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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하늘 Jan 03. 2023

나는 왜 무얼 해도 잘 안될까?

주희의 수양론을 통해 살펴본 삶의 이치


평범한 10월의 가을날, 나는 신랑의 생일을 맞아 다이소에 가 예쁜 포장지와 리본을 자신있게 구매해왔다. 포장지까지는 무리 없이 진도가 쑥쑥 나갔으나, 박스에 리본을 화려하게 휘감는 일은 역시도 나에게 무리였던 것일까. 30분째 제자리 걸음이다. 내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으로 1차 시도만에 리본 묶기에 성공했지만, 백화점에서 포장해주는 그 단단하고 꽉 조여진 리본의 느낌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어딘가 헐렁하고, 어딘가 리본 전체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 하, 이번에도 실패인가?


이런 감정은 나의 일상에 종종 찾아온다.


저녁을 차리는 여느 평범한 주말 오후, 어느 정도의 물을 넣어야 적당한 국물 양이 될 지, 얼마만큼의 소금을 넣어야 적절한 간이 될 지는 매 순간 나에게 진지한 고민과 판단에 빠지게 한다. 하물며 빨래를 할 때도 마찬가지. 얼마만큼의 세제를 넣어야 빨래의 찌든 때가 적당히 잘 씻겨나갈지, 세제가 많아서 빨래에 남진 않을지, 적어서 덜 씻기진 않을까 하는 순간적인 찰나의 고민을 하며 세탁기에 세제를 넣는다. (사실 말로 이렇게 길게 풀었을 뿐이지, 이런 고민의 시간은 0.1초 정도 하는 것 같다)


참 어렵다, 살림.


안타깝게도 나는 이러한 감을 잡는데 상당히 느린 편이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시도해보지만, 늘 어딘가 아쉽고 내 마음에 100% 가득 차 지지 않는 만족감이다.


'후, 오늘도 실패인가?'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랬었다.


내 나름대로 고심 끝에 내린 판단과 결정임에도, 종종 가족들의 핀잔 섞인 농담을 듣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점은 어린 시절부터 나의 컴플렉스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개인적인 아쉬움만 있었을 뿐, 뭐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지도 않았지만,


문득 주희의 문구가 떠올랐다.



세상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이치를 갖추고 있으니,


이를 철저히 궁구하여 그 사물의 법칙인 '이'에 대한 앎을 지극히 하라.


- 주희의 <수양론> 중에서



다시 말해, 모든 현상과 사물에는 그 나름의 법칙과 원리가 존재하니, 결국 이러한 이치와 원리를 깨우치기 위해 자세히 살피고 고민하다보면 앎에 이른다는 것이다. 주희는 도덕적 수양을 위해 이 말을 남겼지만 나에게는 이 말이 비단 도덕적인 어떤 것 외에도, 내가 접하는 수많은 문제들도 그 나름의 원리와 방도가 존재할테니, 찬찬히 고민해보고 생각해보라는 말로 다가왔다. 그리고 고민 끝에 그 문제를 해결할 앎에 이른다면, 자연히 문제는 풀릴 거라는 것이다. 물론 다시 곱씹어 읽어보면 너무 뻔하디 뻔한 말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세상 만물의 이치와 원리를 궁구하라, 곧 그것이 길이니.'


내가 마주하는 "순간의 판단" 이 필요한 여러 문제들 속에서,

이것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원리와 이치는 무엇일지 고민해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방식,

이것이 나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부분은 아니었을까?


이 말은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여러가지 갈등상황, 문제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는 잘 지내는데 특정한 친구와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이유, 회사에서 기획안을 제출해보았지만 상사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었던 이유,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본 연인 관계에서 돌아오는 것은 이별뿐인 경우 등등, 너무나도 많은 상황들이 존재한다. 내가 한다고 했는데 그 결과는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경우. 우리 모두에게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마치 엄마가 해준 요리는 맛있어서 나 역시 따라해봤지만 내가 한 요리는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을 때처럼 말이다.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은 내가 어떤 부분을 놓쳤고 어떤 원리를 생각하지 못했는지이다.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앎은 무엇인지 원리와 방도를 깨우치기 위해 고심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또 다른 문제 해결의 길로 나아가게 해주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격물을 통해 치지하는 삶은 우리 삶을 이롭게 해준다.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 더 나은 나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 결과는 나로 하여금 진정한 깨우침에 이르게 하는 삶이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고, 내가 놓친 당연한 이치는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해결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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