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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Oct 19. 2020

심심하지만 매력 있는 동해시

가끔 찾아오는 진상 손님들을 제외하곤 전반적으로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다. 하나둘씩 아는 사람들도 생기고 자주 가던 음식점과 카페 사장님들과도 친분이 생겼다. 또, 카페 단골손님 중에 대화가 잘 통해 따로 만나게 되는 인연도 생기는 등 전반적으로 삶이 많이 안정되었다. 마침 출산 후 양양에 머물던 전 집주인 네 부부도 동해를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는데,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주택 하나를 얻어 BNB를 시작하고 시내에 직장까지 얻게 됐다.


사람 인연이 참 신기한 게 서울이었으면 한 번 보고 마는 매도인과 매수인의 관계로 끝이 났겠지만, 다시 동해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반가워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 이곳에서 다시 만나니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너무 좋았는데 아내와는 파주 동향인 언니인지라 공감대도 느끼며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실 부부가 365일 같이 있다 보면 좋을 때도 많지만 지루하거나 싸울 때도 있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사업과 동네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면 사계절을 보낸 뒤엔 단순한 생활의 반복과 비슷한 또래의 마음 통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조금씩 무료함을 느끼던 시기에 이런 새로운 인연은 삶에 큰 활력소가 됐다.


이 밖에 게스트 한 분이 추천해주신 인근의 카페 사장님 부부와도 인연이 생겼다. 우리와 결이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하다며 한 번쯤 찾아가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손님께서 얘기해주셨다. 당시 "모모의 하루" (현재는 "묵호 사진관" 운영 중)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첫 방문에 마치 서로를 기다렸다는 듯이 친해지게 된 후 동해에 머무는 내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됐다.


퇴근 후 바닷가 고기란 동해라서 가능하다

비록 살아온 배경과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은 달라도 그런 다른 점이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고 할까. 그동안 만나봤던 수많은 사람 중에 가장 "잘"사는 부부였는데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의 물질에 감사할 줄 알고, 본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이를 말에 그치지 않고 하나씩 둘의 속도에 맞춰 실천하며 사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할 따름이다.


두 부부와 친해진 시기가 마침 비슷해 함께 만나면 재미있을 것 같아 우리가 매개체가 되어 모임을 주선한 날이 있다. 모두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달랐지만, 동해의 인연은 그런 다름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뒤로도 종종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때가 동해 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였던 것 같다. 혼자 보내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소도시의 삶음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다. 두 부부 모두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소소한 에피소드가 많이 생겼다.


마트에서 1+1 제품을 사면 집에 가는 길에 잠시 차를 세워 문 앞에 걸어 두기도 하고, 수박 한 통을 사면 반을 쪼개서 나누곤 했다. 간식으로 떡볶이와 꽈배기를 사서 집에 가다가도 부부네 집에 불 빛이 보이면 불쑥 들어가 간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명절엔 끼니를 거르고 일하고 있을 우리를 생각해 도시락을 싸다 주기도 한다. 시골의 정을 함께 나눌 가족이 생긴 건데 이런 소소한 소도시의 즐거움은 아마 서울에서라면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묵호는 좁은 동네다 보니 지나가다 서로 차가 마주치는 경우도 많았는데 바닷가 앞에 있는 모모네 차를 보면 우리도 잠시 같은 곳이 차를 세우고 바닷가에 가기도 하고 손님이 없는 날엔 모두 가게로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한다. 두 가족 모두 어린 아기가 있었는데 매일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며 마치 우리가 부모처럼 뭉클해질 때도 있고 육아의 행복과 고됨도 미리 체험할 수 있었다. 아무 의지할 곳 없는 타지에서 만난 인연과 추억은 지금도 많이 그립고 그 삶이 그리워 다시 강원도 라이프를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그렇게 좋은 인연들과 동해시 생활에 푹 빠져있던 중 두 번째 성수기가 찾아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라 작년 대비 손님이 조금 줄긴 했지만 그래도 큰 사건 없이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2018년 여름은 엄청난 폭염이었는데 집에 에어컨이 없던 관계로 매일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다. 2인실 방이 비어있는 날엔 가게로 피신하다시피 도망치곤 했는데 가장 더운 8월 초에는 극성수기 시즌이라 객실이 매일 가득 차 피신할 장소가 없었다. 언덕 위 바닷바람이 잘 들어오는 집이라 주변 사람 모두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다고 했는데 그해 여름은 그 시원한 태백까지 너무 더워 고생했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우리만 고생한 건 아니었나 보다.


이렇게 지치도록 더운 여름을 무사히 넘기긴 했지만 결국엔 큰 문제가 하나 생기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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