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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맘 Sep 22. 2020

계속 실패하는 엄마, 다시 취직할 수 있을까?

알 까는거 자꾸 깨지는 거 진짜 쉽지 않다.


코로나19는 많은 걸 뒤바꿔 놓았다. 당연했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2~3년 후에나 이전처럼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현직 승무원들은 팀별로 번갈아 가며 비행과 휴직을 반복하는 상황이다. 비행을 가더라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해외 체류 중 외출이 금지되고 있다. 어떤 항공사는 랜덤 뽑기식으로 600명 가까운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사직 통보를 했다고 한다. 항공업계, 여행업계는 코로나19에 직격탄을 제대로 맞았다.






'나는 다시 비행할 수 있을까?' '정해인의 걸어보고서'를 보다가도,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가도, 커피숍 벽에 걸린 사진에도 '뉴욕'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정해인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야경을 감상하는 장면이었다. 다시는 그모습을 볼 수 없을것 같은 생각에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뒤져보다 어마어마한 가격에 포기했다.그때 뉴욕 비행이 있던 동기를 만나러 갔어야 했다! '우린 뉴욕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매달가서 지겨웠던 나의 뉴욕





"다시 승무원 되고 싶어~ 비행 가고 싶어! 뉴욕 가야 된단 말이야!" "집에서 애들이나 잘 키우지~무슨 뉴욕 타령이야! 애 낳고 복직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고생길이 뻔한데 무슨 소리야! "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중국에 사는 동안 경력직 승무원 모집 공고를 유심히 살폈다. 설 명절을 맞이해 들어온 한국에서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정착하게 되었다. 코로나 확진세로 중국 국경이 막혀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내손으로 짐도 싸지 못하고 국제 이사를 했다. 때마침 신생 항공사와 대기업 전용기 승무원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승무원 지원기는 도전 자체로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먼저 마사지를 끊고 피부 관리를 시작했다. 유튜브 홈트레이닝도 열심히 따라하고, 다이어트도 시작했다. 예쁜 옷과 구두, 화장품도 다 새로 샀다. 난생처음으로 망설임 없이 명품 매장에서 스카프도 질렀다. 승준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메이크업 숍에서 화장도 받고, 예쁜 프로필 사진도 새로 찍었다. 면접 준비를 하는 동안 20대 초반 승무원 준비를 할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승무원 프로필 사진




운전을 하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면접에 도움이 되는 영상을 돌려 보고 중얼중얼 답변을 정리했다. "안녕하십니까? 플라잉맘 김경민 입니다" 경력직 면접을 준비하려니 신입 승무원 면접 준비와는 차원이 달랐다. 새로운 신생 항공사와 고리타분한 대기업 전용기 승무원 중에 뭘 선택해야 하지? 대기업 전용기 채용 공고에 올라온 '업계 최고 연봉' 기대에 부풀어 꿈같은 몇 주를 보냈다.마침 대기업 전용기 승무원으로 일하는 선배 언니가 있었다. A4 용지를 앞뒤로 빽빽하게 적을만큼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전용기 승무원 면접을 위한 꿀팁을 전수 받았다.






대기업 전용기 면접은 10년 차 승무원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되었다. 여러 항공사 출신에 베테랑 승무원들이 한데 모여있으니 분위기가 묘했다. 면접 질문도 상상을 초월했다. " 샤프란 밥과 치킨 사떼, 비프스테이크, 한식 떡갈비, 무슨 무슨 소스에, 빵이 몇 가지 등등이 있고, 기내에 오븐이 두개 있다면 식사 준비를 어떻게 하실껀가요? " " 전용기는 스케줄이 미리 나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스케줄 관리를 어떻게 할 건지 영어로 대답해주세요" 나에겐 중국에서 살다 왔으니 중국어로 얘기를 해보라고 했다. 떠듬떠듬 "저...는... 김경민이고 대한항공에서 근무했습니다 . 중국에서 2년간 살다왔습니다." 내 옆에 있던 지원자는 중국어를 전공하고, 중국 항공사 출신으로 국내 항공사에서 근무 중인 분이셨다. 그분이 중국어를 시작하고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면접이 끝나고 이주가 지나도록 합격 불합격 소식이 없었다. 면접을 진행한 대행사가 그 대기업에 의뢰를 받은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취업 사기는 아닌지 나의 개인 정보를 고스란히 넘겨주고, 면접도 열심히 봤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니 불안했다. 회사로 전화를 걸어 보기도 했다. "합격자 발표 났나요??" "아직이요... 연락드릴게요" 그러기를 몇 주 다시 묻기도 허무해졌다.






