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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의 범섬 Nov 29. 2019

사물에게 말 걸기

참깨 널던 날



  올 봄 어머니에게 보내진 누렁이 한 마리. 그 녀석이 간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 걱정을 알았는지 며칠 뒤 누렁이가 돌아왔다. 탱탱했던 젖가슴 늘어져 출렁거렸다. 어느 곳에 새끼를 낳았을까? 어머니의 안타까운 시선처럼 누렁이 귀와 꼬리가 아래로만 처져 내렸다. 그날 누렁이는 밥을 먹고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머니는 누렁이를 쫓아갔다. 누렁이는 돌 담 사이로, 풀밭 사이로, 나무사이로 쏙쏙 빠져나갔다. 누렁이 발걸음은 참깨 알맹이 터지는 소리처럼 가벼웠고, 어머니 걸음걸음은 늦여름 햇살처럼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한참을 가던 누렁이가 진 이장 댁 텃밭에서 멈춘다. 그러고선 덤불근처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한다. 어머니는 이쪽 덤불도 헤쳐보고, 저쪽 덤불도 헤쳐보다가 “누렁아. 어디냐?” 달래듯 말을 건넨다. 그때 나무 아래 풀숲에서 무언가 움직인다. 어머니가 얼른 풀과 가지를 걷어내면서 “아이고! 이 녀석. 여기가 네 쉴 곳이었냐.” 한 톤 높은 그녀의 소리가 올레길을 채운다. 어머니는 엉켜있는 녀석들을 한 마리씩 옷자락에 담는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어머머 여덟 마리다.

하루해가 넘어가지 않으려는 듯, 어머니 가는 두 다리가 바쁘게 움직이신다. 호박 따러 텃밭에도 다녀오시고, 마당 한 켠 누렁이 집에 천 보자기도 깔아주신다. 새끼들을 한 놈씩 내려놓자 눈도 못 뜬 새끼들이 굼벵이 기어가듯 꿈틀거린다. 그러다가 잠이 들고, 다시 또 서로 몸을 비비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누렁이는 새끼에게서 떨어져 마당을 어슬렁거린다. 무사히 첫 출산을 마친 산모의 여유로움인가. 마당 구석 혼자서 꽃 피운 장미 앞을 지나간다. 마당 가운데 참깨 널어 비좁을만한데 용케 건드리지 않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참깨단 “똑...똑...똑...” 누렁이를 부른다. “똑...똑...똑...” 제 몸을 햇빛아래 쬐이며 누렁이를 부른다. 누렁이가 들은 척 만 척 고개돌려 마당 한 번 흝어본다. 그리고 무슨 일 있었냐는듯 제 밥그릇 있는 처마 밑으로 토닥토닥 발걸음을 옮긴다.

가을이 오는지 하늘 잘도 푸르다. 어머니 마당이 풍년이다.

“똑...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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