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동해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라는 마음까지 먹게 한 그 일의 시작점은 이제 와서 반성해 보건대 결국 초심을 잃은 우리 마음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제는 초보 사장 티를 벗고 손님 응대와 집수리에 적응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막상 두 번의 성수기를 겪고 나니 이건 적응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내 몇몇 진상 때문에 마음이 많이 다쳤는데 그로 인해 언젠가부터 손님들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게 됐다.
게스트하우스는 결국 주인장의 인심과 개성이 그 공간을 완성하는데 어느샌가 닫힌 마음은 손님들께도 전달되기 시작했고 이는 일부 악성 리뷰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또 한 번 상처 받은 마음은 더욱더 손님들께 높은 장벽을 치게 되고 이는 다시 안 좋은 리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유지했기에 손님이 크게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상처 받은 마음은 도저히 처음으로 돌아오질 않았다.
소비자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부분도 가끔은 짜증이 나거나, 내가 조금 고생하면 손님들이 즐거울 수 있는 부분들도 하나둘씩 멀리하며 점점 더 간편하게 운영규칙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업무가 단순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지역 생활에 매너리즘에도 빠지기 시작했는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한없이 바쁠 때는 커피 한 잔의 여유에도 감사할 줄 알다가 막상 시간이 넘쳐나니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조금씩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에 늘 시달리던 직장생활에 비하면 너무나도 감사한 삶이었지만, 이제는 그 감사함도 조금씩 무뎌지고 소도시의 단순한 생활 패턴에 나름의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록, 성수기는 언제나 고달프지만 그에 비례하여 수입이 늘어나기도 하고 비수기엔 그 고됨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삶이 주어진다. 우리가 좋아서 이주해온 이곳의 삶과 환경은 그대로인데 사람 마음이 변하니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변하게 된 건데, 약간의 핑계를 대자면 하루였지만 마음을 다 내어준 손님들로부터 (친동생처럼 술도 사주고 밤새 고민도 들어주고) 소비자로서의 냉정한 리뷰를 몇 번 받다 보면 손님들이 기다려지기보다는 두려워지는 순간이 온다.
물론, 이는 소비자로서의 당연한 권리겠지만 게스트하우스의 특성상 그런 관계를 떠나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니 아무래도 더욱 돌아오는 아픔이 컸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일'로서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 시작하자 급격히 그 흥미를 잃기 시작했는데, 이럴 때 한 잔 술에 털어버릴 친구들도 모두 멀리 있으니 조금씩 우리 마음에도 외로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이 이어지던 중 이를 극복할만한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다. 우리는 사실 딱히 아기를 갖고자 하는 의지가 크지는 않았다. 오히려 딩크족에 가까웠는데 이곳에서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 가족들을 많이 보다 보니, 결혼 4년 만에 아기를 가질까? 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두 달만에 선물 같은 아가가 찾아왔다. 한 번의 화유가 있었기에 새 생명은 더 큰 기쁨으로 찾아왔는데 비록 지금 힘들어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주는 이 공간에 감사해졌고, 아빠로서의 책임감도 느끼며 다시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이 좋은 환경에서 새로운 식구까지 함께할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행복한 하루하루가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또 한 번의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너무나도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이었는데, 비록 10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심장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은 정말이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분명 이틀 전 검진에선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었는데, 이틀 후 정기검진에선 정적만 흐르던 그 적막한 순간이 참 슬프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힘들었겠지만 씩씩하게 이겨내던 아내 옆에서 위로는커녕 더 힘들어하던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이다. 주변에서도 우리와 같이 초기 유산이 반복되는 경우를 보긴 했지만 막상 직접 겪고 나니 참 많은걸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며칠간 서로를 다독이며 정신을 차렸지만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맥이 풀리며 사업에 대한 의지도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가 아마 처음으로 앞으로 이 공간을 얼마나 더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삶을 찾아 강원도 동해시까지 왔는데 이제부턴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과연 잘한 선택일까..?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