신생 항공사 면접은 스타드업 기업답게 신선했다. 요즘은 면접도 언택트었다. 4차까지 면접이 있었다. 1차 면접은 유튜브 1분 동영상과 수기 자소서었다. 엄청난 악필에 유튜브도 못하던 나는 1차부터 포기하고 싶었다. 다행히 '1차 면접 합격!' 2차 면접은 1:1 카카오톡 화상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10분 가까이 진행된 면접에서 여자 면접관은 많은 것을 물어봤다."비행은 얼마나 했나요?" "직급은요?" 육아휴직 공백과 진급하지 못한 것은 경력직 승무원을 뽑는데 큰 걸림돌인것을 2차 면접에 불합격하고 알게 되었다.


https://youtu.be/4kPnQZgS2qE




열심히 준비했던 중국어 한마디 못해보고 실무 면접도 가지 못하고 '똑!' 떨어졌다.' 불! 합! 격! 김경민 님은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참 나~ 실물 한번 안 보고 카카오 영상 전화로 떨어지는 건 너무하지 않냐?? 대한항공, 아시아나도 다 최종 면접에서 아쉽게 떨어졌었는데 2차에서 떨어질 수가 있다니! " 하늘로 연결된마지막 동아줄을 놓쳐버린 것 같았다.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주룩주룩 쏟아져 나왔다.




에어프레미아항공 경력직 2차 면접 탈락





회사를 그만두고 승무원 지망생들을 멘토링 한 경험이 있었다. 아이들이 취업 준비에 실패할 때마다 내가 떨어진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생각했다. 이름도 거창하게 '실패 파티'라고 떨어진 애들을 데리고 소주에 삼겹살을 사 먹이며 더 잘 될 거라고 잘 된 거라고 위로해 줬다. 근데 다 거짓말이었다. 내가 실패하고 떨어지고 나니 어찌나 힘들고 아프던지 내 상처는 내가 제일 아팠다.






도전하지 않았음 실패도 없었을 터. 이번 기회에 나를 잘 알게 되었다. 결혼과 동시에 여자의 커리어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한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대전으로, 중국으로 다니며 나의 경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경력직을 뽑는다고 해도 2년 차 승무원부터 지원 가능했던 채용이었다. 10년 차 전직에 육아휴직으로 생긴 공백과 승무원 경력 단절 기간을 생각한다면 당장 비행을 준비해야 하는 새로운 항공사 입장에서 사무장 경험도 없는 내가 믿음 가진 않겠지.






나의 경험치를 어필한다고 승무원 지망생들을 가르친 경험, 서비스 강사, 중국에서도 서비스 강의를 했던 경력, 해외살이를 통해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 영어와 중국어 실력, 엄마로 가족을 챙겼던 시간들, 가족계획이 끝나서 오래 일할 수 있는 것이 나만의 특별한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실무에 투입될 승무원을 뽑는 자리였다. 내가 이렇게 애매한 사람이란 걸 참 모르고 살았다. 많이 부딪치고 깨지고 떨어져 봐야 나를 더 알 수 있다. 면접에선 떨어졌지만, 얻은것도 많았다. 나를 무조건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내 편들 이 많다는 것이었다. 다들 감이 떨어졌는지 '내가 당연히 붙을 거라고 철떡 같이 믿어주는 동료들 "그 회사 보는 눈이 없네요! 경민 씨를 못 알아 보다니"라고 말해준 사무장님들 나보다 더 아쉬워해주는 내 편들을 얻게 되었다.






나의 꿈은 리더가 되는 것이고, 큰 비행기에 사무장이 되는 것이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사무장이라는 위치에 대해, 리더십에 대해, 생각과 결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친하게 지내는 사무장님들께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했다. 대화를 나눈 날은 잠이 오지 않을 만큼 설레고 머릿 속에서 '띵!' 하는 느낌이 들었다. 승무원을 준비하던 때와 지망생들을 가르치던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핸드폰을 정리하다 전화 인터뷰한 것을 다시 듣게 되었다. 나랑 비행을 했던 사무장님부터, 나의 동기, 친한 선배 언니, SNS를 통해 알게 된 국내외 항공사의 사무장님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흘러나왔다. 내가 실패했던 면접용 답변으로 쓰고 버리기엔 아까운 내용이었다. 나는 '친절하지만 단호한 승무원 리더쉽'에 관한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새롭게 도전하는 직업은 '김 작가'이다. 글을 쓰는 건 돈이 들지 않는다. 승무원 면접을 준비하면서 쓴 지출이 어마어마했다. 코로나로 학교도 유치원도 안 가는 아이도 돌볼 수 있다. 언제든 어디서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내가 잘 할 것 같은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돈도 잘 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다.' 나 김 작가 될 수 있을까??'










알 까는거 자꾸 깨지는 거 진짜 쉽지 않다








데미안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 나는 예전에 알을 깬 거 같은데... 이놈의 알이 계속 있네?" 인생은 알 까기에 연속인 것 같다고 친구와 한참 떠들다 눈물이 맺혔다. 성장한다는 건 참 많이 아픈 일이다. 대체 난 얼마나 크려고 매일 깨지고 아프고 다시 일어나고 하루만 속상해하고 막 웃고 있고 그러는 걸까?
























#아바매글 #아무리바빠도매일글쓰기 #글밥의매일글쓰기 #취직준비중 #경력직승무원 #실패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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