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hunting in San Francisco
들어가며
미국 생활 3년 차로 접어들 때 즈음(내 기준이다. 배우자는 미국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넘어간다. 응? 왜 여태껏 집을 안 샀어...?)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고민하고, 계약 갱신을 할 때마다 아파트 매니지먼트와 월세 실랑이를 하는 것이 지겨워 결국 집을 사기로 했다. 한국은 전세라는 제도로 축복받은 나라가 아닌가. 미국은 그런 거 전혀 없고요, 집주인이 냉정하게 월급에서 월세를 따박따박 떼어가는 곳이다. 렌트 살이 3년 차 주부가 평균을 내보니 매달 400만 원이 넘는 돈이 통장을 빠져나가더라. 이 액수 실화인가? 처음에는 그게 적응이 안돼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모바일 가계부까지 쓰던 나는 어느새 마트에 가면 각종 식재료들의 가격을 외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건 여기가 싸고, 저건 저기가 싸고 뭔가 서글프게 줄줄줄 읊고 있더라. 결과적으로 매년 이렇게 날려버리는 비싼 렌트비의 총액에 기겁할 때쯤 우리는 집을 사기로 결론을 내렸다.
왜 지금 사느냐, 그리고 보통 언제 집을 사느냐? 많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어떤 사람들은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사라, 다운페이먼트를 많이 모았을 때 사라(Downpayment, 대출을 제외한 초기 자본금을 의미한다), 부동산은 우상향 한다, 혹자는 이자율 쌀 때 사세요(미국은 대출로 살 수 있는 폭이 크니까, 많게는 집 가격의 80%까지 대출로 채울 수 있다) 등등을 이야기한다. 나의 경우 이자율이 현재 역사상 가장 저렴하고(몇 달 전엔 더 저렴했었다), 자산은 쌀 때 사야 한다는 신조에 따라 코로나로 재택근무다 뭐다 해서 사람들이 도시에서 빠져나가 가격이 덜 부담스러운 시기라는 점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집을 예산 범위 내에서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집을 소유하는 것은 적지 않은 세금과 집 보험, 집의 종류에 따른 관리비 등등을 추가로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대출 가능할 때 Full로 대출해서 "비싸고 좋은 지역"에 무조건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은 듯하다. 매달 내는 대출 원리금과 세금, 관리비 등의 총합이 한 달 월급의 30% 정도를 부담하는 수준이 되어야 가장 적정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부동산 시장에 대응하는 전략이 전부 달라서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나중에 집을 팔 때에는 심지어 매도인, 매수인의 부동산 중개비용까지 전부 매도인이 부담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집이 잘 팔리도록 멋들어지게 꾸며서(Staging이라고 한다) 홍보하는 비용까지 들여야 하므로 혹자는 평생 집 사지 말고 월세 살이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내 생각은 그렇지 않지만.
참고로 샌프란시스코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는 재산세(Property tax)가 평균적으로 0.7% 정도이다. 10억짜리 집을 갖고 있으면 매년 7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얘기인데, 막상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1% 이상이다. 그 이유는 주 내 County마다 세율이 아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는 1. 18%이다. 여기에 집보험(화재, 손상 등에 대비하기 위해 Home insurance를 별도로 가입한다), 공동주택이라면 관리비(HOA Fee라고 한다, Home Owner's Association Fee)가 있고 집의 종류에 따라서는 전기세, 수도세가 관리비에 포함되거나 혹은 불포함된다.
한국처럼 아파트라는 공동주택 문화가 발달한 곳에서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딱 한 장 받고 이번 달에 난방비가 많이 나왔네, 물을 많이 썼네... 라며 편리하게 관리하기가 어렵다.
어떤 집을 살 것인가?
미국에서 집은 크게 싱글하우스, 타운하우스, 콘도(혹은 Co-op 코압)로 분류된다. 아파트가 별도로 있지만 렌트 비즈니스를 하는 아파트 관리회사들이 소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미국에서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는 콘도가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개념의 공동주택이다. 콘도의 형태는 제각각으로 한 건물에 혹은 하나의 단지에 수십 채 이상의 집들이 밀집되어 있거나, 혹은 한 건물에 3~4개의 집들이 모여있다. Redfin, Zillow, Compass 같은 부동산 플랫폼에서 지역 검색을 하고 원하는 가격대, 혹은 방 개수 등의 조건을 정해놓으면 그에 맞춰 추천이 뜬다.
