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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맘 Oct 30. 2020

산소마스크가 필요할 때

누가 먼저 마스크를 써야 할까요?

비행기에서 위급 상황 시 산소마스크가 떨어진다면 누가 먼저 마스크를 써야 할까요?









"비행기에서 위급 상황 시 산소마스크가 떨어진다면 누가 먼저 마스크를 써야 할까요?" 비행기 안전 교육이라는 주제로 학교나 유치원에서 강의를 할 때가 있다.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망설임 없이 "아이들!"이라고 대답한다.







비행기 안전교육 중 





'인체의 모든 세포는 산소 압력이 1mmHg 이하가 되면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을 멈춘다. 뇌는 산소의 부족에 아주 민감하다. 산소 부족 시 신경세포는 4~5분이 지나면 죽고, 죽은 세포는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 지식백과 닥터 사이언



스스로 자신을 위한 마스크를 빨리 쓰는 것! " 바로 나, 선생님, 부모님, 아이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내가 먼저 산소 쓰는 것이다. 승무원들은 위급상황에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면 '먼저' 마스크를 쓰라고 교육받는다. 그다음 도움이 필요한 승객을 도울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먼저 살아야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다는 뜻이다.











비행기를 타면 비상시 산소호흡기를
먼저 보호자가 낀 다음에 아이에게 껴주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선 나를 돌보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에요.
내가 행복해야 내 주변 사람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스님





엄마가 되면 나보다 아이를 가족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다. 엄마 하나 희생하면 모두가 편해진다는 생각. 나를 먼저 두지 않으니 점점 내가 없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남들 다 한다는 육아가 이렇게까지 힘든 일이었는지? 애들 먹이다 보면 엄마 밥은 대충 먹기도 귀찮다. 먹은 것 같지 않게 먹어도 설거지는 왜 이렇게 많은지. 하루도 빠짐없어 세탁기를 돌려도 빨래는 산더미 같다. 세탁기가 빨래하고 건조기가 말려주는데 고작 빨래 개어 넣는 게 뭐 그리 큰일인지.






아이는 자주 울고, 자주 깨고, 자주 아팠다. 육아휴직으로 버티는 회사 생활도 위태위태했다. "비행은 끝나면 호텔에서 쉬기라도 하지. 육아는 왜 쉬는 시간도 없고 끝나는 것도 없지? "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모자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는 삶. 제때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리가 없다. "나도 화장실 좀 가고 싶다고! 편하게 볼일 보고 싶단 말이야!"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엄마라는 숭고한 이름표를 붙여놓은 그 자리. 그곳에서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선녀와 나무꾼에 선녀라도 된 듯 날개옷을 다시 찾지 못했다. 결국 둘째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전업주부로 독박 육아를 하며 틈틈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재능과 경력을 살려 재취업에 도전했지만 나의 일은 언제든 남편의 상황에 따라 그만두고 떠날 수 있는 '가벼운 일'이었다.  나는 어디서든 살아남아야 했다. 나만의 산소마스크가 절실했다. 








내가 찾은 나만의 산소마스크




1. 책을 읽는 것-   자기 계발서, 소설, 고전, 시, 동화책 등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을 읽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책은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만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덮으면 그만이다. 작가와 절친이라도 된 듯 작가와 대화한다. 작가의 다른 책들 책 속에 책들을 찾아보는 재미에 빠졌다. 책을 읽다 보면 비슷하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 내가 중요하다는 것'  '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  내가 잘 있어야 아이도 살고 우리 가정도 살 수 있다. 내가 먼저 잘 먹는 것. 내가 잘 자는 것.  그다음 아이를 챙기는 것으로 순서를 정했다. 내가 잘 먹으니 아이를 챙길 힘이 더 나고, 내가 먼저 잠드니 아이들이 따라 잠들었다. 






2. 글을 쓰는 것-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화가 날 때마다 꾹꾹 눌러 가며 글을 썼다. 고구마 백 개 먹은 것 같은 글을 익명의 게시판에 모조리 올렸다. 조회 수가 만 건이 넘고 백 개가 넘는 속 시원한 댓글을 받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정신이 미쳐 날뛸 땐 자기 계발서에 나온 모닝 일기, 감사 일기, 해빙 일기를 쓰기도 한다. 뭐든 남기고 다시 보고 저장해 둔다. 쓰다 보면 마음도 정리되고 풀리는 것이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생기고 책을 쓰겠다는 꿈도 생겼다.    






3. 음쓰 외출 -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시간은 나의 자유 시간이다. 음악도 듣고 걷고  뛰고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수다도 떤다. 잠깐이라도 나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 음쓰는 적당한 핑계였다. 가끔 두 딸과도 번갈아 가며 한 명씩 엄마의 외출에 동행한다. 언니, 동생이 없이 오롯이 엄마랑 둘이 보내는 시간을 아이들은 참 좋아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둘만에 데이트가 힐링이 되기도 한다.  


 




4. 마음에 맞는 친구 사귀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엄마도 사회적 동물이다. 아이가 아무리 예뻐도 엄마도 '엄마' 친구가 있어야 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신랑 회사가 있는 대전에서, 이름도 낯선 중국 난창에서, 코로나로 불시착한 평택에서도  마음이 맞는 친구, 육아 동지들이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단, 진실되고 마음이 편한 친구여야 한다. 괜히 돌아와서 맘이 상한다면 '나를 위해' 끊는 용기가 필요하다. 예전엔 질질 끌던 인간관계도 적당히 끊어낼 수 있다. 처음이 어렵지 스트레스받으며 계속 만날 시간도, 마음에 여유도 없다. 짧고 굵게 위로되는 인간관계가 좋다.   






그밖에 꽃, 요가, 커피, 맥주


기분전환이 필요할 땐 나를 위한 꽃을 산다. 싱크대 앞에 꽃을 두면 설거지를 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몸이 피곤할 땐 유튜브 요가를 한다. 이곳저곳 뭉쳐있던 곳을 쭉쭉 늘리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끝나고 나면 "역시 하길 잘했어!" 스스로 뿌듯해진다. 커피 없이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맥주 없이 육아를 논할 수 없다. 


    


 




산소마스크의 도움을 받아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도움을 청하는 손을 내민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틈틈이 산소를 넣어도 괜찮아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받고, 병원을 가야 한다.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는 비상상황에 일시적으로 쓰는 것이다. 산소마스크가 떨어진 비행기는 자가 호흡이 원활한 고도를 찾아 내려가야 한다. 신속하게 착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남은 산소가 없는 마스크를 쓰고 혼자 죽도록 버티지 말자. 마스크가 없어도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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