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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Nov 12. 2020

한 밤의 피난길

2019년 봄, 동해로 이사 온 지 2년 만에 가게를 내놓았다.


밑에 집 할머니께서 안 그래도 너무 젊을 때 왔다며 도시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 더 해보고 다시 와도 얼마든지 좋을 거 같다고 하신다. 결국, 가게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건 전부터 고민하던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골 가게인 관계로 매각까지 짧게는 수개월에서 1~2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란 생각에 우선 가게를 내놓긴 했지만, 사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 부동산 사장님이 요새는 거래가 뜸한 시기라 문의조차 별로 없을 거라고 하신다.


그러고 나서 한 달이나 지났을까? 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집을 보고 싶다는 분이 생겼다. 매물로 내놓은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시기에 처음으로 집을 보러 오시는 분이었는데, 부동산 매매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니 별생각 없이 물어보시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을 드렸고 가게 매출과 순이익 등도 공개해드렸다. 그런데 집도 인연이 있는 건지 그 손님께서 두 번째 방문과 함께 바로 매수 의사를 밝히셨다. 첫날 방문에 이것저것 꼼꼼하게 물어보시긴 했지만, "원래 꼼꼼한 성격이신가 보다", “연세가 좀 있으셔서 매매하진 않으시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답변에 순간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부동산 거래에 늘 동반되는 가격협상도 잘 끝나고 그 즉시 가게 인수인계 작업이 시작됐다. 가능한 한 빨리 인수하고 싶으시다며 한 달 안에 바로 가게를 이어받고 싶다고 하신다.


우리처럼 부부 두 분이서 운영할 예정이시라고 했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선한 분들로 보였다. 상호도 마음에 드신다며 최대한 원래 모습 그대로 운영하고 싶으시다며 이 공간에도 애정을 많이 보이셨다. 그나저나 이렇게 갑자기 여기를 떠나게 될지 몰랐는데 막상 거래가 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직 아무런 미래계획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덜컥 도장을 찍고 나니 어안이 벙벙했고 설상가상으로 인수인계로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두 분께서는 강릉에 살고 계셨고 남자 사장님은 원래 캐나다에서 오래 사업을 하시다 은퇴 후 고향에 돌아오셨다고 한다. 막상 은퇴 후 고향에서 생활하니 무료하기도 하고 아내분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늘리고 싶으시다며 생애 처음으로 자영업에 도전해 보신다고 한다. 이왕이면 작은 규모로 그리고 잘 운영되고 있던 곳을 찾아 인수하길 희망하셔서 절묘하게 조건이 잘 맞았다. 아마 외국에서 오래 사셨던 분이라 우리같이 젊은 감성을 더 좋아하셨던 것 같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배우고 익힌 모든 노하우를 전달해 드렸고 인테리어 및 운영방안 중에 바꾸고 싶어 하시는 부분도 최대한 도움을 드렸다. 초반 적응 과정에선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행히 가게를 잘 운영하고 계시고 전처럼 지역에서 가장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곳으로 남아있다. 부동산 거래는 참 알 수 없는 게 한 달간은 아무런 문의조차 없다가 막상 가계약을 하고 나니 집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계속 나왔는데 아무래도 부동산도 사람들이 많이 보러 다니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아무쪼록 동해에서 계속해서 깨끗하고 친절한 숙소로 잘 이어 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얼마 전 그분들도 그곳을 떠나시고 다시 젊은 부부가 가게를 인수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나저나 한 달간의 인수인계 도중 강원도 속초에 대형산불이 났다. 피해가 막심했던 속초, 고성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가 있는 동해, 강릉에도 산불이 발생했는데 지금도 아찔했던 그날의 화마는 잊을 수가 없다. 이제 막 잠들었을 11시 무렵 갑자기 요란한 재난문자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핸드폰을 열자마자 두 눈을 의심했는데 바로 우리가 있는 동해 지역의 산불 발생을 알리는 재난 문자였다. 강릉 옥계에서 시작한 불이 동해 망상해수욕장 인근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워낙 바람이 강한 상태라 이 기세라면 동해 시내까지 번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던 중 베란다 넘어 보이는 커다란 불길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방금 받은 재난문자의 현장이 집 안 베란다를 넘어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던 거다.


아파트 베란다 넘어 보이는 큰 산불

워낙 강풍이 심했던 날이라 불이 삽시간에 퍼져가고 있었는데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우리 아파트였고, 그 불이 가게가 있는 묵호까지도 번질 것 같은 공포심이 들었다. 계약금을 받고 한 달 사이에 뭐 별일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주택 화재보험까지 모두 해지한 상태였는데 우리의 전 재산이 불에 타는 상상을 하니 정말이지 등골이 오싹했다. "아, 이렇게 한 순간에 망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라도 화재 피해를 입으면 실제 매각가와 다르게 터무니없이 낮은 공시 가격을 기준으로 보상범위가 이루어질 테고 그 마저도 언제가 될지, 받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눈 앞에서 이렇게 큰 자연재해를 겪는 건 처음이었는데 지난여름 바닷가 태풍에 이어 이번엔 산불이라니.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늘 갈망하지만, 막상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다 보면 자연의 무서움 또한 늘 체감하며 살곤 한다.


놀란 아내를 우선 진정시키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귀중품과 옷 가지를 챙겨 시에서 지정한 대피장소로 차를 몰았다. 우리 말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시민들 모두 정확한 현재 상황을 다양한 매체에 공유하고 있었다. 전국에 있는 모든 소방인력과 장비가 강원도로 집결됐고, 다행히 아침이 다가오며 큰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마을 지역까지 불이 번지는 건 잡았다고 한다. 밤새 고생하셨을 소방관 분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순간이었다. 비록, 불길은 잡혔지만 당시 산불피해는 상당했는데 속초, 고성지역은 약 2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피해복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동해 망상해수욕장 인근도 아직까지 복구 중인 상태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난길에 올랐다.

서울에서는 딱히 경험하지 못한 자연재해가 이 곳에선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가장 많은 유형은 역시 홍수, 태풍, 산불이다. 특히나 바닷가 앞은 피해가 심한 편인데 반복되는 재해에도 불구하고 100%의 예방은 아직 불가능한 것 같다. 자연의 여유로움만 즐기던 도시생활과 다르게 자연이 주는 위험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잘 모를 것 같다.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시골의 삶도 이런 어려움이 있고 특히나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를 겪고 나면 늘 평온하던 바다가 소름 끼치게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도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역들은 얼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면 하며, 주택 생활자들에겐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꼭 화재보험을 해지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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