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만언니 Jun 13. 2023

13화_불안한 내가 불안한 개를 키운다

복주의 멀미극복프로젝트

복주를 키우면서 개도 차멀미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전에도 개를 많이 키워봤지만 차 멀미하는 개는 본 적 없다. 그런데 복주는 차멀미를 정말 심하게 했다. 멀리서 차를 보기만 해도 꿀럭꿀럭 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입양 초기 복주의 분리불안은 최고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복주 혼자 집에 둘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복주를 차에 태우고 다닐 수밖에. 하지만 문제는 복주가 차만 타면 침을 흘리고 거품을 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떡해? 방법을 찾아야지. 먼저 나는 당시 다니던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께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복주 월령(5개월 무렵)에 개들이 멀미하는 건 흔한 일이라며 내게 멀미약을 처방해 주셨다.


하지만 복주는 멀미약이 통하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가 멀미약이 잘 안 듣는다고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그러면 어쩔 수 없다, 사람들도 차멀미가 영 안 고쳐지는 사람이 있듯 개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더 이상 복주에게 처치해 줄 의료 서비스는 없다는 얘기였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 이 친구와 한두 달 살다가 말 거라면 참아보겠는데 그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병원을 바꿨다. 새로운 선생님께선 복주가 멀미를 물리적인 요인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로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복주가 멀미를 하는 게 아니라 차라는 공간이 낯설고 불안해서 멀미 증세를 일으키는 거라는 말이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복주가 차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자주 하면 좋아질 거라 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복주를 데리고 차를 타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복주가 차에서 불안해한다고 하니 일단 캔넬부터 치웠다(물론 유사시 캔넬이 반려견에겐 안전하다). 대신에 반려견 카시트를 사서 조수석에 앉혔다. 불안한 복주를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그냥 차에만 타고 그다음엔 시동 걸고 내리고 그다음엔 주차장 한 바퀴 그다음엔 동네 한 바퀴 이런 식으로 매일 같이 연습 시간을 조금씩 늘려갔다. 무엇보다 복주를 차에 태우고 무조건 좋은 데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당시 복주는 동네 공원에 있는 반려견 놀이터를 엄청 좋아했다. 그래서 복주를 차에 태우고 반려견 운동장에 갔다.


어느새 복주의 증세는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안전 문제를 고려해 복주 카시트를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복주의 '둔감화 훈련'을 병행했다. '둔감화 훈련'이라고 하니 대단한 걸 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복주랑 산책할 때 꼭 큰길로 나가 매일 찻길에 나란히 앉아 가만히 차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몇 달을 보냈을까. 요즘 복주는 차에서 편하게 지낸다.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도 버스가 코끝을 스쳐 지나가도 제법 의젓한 표정을 짓는다. 놀라운 발전이다.

다행히 해탈이는 멀미를 안 한다. 해탈이는 천성 자체가 둔감하다. 아마 불지옥에서도 졸리면 잘 거 같다. 조금은 더워하면서....

당시엔 몰랐는데 복주의 불안증을 고치는데 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복주에게 적용한 치료방식은 내가 불안증을 심하게 겪을 때 전부 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당시 내게 믿을 만한 사람이 나를 안심시켜 주는 것이 절실했다. '괜찮다. 마음 놓아라. 너는 안전하다. 네겐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들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내게 해 주는 것.


내 경우엔 그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셨고 지금은 없어진 방배동의 한 상담센터 선생님이셨다. 병증이 깊을 때 늘 이분들은 늘 나를 진정시켜 줬다.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너는 반드시 좋아질 거라고. 그러니 안심하라고.


두 번째 방법은 정면돌파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나 역시 차를 타지 못하는 복주처럼 한동안 지하철을 못 탔다. 어두운 데서 붕괴 사고를 당해서였는지 한동안 지하로 내려가는 게 무서웠다. 또 열차가 들어올 때 부는 강한 바람도 소름 끼쳐서 싫었다. 그래서 가까운 길도 둘아가기 일쑤였다. 아니 오죽하면 직장을 구할 때도 다른 어떤 것보다 무조건 집 앞에 다니는 버스가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만 골라야 했을까.


하지만 언제까지 지하철을 피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통 땐 괜찮아도 눈비 내리는 날엔 지하철을 안 타면 어디든 제시간에 갈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변해야지. 그래서 그때부터 나도 복주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훈련했다.


처음엔 지하철 역사에 내려가서 지하철은 타지 않고 건너편 출구로 그냥 나오는 것이다. 그다음엔 가까운 거리를 가 보고 조금 더 용기를 내 몇 정거장 더 그다음엔 회사까지 그렇게 매일 회사에 갈 때마다 연습했다. 그러자 어느새 나 역시 복주처럼 좋아졌다. 덕분에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하철을 타게 됐다.

복주는 이미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불안지수가 높았다. 나는 복주의 그 불안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5개월간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었고 그 가운데서 복주는 또다시 내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다. 지금의 복주는 불안 증세가 많이 좋아졌다. 복주는 더 이상 이전 같은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 안정적이다. 문제는 나다. 나는 여전히 불안증과 싸우고 있다. 좋아졌다 싶으면 다시 나빠지고 있다. 때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빠져나가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그날 그 붕괴 사고 현장에 영혼을 묶어두고 육신만 빠져나온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마음이 힘들 때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탕웨이) 대사를 의식적으로 자주 떠올린다.


남편이 죽었는데 어떻게 계속 일을 할 수 있느냐고 해준(박해일)이 묻자 서래는 이렇게 대답한다.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끝도 없이 가라앉을 때나 좀처럼 현관문을 밀고 나가고 싶지 않을 땐 노인을 돌보던 서래를 떠올린다. 나는 노인 대신 개를 돌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나도 극 중 서래처럼 과거를 닫고 현재를 살며 미래릴 기다릴 수 있겠지. 그러면 여태 본 그 많은 죽음들을 어느 정도는 뿌리치고 살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12화_누렁이를 키우는 자격지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