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의 인기가 뜨겁죠.
저도 한 번 틀면 좀처럼 멈추기가 힘들더라고요.
연신 '와, 재밌다'라는 감탄사를 남발하면서요.
그래서 시간을 가지고 왜 재밌는지 고민을 해봤습니다.
3가지 관전 포인트가 떠올랐어요.
흑과 백, 타이틀에서부터 구도를 잡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미 명성이 높은 최정상급 셰프들(백)과
무명이지만 놀라운 실력을 가지고 있는 숨은 고수들(흑)
일반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심사위원의 권위에 기대어 그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하죠.
참가자들은 경쟁자이자 동료일 뿐이에요.
하지만 <흑백요리사>에서는 같은 참가자임에도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런 구도는 이야기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요.
제가 재밌게 봤던 구도는 최강록 셰프와 참가자 '만찢남'입니다.
최강록 셰프는 <마스터셰프 코리아>의 우승자로, 만화책에 빠져 요리를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죠.
<흑백요리사>에는 최강록 셰프가 백 요리사로, '만찢남'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참가자가 흑 요리사로 등장합니다. 이 참가자도 만화책으로 요리를 배웠다고 하죠.
그러니깐, 만화책으로 요리를 배우고 시작한 배경을 가진 요리사 중 최정상에 있는 최강록 셰프와 정상에 오르려고 하는 '만찢남'의 대결 구도가 나오는 것이죠.
이 둘이 교차편집 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상상됩니다.
실제로 유튜브 쇼츠에도 이 둘의 구도로 파생되는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제작진이 이러한 구도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칫 이런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연출 측면에서 극적으로 강조하기 마련이죠.
비슷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든가, 자막을 넣는다든가, 대결 구도의 이미지를 만든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흑백요리사>는 이런 관습을 따르지 않습니다. 억지스럽게 강조하지 않아도 시청자는 알아차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죠. 혹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이제는 콘텐츠 소비자들이 2차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시대입니다. 약간의 결핍은 시청자들의 창작 욕구를 증폭시키죠.
유튜브에 <흑백요리사> 콘텐츠가 넘쳐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은 요식업의 대가인 백종원과 국내 유일 미슐랭 3 스타 셰프 안성재 두 분이 맡았습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상업과 예술의 만남이라고 볼 수 도 있을 것 같아요.
상업의 관점에서는 효율성, 시장성을 추구하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파인 다이닝은 최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죠. 실제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의 폐업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해요.
가격이 비싸도 재료나 업장 관리에 그 이상으로 돈을 쏟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깐 효율보다는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예술적 행위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https://news.nate.com/view/20240926n02085
일반적으로 음식을 먹을 때 판단의 기준은 맛이죠. 그런데 맛이라는 것은 주관적입니다. 맛 이외에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저는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처음으로 '셰프의 의도'라는 요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만든 이의 의도가 음식에 반영되었는가. 미슐랭 셰프 안성재 심사위원의 기준이죠.
<흑백요리사> 이전에는 특별히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음식을 보는 관점을 넓혀줬습니다. 1화, 2화가 넘어가면 시청자들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저 셰프가 왜 저런 시도를 하는지에 대해서요.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콘텐츠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흑백요리사>는 그걸 해내고 있어요.
대다수 서바이벌 요리 경연 프로그램은 다수결에 의존합니다. 아니, 현실 세계에서 하는 대부분의 결정이 그렇죠. 하지만 다수결이 항상 최선일까요?
다수결은 쉽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찬성했으니 진행하자. 깔끔하죠.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깊이 있는 논의와 고민이 결여될 가능성이 있어요.
<흑백요리사>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어요. 두 명의 심사위원을 둠으로서 만장일치 아니면 토론이라는 방식을 선택했죠.
실제로 두 명이서 심사를 할 때 1대 1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럴 때면 두 명이서 토론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합의점을 찾아내죠.
어려운 길이지만, 토론 끝에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냅니다. 감정이나 대세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가 기준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심사위원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의 다수결 투표는 권위입니다. 잘 수긍이 되지 않아도 다수결이니까.
하지만 토론은 권위에 기대지 않습니다. 더 합리적인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죠.
그래서 심사위원은 너무 큰 권위를 가지지 않습니다. 연출에서도 그런 의도가 표현되죠.
안대를 씌우고 먹는 모습이 대표적이에요. 공정함을 위해 안대를 씌운 것인데, 보통이라면 심사위원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 이런 기획은 통과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흑백요리사>는 과감하게 심사위원에게 안대를 씌우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권위보다는 합리적인 토론과 공정성을 우선시한다는 걸 보여주죠.
이외에도 출연진의 개성 있는 캐릭터와 품격, 공정성이 눈에 띄었어요.
일반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도 개성 있는 캐릭터는 많이 나오죠. 하지만 여기선 백 요리사의 품격이 특별히 돋보였던 것 같아요.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 전문가로서의 마음가짐이 인터뷰나 행동을 통해 드러났어요. 그 모습을 보는데 존경심이 우러나오기도 했습니다.
또 공정성에도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심사위원의 안대도 그렇고, 3라운드에서 진행된 미스터리 심사단에서도 그걸 느낄 수 있었어요.
100명의 일반인 심사단이 각자 음식을 먹고 평가하는 시스템이었는데요. 백종원, 안성재 셰프도 그 100명에 속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심사위원의 표는 가중치를 받을 법도 한데, 일반인과 같은 한 표를 받은 것이죠.
공정성에 특별히 신경 썼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심상치 않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흑백요리사>. 연출과 기획 측면에서 분명 한 단계 진화한 콘텐츠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재밌게 보면서 어떻게 이런 기획을 했을까, 하는 감탄도 곁들이면서 보는 중이죠.
여러분의 관점 포인트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