추가되거나 바뀐 방송은 없는지 브리핑에서도 얘기하고 체크한다. 하지만 나의 입은 습관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좌석벨트를 매주 시기 바랍니다."를 벌써 "매주시고!!"라고 끝나지도 못하게 말해버렸고, 나의 뇌는 "등받이와 테이블"이 사라졌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 여러분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좌석벨트를 매주시고.....
음... 좌석벨트를... 매주 시기 바랍니다."
지하벙커에서 곤히 주무시던 우리 팀원들은 "이거 누구야! 좌석벨트가 이중 벨트야? 어떻게 두 번을 매라는 거야!" 하면서 "아 놔!!! 김경민!!!" '큭큭큭' 웃으며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단잠을 깨워서 죄송합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오랜만에 팀원들을 만나면 비행 실수 에피소드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갖게 된 습관이 하나 있다. '낮잠 타임' 인간의 본성인지 비행을 그만둔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점심시간 후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다. 온몸으로 '레스트 갈 시간임을 느낀다.' 외출을 해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 마시다 보면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고 피로감이 몰려온다. "미안 난 먼저 갈게!" 잠이 오지 않더라도,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스위치를 꺼주지 않으면, 쉴 틈 없이 흘러가는 하루를 견뎌내기 힘들다. 침대에 누워 10분이라도 휴식시간 '레스트 타임' 가져야 아이들을 맞이하고 저녁 준비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언젠가 동네 엄마들 모임에 승무원 친구가 놀러 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수다를 시작을 했다. 그런데 이 친구 눈밑에 다크서클이 점점 진해지고 피곤해 보이기 시작하는 게 딱 레스트가 필요할 타이밍인 게 느껴졌다. "미안~ 우리 먼저 갈게! 쉬러 갈 시간이야~ 승무원들은 밥 먹으면 레스트 가야 한다니까? 나만 그런 거 아니지?" 그제야 매번 먼저 간다고 놀리던 아줌마 친구들도 나를 이해해 주기 시작했다.
비행 전 브리핑 시간에 언제나 말하는 '체력 안배'. "긴 비행시간 체력 안배 잘해서 끝까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장거리 비행에서도 승무원들이 생기 있어 보이는 비결은 바로 '중간 쉬는 타임' 아닐까?? 잠깐이라도 스위치를 끄고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시간. 길고 긴 장거리 육아를 위해 '중간 쉬는 타임'이 절실히 필요하다. 방전되거나 폭발하거나 고장 나기 전에 잠깐이라도 불을 끄고, 모든 생각을 끄고
짧은 시간이라도 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쉬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다. 엄마라고
다르지 않다.
<번외 편>
처음 기내방송을 하는 날이었다. 생각보다 실수 없이 방송이 잘 돼서 의기양양하고 있었다. 드디어 서비스 정리를 하고 착륙 준비를 하는 시간 "지금부터 사용하신 헤드폰과 잡지를 걷겠습니다"를 "지금부터 사용하신 핸드폰과...... 잡지를 걷겠습니다. "라고 해버렸던 것이다. 마음씨 좋던 팀장님은 헤드폰을 걷으러 온 나에게 친히 핸드폰을 꺼내 주셨다. "죄송합니다. 헤드폰만 걷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