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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낀표 Dec 03. 2023

스페인 산티아고 맛집 순례단 - 깔도 가예고

스페인 산티아고 음식&맛집 랭킹 Top8

<80일간의 신혼여행> 35번째 글.


'스페인 산티아고 음식&맛집 랭킹 Top8'의 두 번째 글이자, 7위 깔도 가예고(Caldo Gallego).


다른 편과 달리 깔도 가예고는 특정 식당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갈리시아 지방 전역에서 흔하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고, 메인 요리라기 보단 식전 음식과 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깔도’는 스페인어로 국물을 뜻이고, ‘가예고’는 ‘갈리시아의’라는 뜻이다. 즉, 깔도 가예고는 ‘갈리시아의 국물 요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생긴 건 볼품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국물만큼 순례자에게 위안을 주는 음식이 있을까.


강렬한 태양이 떠오르는 스페인 산티아고 길은 의외로 춥다. 우리가 길을 걸었던 5~6월까지도 오전과 저녁에는 후리스와 바람막이를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했다. 여름도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과 밤에는 쌀쌀한 바람이 분다. 매일같이 수 시간을 걸으며 지친 여행객에게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국물만큼 먹고 싶은 것이 없다(특히 한국인이라면 더욱).

하지만 스페인을 비롯한 서유럽 나라에는 국물 요리가 발달해 있지 않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아쉬운 점 중의 하나가 따뜻한 국물의 부재다. 그런데 여기 산티아고 길의 끝자락인 갈리시아 지방에는 지친 몸과 마음을 녹여줄 국물 요리가 있다. 


내가 깔도 가예고를 만난 것은 2016년 여름, 나의 첫 산티아고 길에서 였다. 당시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이미 여행 9개월차에 들어선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달랑 90만원을 들고 여행을 떠난 나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돈을 모았고, 뉴질랜드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에 도착, 동유럽에서 서유럽을 가는 길은 히치하이킹에만 의지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산티아고 길을 걷기 시작한 나는 뭔가 따뜻한 것, 매운 것, 달고 짠 게 먹고 싶었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에서 그런 음식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갈리시아 지역에서 뜻밖의 따뜻한 국물 요리를 만난 것이다. 그게 바로 깔도 가예고였다.


깔도 가예고는 보기에도 그렇고, 실제 맛도 시래기국이나 시금치 된장국과 닮았다. 감자, 콩, 초리소, 순무잎이 주 재료로, 먹으면 왠지 모르게 푸근함이 느껴진다. 따뜻한 국물에 순무잎에서 느껴지는 향과 흐물흐물해진 야채의 식감은 시래기국과 비슷하다. 초리소에서 나오는 약간의 고기 기름과 감자가 풀어져 되직해진 국물은 아주 순한 맛의 감자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입 먹으면 ‘와!’하는 감탄이 나온다. 그 감탄은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에 대한 놀라움은 아니다. 그보단 따뜻한과 정겨움에 대한 노스텔지어, 그리움에 대한 탄성일 것이다. 깔도 가예고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타지에서 길을 걷는 이들에게 그런 안식을 준다.

깔도 가예고. 여러모로, 따뜻한 음식이다.

다만 정통 한국의 맛을 기대한다면 깔도 가예고는 순식간에 이질적인 음식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처음 깔도 가예고를 먹었을 때는 아무 정보도, 기대도 없었다. 지쳤을 때 우연히 만난 국물요리였다. 그랬기에 그 감동이 컸다. 하지만 이번 80일간의 신혼여행 중 먹은 깔도 가예고는 내 기억과는 약간 달랐다. 어쩌면 내 기억이 지나치게 보정이 되어있었던 것 같다. 

순무잎은 우리에게 익숙한 맛이지만 콩과 초리소는 이국적인 맛을 낸다. 시래기국이나 시금치 된장국, 감자탕을 기대하고 먹는다면 물음표를 띌 수도 있다. 깔도 가예고에는 된장도 없고, 들깨가루도 없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깔도 가예고를 한국의 음식에 비교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나라의 새로운 음식으로 생각하고 먹어야 괴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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