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모임에서, 소개팅에서.. 인연의 범위는 끝없이 확장된다.
세상은 작은 마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가 어떤 곳에 있든, 언제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인연을 찾을 기회가 언제든지 있다고 생각을 하고, 때로는 인연을 기다리기만 한다.
마치 운명처럼 어떤 순간에 내 앞에 나타날 그 혹은 그녀를 꿈꾸며.
하지만 운명과 같은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나의 회사 동료였던 A는 키가 크고 성격도 좋은 데다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듬직한 남자분이었는데, 나의 기준에서는 소개팅 시켜주기에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에게 "제 지인 중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여자분이 있는데, 소개팅하실래요?"라고 물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자만추라서요, 괜찮습니다".
(자만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로, 소개팅이나 맞선 같은 인위적인 만남을 추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나는 연애 스타일)
누구나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 그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나 또한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하루 9시간 이상을 직장 동료들과 함께 지내게 되고, 아무래도 학생 때에 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집-회사-집-회사를 왔다 갔다 하며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는 피곤해서 집에 있거나 친구들을 주로 만나다 보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조금 전 이야기한 A는 남성 비율이 높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그가 속한 부서 또한 80% 이상이 남자 직원이었다. 당연히 회사 내에서는 인연을 찾을 확률이 매우 낮았다.
심지어 그가 취미로 하고 있는 운동은 아이스하키란다.
남자들끼리 우정을 쌓아나가고 체력을 키우기에는 무척 좋은 운동이지만 인연을 만나기에는... 글쎄..
확실한 건 평일에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는 아이스하키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면,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몇 년이 지나고 잠시 연락이 닿은 그는, 아직 인연을 찾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그가 자만추를 선호하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좋은 인연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날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깨달은 후에, 여러 모임도 나가고 소개팅도 적극적으로 받으면서 인연을 찾기 위해 애썼다.
소개팅은 한 번은 만나보자는 마음으로 일단 받아들였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모임들을 찾아서 나가기 시작했다.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하여 독서, 승마, 사진, 사교, 와인, 경제공부 등 다양한 모임들에 참여를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어떤 성격을 가진 모임이든 간에 반드시 커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럿이 말이다.
실제로 내가 참석했던 모임 내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들도 꽤 있었다.
(다만 이러한 모임에서 만남을 가질 때는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
인연을 찾고 싶다면,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움직이자.
지인에게 소개도 받아보고 모임에도 나가보면서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던져보자.
그리고 관심이 가는 사람, 흥미로운 사람,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천천히 다가가보자.
나의 경험상, 인연은 내가 만들어가야지 그냥 오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함께 가져보았으면 한다.
요즘은 MBTI를 통해 나에게 맞는 배우자상을 알아본다고도 한다. 하지만 MBTI라는 네 글자로 스스로를 혹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나와 잘 맞는 이성의 성격은 어땠는지, 나의 연인 혹은 배우자가 될 사람이 꼭 지켜줬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잘 생각해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 내가 멋져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평생을 함께하고 싶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도 분명해질 때, 더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