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a Mar 16. 2020

나그네의 마음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회사를 이직하고 한가지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첫 회사에서는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조직이, 이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가 영원히 나를 따라오는 것일 줄 알았다. 그냥 거기는 나에게 하나의 세계였고, 그 세계는 나에게 영원할 줄 알았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내년에 이걸 또 해야될 텐데, 내년엔 도대체 어떻게 또 해야하나.. ' 하며 프로젝트 계약직 직원들이 떠난 자리를 보고 홀로 씁쓸해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깔끔하게 떠날 수 있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결국 남은 정산과 뒷처리는 누군가 해야 하고, 올해 풀리지 않았던 문제점들은 여전히 남아 내년의 숙제로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하는 사람이 7년 동안 나였다.


물론 간간히 사람들이 들고 나며 우리의 멤버십 구성원에 변화는 있었다.

대리를 달고 한 2년차 쯤이 되었을 무렵, 회사에서 보내준 해외연수를 다녀왔더니 내 앞 자리 선배가 회사를 그만 뒀다. 부서 배치도 안받은 신입 꼬꼬마 시절부터 이 부서에 들어가고 싶다고 내가 로비(?)를 해댔던, 내 첫 회사 생활의 많은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던 선배였다. 언젠가는 어떤 분의 개인적 취향에서 비롯된 재즈(Jazz) 관련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한답시고 네트워킹을 빌미삼아 각 지의 재즈바에서 숱하게도 마셨다. 신청곡을 공연 실황 영상으로 틀어주는 곳에서는 경쟁적으로 신청곡을 보태며 어느새 정신을 잃었던것 같기도 하다. '일하는 건데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살짝 들을 때 도 있었지만, 보드카가 한 잔 두 잔 들어가면서는 결국 '일 하면서 이렇게 즐거운 순간도 있네' 로 귀결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배와 함께 했던 그 때가 그 회사 생활의 소위 '리즈 시절' 이었던것 같다.


이후로도 입사 직후부터 모든 수다를 함께했던 맞 선배, 나름의 애정을 갖고 있었던 후배들이 나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골수 멤버(?)들은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켰고, 어쩌다 보니 그 중의 하나가 내가 되어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직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것 일줄 알았다.


그러나 조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직 하기 바로 전 해, 입사 이래 근 8년을 함께 했던 부서장께서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을 때였다. 물론 평가는 사람 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철저하게 나의 개인적 입장에서만 생각했을 때에는 좋은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운좋게 큰 전시 프로젝트를 맡게 되고, 아무나 못가본 이집트 출장을 가보게 되고, 회사 해외 연수에 선발됐다. 그리고 기자 출신인 그분에게 처음으로 내 글을 칭찬 받았다. 솔직히 회사를 옮기고 나니 더욱 재평가(!)를 하게 됐다.

사실은 술과 노래방을 너무 사랑하시긴 했다...



10년이 넘게 부서 최고 관리자였던 사람이 없어지고, 너무 이질적으로 성향이 다른 분이 부서장이 되었는데,

 그것은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태껏 나의 세계라고 믿어왔던 분위기의 것들은 모두 바뀌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이상 그 세계에 있기 싫어졌다.

 

회사를 옮기고 부적응자로 고군분투하며 그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것들을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거였을 수도 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사실은 회사원으로서 너무 당연한 명제다. 회사는 학교도, 가족도 아니고 연봉으로 계약되어있는 조직이며 그 연봉 이상도 이하도 나는 바라거나 해줄 의무가 없다.


나는 항상 일하면서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하는 '내 전시'에 상사든 파트너사든 관람객이든 뭔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나는 항상 엄청나게 분노했다. 너무 나와 내 조직, 프로젝트를 동일시 하고 있어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만큼 내 열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그랬던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나에게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이 그때는 없었다.


지금 여기서는 조금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계속되겠지만 그 때 까지 내가 이걸 계속 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살이의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다. 어쩌면 이게 여기서 내 마지막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는. 어찌됐든 이 한 철이라도 견디기 위해 내가 나에게 쳐놓은 배수진의 마음이다.


배수진의 마음이라고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다른 의미로 이것은 '여유', 또는 '열정의 부재' 일수도 있다.

프로젝트 하나의 성패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됐을지도 모르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론 두근두근했던 열정은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한 마리 나그네가 되어 이곳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작가의 이전글 그래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