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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찌 Jun 15. 2024

집사의 뿌리

나는 어쩌다 식집사가 되었을까?


식물집사

 식집사, 혹은 식물집사. 반려동물 대신 반려식물을 기르는, 그리고 말 못 하는 이 친구들을 살뜰히 보필하는 사람을 말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고양이를 '모시고 산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에서 '고양이 집사', 혹은 '냥집사'라는 말이 생겼고, 이제는 그 이름이 식물에게까지 확장되어서 생긴 타이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는 식집사다. 내가 모시고 있는 귀여운 초록 아가들과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기로 결심했지만, 사실 정확히는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뗀 삐약이 초보식집사다. 초록이들과 함께하는 이 이야기의 시작, 아무래도 역시 나의 '식집사력(?)'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자연과 함께하는 게 더 익숙하고 당연해

 성심당의 도시, 꿈돌이의 고향. 나는 태어나서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쭉 대전에서 자라왔다. 대전이 그래도 광역시인데 어떻게 그렇게 시골에서 살던 것처럼 많은 추억들이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대전은 대도시다. 암 그렇고 말고), 온 동네를 골목대장처럼 누비고 다니던 장난꾸러기였던 나에게 자연은 그 어느 곳보다도 재밌는 놀이터였다. 지금은 화들짝 놀라며 피하는 벌레도 그때는 두렵지 않았었는지, 멀쩡한 길을 놔두고는 온 풀숲을 헤치며 돌아다녔고, 나무 위에 괜히 올라가기도 했다. 여름밤이면 창문 새로 개굴개굴하는 개구리 소리가 들려와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기도 했고, 맹꽁이의 귀여운 소리에 자율 학습에 집중을 못하고 괜히 화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밤이면 동아리 친구들과 별을 보러 가기도 했다. 내게는 이런 삶이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경기도로 이사를 오고 난 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밤에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여기저기 아주 높은 빌딩 숲이 보였다. 물론 커다란 나무와 초록의 공간으로 보장해 둔 '공원'들도 있었지만, 일상에 저 멀리 수묵화처럼 산이 둘러싼 분지 대전에 살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달까. 나는 여전히 초록을 갈망하고, 초록을 사랑한다.




식집사 부모님 밑에 식집사 딸


 우리 엄마아빠는 식물을 돌보고 키우시는 걸 정말 좋아하시고 잘하신다. 어릴 때를 떠올리면, 아빠랑 같이 주말농장(*땅을 조금 빌려서 방울토마토라던가, 상추, 고추 같은 아이들을 길러 수확했었다)에 갔던 것이 떠오른다. 물론 나는 그때 벌레가 무서워서 징징대다가 가끔 자라나는 걸 보고 신기해하거나 수확된 걸 맛있게 먹는 역할을 주로 맡았었지만, 이후에도 아빠는 집에서 베란다 화단을 만드시곤 거기서 농작물을 기르시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엄마는 거의 식물 분야 드루이드나 다름없으시다. 내가 햇볕 없던 기숙사에서 거의 반쯤 죽여서 데리고 온 작은 몬스테라도 어느새 엄마의 아이가 되더니 지금은 내 머리보다 큰 이파리를 자랑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 집 거실에는 엄마의 정원이 있다. 초록이들도 엄마의 그런 사랑과 정성과 관심을 아는 듯, 이파리에서도 윤기가 나고, 꽃도 자주 피는 것 같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내게,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비록 나는 잘 못하지만 우리 엄마아빠는 무척 잘하시는 멋진 취미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강아지를 대신하는 반려식물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강아지를 키우기를 소망해 왔다. 심지어 아직 데려오기로 정하지도 않은 강아지의 이름도 벌써 지어두고서는 매일 귀여운 강아지 분양글을 찾을 때마다 엄마한테 외쳤다. "엄마, 얘가 걔야! 빨리 데리러 가자 우리 강아지!" 그러면 엄마는 항상 대답하셨다. "우리 집에 강아지는 너 한 마리로 충분해!"

가족들도 다들 강아지를 귀여워하긴 하지만, 나와 가족들의 알레르기성 비염과 기타 등등 현실적인 이유를 고려했을 때 아마 앞으로도 한참은 강아지를 데려오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강아지 대신 반려식물을 들이기로 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돌아보니 초록을 사랑하고 갈망하고, 그리고 그런 초록을 돌보고 기르는 것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우신 부모님 밑에서 식집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은 강아지집사가 될 수 없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대안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무작정 불도저처럼 직진하는 나는 2024년 늦봄, 식집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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