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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낀표 Oct 29. 2023

저기… 결제가 안 된 것 같아서 다시 왔습니다.

마음 편한 대로 행동하자

산티아고 북쪽길 지도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길로 넘어와서 처음 만나는 대도시이자 북쪽길의 마지막 대도시인, Gijon(히혼).


원래는 하루만 묵고 떠나려고 했지만, 이곳이 산티아고 북쪽길의 거의 마지막 대도시이기 때문에 하루 더 묵기로 했다. 가격 대비 호화로운 숙소도 하루 더 있기로 한 결정에 한몫했다.


히혼의 숙소 1907Gijón, 56유로(8만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시설이 너무 좋았다!


히혼에 도착한 첫 째 날에는 도시의 초입부에 있는 KFC에서 식사를 했다. 8일 만이었다. (한국에서 보다 자주 먹는 듯)


KFC로 가는 길에 미국에서 온 노부부가 길을 물어 알려드렸는데, 우리가 반대 방향으로 가자 어디로 가냐고 물으셨다. KFC 먹으러 간다고 했더니 크게 웃으셨다. (이 부부는 나중에도 계속 만나게 되는데, 가는 곳마다 KFC 좋아하는 한국인이 있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셨다!)

스페인에서 정말 맛보기 어려운 매운맛을 KFC에서 만날 수 있다.


산티아고 길을 걷다 대도시를 만나면 꼭 아시안 마트나 대형 마트에 들른다. 한국 라면과 대형 마트에서만 파는 간식을 사 먹기 위해서다.

히혼에서의 첫날은 진라면을 공수해 끓여 먹고, 맛있어 보이는 간식을 사 먹으며 마무리했다.

대도시의 아시안 마트에 한국 라면이 있는 경우가 꽤 있다.


스페인에서 먹은 요거트 중에 제일 맛있었던 Dhul. 딸기가 거의 통째로 들어있었다. 이후로는 이 브랜드를 찾기가 어려웠다...
주방과 스마트 TV가 있는 숙소가 최고다. 유튜브로 무한도전 틀어놓고 라면 먹기.



사건은 둘째 날에 일어났다.


둘째 날에는 무한리필 스시집을 가기로 했다. 이곳 역시 8일 전, 프랑스길의 대도시인 부르고스에서 갔던 곳과 같은 유형의 가게이다. 한국 돈으로 약 2만 원 정도를 내면 무제한으로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는 뷔페 같은 곳. (참 잘 먹고 다니는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확신했다. 북쪽길이 프랑스길보다 음식에 진심이라는 것을.

무한리필 일식 레스토랑.. 점심 기준 약 15유로를 내면 대부분의 음식을 마음껏 시킬 수 있다.


같은 컨셉의 식당인데도 퀄리티가 달랐다. 인테리어도 지난번에 갔던 곳은 일식을 표방하는 중국풍 식당이었던 반면에, 이곳은 제대로 된 일식집 느낌이 났고, 무엇보다 음식의 질이 남달랐다. 

초밥도 한국에서 사 먹는 느낌이 났는데 산티아고 길에서 이 정도 퀄리티의 일식은 정말 만나기 어렵다.

라멘도 부르고스에서 먹었을 때는 인스턴트 라면 맛이 강했는데, 여기는 ‘라멘’이라고 부를 만은했다.


같은 일식당인데도 프랑스길에 있는 것보다 북쪽길의 식당이 훨씬 더 맛있었다. 


맛있는 음식에 더해 또 다른 기분 좋은 우연을 만나기도 했다. 직원 중 한 분이 한국계 스페인이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예약된 이름을 이야기하는데, “꼬레아노?” 하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너무 반가워 간단히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국어는 잘 못하시지만 친척이 한국에 살아 가끔 한국을 간다고 했다. 북쪽길은 걷는 사람이 적어 한국인을 본 적이 별로 없다고 하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도 산티아고 길에서 한국계 청년을 만나니 반가웠다.

산티아고 북쪽길에서 만난 한국계 청년, 반가움에 악수를 나눴다(?)


이곳은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으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방식인데, 내는 가격에 따라 시킬 수 있는 메뉴가 나뉜다. 우리는 싼 버전으로 먹었는데, 이 청년 분이 “스페셜로 초대하고 싶어요”라고 하시더니 우리가 시킬 수 없던 메뉴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따뜻한 마음씨 만큼이나 맛있었다.