미국에서의 이상적인 삶은 차고와 너른 마당이 있어 정원을 가꿔놓고 예쁜 탁자와 의자를 배치해서 가끔 햇볕도 쪼이면서 자녀들을 키우는 것이기에 싱글하우스의 인기가 가장 높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어머, 이 집 너무 예뻐요! 하면서 등장하는 집들은 거의 대부분 싱글하우스이다.
우리가 Bay area에서 처음으로 디스클로저(Disclosure, 집과 관련된 공개 문서들이다. 한국처럼 등기부등본 달랑 하나가 아니라, 해당 집에 법적인 문제가 있는지, 수리해야 하는 부분은 없는지, 집이 위치한 지역의 환경평가는 어떤지, 이런 정보들이 담겨 있는 문서들이다. 보통 100장 가까이 돼서 읽어나가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난다. 익숙해지면 중요한 것만 발췌해서 읽게 된다)를 받은 집은 80 넘은 노부부가 50년 가까이 소유하고 살았던 싱글하우스였다. 사정상 남편이 혼자 가서 그 집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밝고 환하고 곳곳에 집주인의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참 예쁜 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디스클로저를 읽어본 우리는 집 전체를 지지하고 있는 지지대에 문제가 있어서 수리를 대대적으로 해야 할 수 있다는 점, 집이 위치한 지역이 지진에 취약하다는 점(캘리포니아에는 산 안드레아스 단층이 지나가므로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목재로 지어진 집이라 지붕에 텐트를 씌우고 한바탕 소독을 해야 한다는 점 등 때문에 집을 사고도 많은 비용을 추가로 더 들여야 될 가능성이 있어 결국 offer를 넣지 않았다. 이렇게 디스클로저를 받아서 읽어보는 과정은 정말 중요하다. 누군가는 이 모든 일들을 리얼터(Realtor or Real estate agent, 부동산 중개업자)가 다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그게 쉽지 않아서 [꼼꼼한 매수인 + 매수인의 요구사항을 적당히 맞춰주는 일 잘하는 리얼터]가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라고 본다.
눈치채셨다시피 미국에서 부동산을 사는 과정은 한국과 달리 경쟁입찰제라 오는 순서대로 집을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주인이 집을 내놓으면 그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 중에 가장 가격을 비싸게 부르거나 혹은 당장 집 가격에 해당하는 현금 전부를 내놓겠다고 하거나,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Non-contingency or Contingency waiver, 집에 큰 하자가 있으면 가격을 깎을 수도 있기에 조건 없이 사겠다고 하면 집주인은 이런 매수인을 선택하기도 한다) 집을 사겠다는 등의 여러 제안을 받아보고 집주인이 그중 마음에 드는 매수인을 선택할 수가 있다. 부동산 활황기인 데다, Bay area의 인기지역은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원래 내놓은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는 경우가 빈번하고, 그냥 조건 없이 구매하는 매수인들이 대다수라고 알고 있다.
이 밖에 여러 집들이 타운처럼 공동체를 이루고 모여 있으면서 때에 따라서는 이웃집 간에 벽을 공유하는 타운하우스도 차선의 고려대상에 들어가는데 보통은 싱글하우스에 자리잡기에는 예산이 부족하거나 혹은 개인 사정이 있을 때 자녀까지 어리다면 많이 선택한다고 한다. 놀이터나 작은 공원이 단지 내 있어 마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는 것이 큰 장점으로 역시 유명한 지역의 타운하우스는 다른 지역의 싱글하우스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마지막으로 콘도는 미국인들에게 사실 거주보다는 투자 개념에 가깝다. 직장 때문에 도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젊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살다 나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콘도를 구매한 사람들은 콘도에서 오랜 시간 살지 않고 잠시 거쳐간 후 임대를 놓기도 한다(앞에서 말한 싱글하우스는 집주인의 거주기간이 무려 50년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이런 콘도라 해도 장점은 있다. 잔디를 깎는다거나, 주기적으로 방역을 하거나 혹은 주방이 고장 났을 때 사람을 힘들게 부르는 일 등의 자잘한 관리를 신경 써서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웬만한 일들이 관리사무소를 통해 편리하게 처리되는 덕분인데 그렇기 때문에 관리비가 많이 든다. 뉴욕,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러한 콘도 특유의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서 외곽의 싱글하우스보다 콘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