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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Oct 21. 2020

별 하나의 아픔

결국 "동해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라는 마음까지 먹게 한 그 일의 시작점은 이제 와서 반성해 보건대 결국 초심을 잃은 우리 마음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제는 초보 사장 티를 벗고 손님 응대와 집수리에 적응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막상 두 번의 성수기를 겪고 나니 이건 적응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내 몇몇 진상 때문에 마음이 많이 다쳤는데 그로 인해 언젠가부터 손님들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게 됐다.


게스트하우스는 결국 주인장의 인심과 개성이 그 공간을 완성하는데 어느샌가 닫힌 마음은 손님들께도 전달되기 시작했고 이는 일부 악성 리뷰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또 한 번 상처 받은 마음은 더욱더 손님들께 높은 장벽을 치게 되고 이는 다시 안 좋은 리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유지했기에 손님이 크게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상처 받은 마음은 도저히 처음으로 돌아오질 않았다.


장사를 하겠다면 리뷰에 상처 받을 각오 정도는 해두는 게 좋겠다. 대부분 좋은 리뷰가 많았지만 1~2건의 악성 리뷰는 사업의 뿌리를 흔든다.


소비자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부분도 가끔은 짜증이 나거나, 내가 조금 고생하면 손님들이 즐거울 수 있는 부분들도 하나둘씩 멀리하며 점점 더 간편하게 운영규칙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업무가 단순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지역 생활에 매너리즘에도 빠지기 시작했는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한없이 바쁠 때는 커피 한 잔의 여유에도 감사할 줄 알다가 막상 시간이 넘쳐나니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조금씩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에 늘 시달리던 직장생활에 비하면 너무나도 감사한 삶이었지만, 이제는 그 감사함도 조금씩 무뎌지고 소도시의 단순한 생활 패턴에 나름의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록, 성수기는 언제나 고달프지만 그에 비례하여 수입이 늘어나기도 하고 비수기엔 그 고됨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삶이 주어진다. 우리가 좋아서 이주해온 이곳의 삶과 환경은 그대로인데 사람 마음이 변하니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변하게 된 건데, 약간의 핑계를 대자면 하루였지만 마음을 다 내어준 손님들로부터 (친동생처럼 술도 사주고 밤새 고민도 들어주고) 소비자로서의 냉정한 리뷰를 몇 번 받다 보면 손님들이 기다려지기보다는 두려워지는 순간이 온다.


물론, 이는 소비자로서의 당연한 권리겠지만 게스트하우스의 특성상 그런 관계를 떠나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니 아무래도 더욱 돌아오는 아픔이 컸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일'로서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 시작하자 급격히 그 흥미를 잃기 시작했는데, 이럴 때 한 잔 술에 털어버릴 친구들도 모두 멀리 있으니 조금씩 우리 마음에도 외로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즐거운 밤을 보냈어도 리뷰 앞에서는 냉정 해지는 손님들이 있다. 어느 순간 가면을 쓰고 손님을 응대하기 시작하면 주인장으로서의 생명은 끝이 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이 이어지던 중 이를 극복할만한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다. 우리는 사실 딱히 아기를 갖고자 하는 의지가 크지는 않았다. 오히려 딩크족에 가까웠는데 이곳에서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 가족들을 많이 보다 보니, 결혼 4년 만에 아기를 가질까? 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두 달만에 선물 같은 아가가 찾아왔다. 한 번의 화유가 있었기에 새 생명은 더 큰 기쁨으로 찾아왔는데 비록 지금 힘들어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주는 이 공간에 감사해졌고, 아빠로서의 책임감도 느끼며 다시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이 좋은 환경에서 새로운 식구까지 함께할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행복한 하루하루가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또 한 번의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너무나도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이었는데, 비록 10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심장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은 정말이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분명 이틀 전 검진에선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었는데, 이틀 후 정기검진에선 정적만 흐르던 그 적막한 순간이 참 슬프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힘들었겠지만 씩씩하게 이겨내던 아내 옆에서 위로는커녕 더 힘들어하던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이다. 주변에서도 우리와 같이 초기 유산이 반복되는 경우를 보긴 했지만 막상 직접 겪고 나니 참 많은걸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며칠간 서로를 다독이며 정신을 차렸지만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맥이 풀리며 사업에 대한 의지도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가 아마 처음으로 앞으로 이 공간을 얼마나 더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삶을 찾아 강원도 동해시까지 왔는데 이제부턴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과연 잘한 선택일까..?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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