한국계 청년 덕분에 먹었던 음식. 드래곤 롤. 새우튀김 롤에 아보카도가 올라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할 때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본인의 핸드폰까지 검색해 가며 이 지방(아스투리아스)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과 식당을 알려 주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이 지방이 음식이 맛있기로 스페인 내에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 계산대 앞에서 한참이나 음식과 맛집 특강을 들었다.


계산을 하다가 맛집 특강을 해주는 한국계 청년
헤어질 때 또 악수



맛있는 식사와 반가운 한국 청년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음까지 따뜻해져 식당을 나왔다.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근처에 있는 해변으로 향했다. 넓은 바다와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니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완벽한 하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부른 배를 떠받치고 바로 앞에 있는 바닷가로 향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런데 불현듯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 결제를 하면 앱으로 알림이 오는데, 이번에는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역시 앱에 들어가서 보니 결제된 내역이 없었다.


인식이 늦어지는 걸까? 결제가 안 된 걸까?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갈까? 그래도 확인을 해볼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속으로는 결제가 안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걸로 치면 안 될까?


하지만 그렇게 그냥 넘어가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더욱이 마음씨 좋은 한국계 청년까지 만나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는데, 정말 결제가 안 된 거라면 두고두고 마음이 찝찝할 것 같았다.


식당으로 돌아가서 제대로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돌아가보니 점심시간이 끝나 문이 닫혀 있었다. 다시 한번 유혹이 찾아왔다. 문도 닫혀있는데, 어쩔 수 없지.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우리는 쓰러져가는 양심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 저녁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결제가 안 된 것 같아 확인을 하러 다시 찾은 식당. 브레이크 타임으로 문이 닫혀있었다.


저녁 시간이 될 때 즈음부터 식당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손님이 몰리기 전에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서 해결을 할 심산이었다. 얼마 안 있어 가게 안에 불이 들어오고 직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녁 오픈 전에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점심에 식사를 하고 결제를 했는데 내 계좌에는 돈이 빠져나간 흔적이 없어서 혹시나 결제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고, 안 되었다면 결제를 하려고 왔다.


이 걸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쨌든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하려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에 직면했다. 직원분들이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거 그 한국계 직원분을 찾으면 빠르겠다 싶어서 물어보니 저녁 타임에는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번역기를 써서 아야기를 해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하긴, 그들 입장에선 갑자기 손님처럼 보이는 사람이 오픈 시간도 전에 들어와서 이상한 얘기를 하기 어리둥절할 만도 하다.

이야기를 하는데 뭔가 오해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우리가 도망간 걸로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 까지도.

한국말로 해도 상황 설명이 어려운데,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이야기하려니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직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그때 어딘가에서 다른 직원이 나타났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까지 가리키며 결제가 안 된 것 같아 왔다고 했다. 그제서야 말이 통해 포스기를 확인했다. 실제로 결제가 안 되어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아까 결제를 할 때 열정적으로 맛집을 소개해준 나머지 확인 버튼을 안 누른 것 같았다. 그 청년이 욕먹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식당의 포스기까지 확인을 하며 결국 결제를 해냈다(?)


아무쪼록 우리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의사소통에 성공했고, 결제까지 깔끔하게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결제가 안 된 것 같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냥 모른 척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도 같았다. 계산 실수를 한 가게의 잘못이니 그냥 넘어가지 융통성 없게 굳이 돌아가서 결제까지 하냐고.


하지만 결국 자기의 마음이 편한 대로 행동하는 게 역시 좋다. 모른 척했으면 그 맛있었던 식당과 마음씨 좋았던 청년과의 기억은 외면하고 싶어 졌을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맞다고 생각한 일을 했고, 덕분에 히혼이라는 도시와 그 식당과 마음씨 따뜻한 청년은 우리의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히혼에서 있었던 일 한 가지 더.


숙소 앞 마트에서 하몽 튀김 과자를 발견했다.

비싼 점심을 먹었지만 이 과자는 꼭 먹어보고 싶었다.

억지를 부려 결국 샀다.

숙소에 도착해서 시식

을 하려다가 봉지를 터뜨렸다.

살기가 느껴졌다.

말없이, 빠르게 치웠다.


결론. 저 하몽 튀김 과자 맛없음. 봉지가 질기니 뜯을 때 조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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