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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Mar 10. 2024

15화_유기견 배송이, 배달이 이야기

박스에 담겨 버려진 두 마리의 시골잡종 개 구조이야기

정초에 한빛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고 이한빛 피디: 2017년 CJ E&M에서 드라마‘혼술남녀’ 촬영 중, 화려한 드라마에 가려진 열악한 노동환경, 불합리와 부조리로 이루어진 방송계 갑질 문화를 끝내 묵도하지 못하고 26 살의 한창나이에 비극적 선택을 한 친구 ) 이야기인 즉, 누가 선생님댁에  박스에 담은 개들을 버리고 갔다는 거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래 저래 개를 키울 상황이 안 됐다. 일단 집 안팎에 사는 고양이만 해도 열이 넘고 두 분 모두 사회적 참사와 재난 연대 등의 일로 자주 집을 비우신다. 그런데 그런 집에 느닷없이 택배박스에 담긴 개 두 마리가 배달된 것이다.

<택배들이 담겨 벼려진 박스>
<왼쪽이 배달이, 오른쪽이 배송이 발견 당시 사진 둘다 3개월 추정>

한빛 엄마는 박스를 발견하고 주변에 물어볼 데를 떠올리다, 개를 키우고 있는 내 생각이 나 전화했다 하셨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한데 나라고 별 수 있나. 나 역시 집을 자주 비워 오빠네 개들을 맡기고 다니는 처지다. 이미 집에 있는 두 마리 건사도 벅차다. 게다가 얘들은 품종견도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흰 개도 아니다. 괜한 연민에 이것들 집안에 들였다 골치만 썩을 것 같다. 나는 잠시 이마를 만지며 고민하는 척하다  저 역시 선생님을 도와드리기 어려운 처지다. 그러니 원칙대로 아산시 유기견 보호소에 일단 보내라 말씀드렸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끊고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산은 안락사가 시행되는 보호소다. 그러니 이 친구들이라고 다를까. 해서 전에 개를 여럿 구조한 지인에게 연락해 이만저만한 사정으로 개들이 버려졌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역시 (지구 누나) 나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도 그럴게 그 친구도 나처럼 이미 유기견을 둘이나 기르고 있다.


그 후로 녀석들을 잊으려 했다. 한데 계속 신경 쓰이는 거라. 이때부터 지구 누나도 같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아는 게 이토록 무서운 거였다. 혹시라도 녀석들이 안락사 대상에 오르면 어쩌나 괴로웠다. 다음 날 밤 지구 누나가 물었다. “작가님 그냥 저희가 구조할까요? “ 하지만 이번엔 내가 막아섰다. 그러지 말자고. 이게 보통 일이냐고. 나는 이제 지구 누나 그만 고생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이었다) 그러면서 말 끝에 만에 하나 혹시 우리 말고 또 다른 누군가 이 친구들 임보(임시보호)라도 해 준다면 그때 구조합시다. 했다.


그런데 그때 기적처럼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그건 바로 비비 언니였다. 본인도 현재 기르는 개가 두 마리지만, 일시적으로 백수라서 요 꼬물이들을 돌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음.... 어?? 뭐라고??? 그래요?? 그럼 합시다.

<아산시보호소에서 비비언니가 배송이와 배달이를 구조했던 순간, 몇날 며칠 캔넬에 갇혀 있어 개들한테 똥오줌이 범벅이었다.>

다음 날 우리 셋은 바로 아산 시 보호소로 달려가 개들을 찾아. 비비언니가 (왼) 배달 이를, 내가 (오) 배송이를 돌보기로 하고, 회사에 다니는 지구 누나가 녀석들 입양 홍보를 담당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린 단톡방을 만들고 입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제일 처음 우리가 논의한 건 바로 개 이름이었다. 지구 누나는 택배 박스에 버려진 녀석들이라는 상징성을 살려 아이들 이름을 #아산택배즈 로 정하자 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아이들 이름도 그 자리에서 바로 정했다. 바둑이 녀석은 “배달이” 누렁이 녀석은 “배송이”로 말이다.  


몰랐는데 유기견 입양 홍보도 그냥 하는 게 아니었다. 나름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 되는 대로 개들 주워다 ‘여기 버려진 개 있어요 불쌍하지 않나요?’라고 홍보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버려진 사연을 최대한 살려 홍보하면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입 소문을 탄 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우리가 구조한 녀석들은 성격이 좋았다. 배 불리 먹여 놓으면 종일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큰 개 작은 개 가리지 않고 친구라면 다 좋아하고, 배변 같은 실내 생활의 규칙도 잘 지켰다. 그때마다 나는 택배들 천재 아니냐고 학계에 보고하자고 유난을 떨었다. 그럼 다른 친구들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막아섰다. 어찌나 순하고 손이 안 가는지. 장난감 하나로도 하루 종일 행복한 개를 보고 있자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녀석들은 종일 꼬물거렸다. 귀여웠다.


한 달쯤 됐을까. 비비언니와 내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둘 다 녀석들을 다른 하숙집에 맡겨야 했다. 다행히 하숙집은 금방 구해졌다. 그렇게 녀석들 가족 찾기 팀원이 또 늘었다. 셋에서 다섯으로. 우리는 쉴 새 없이 단톡방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공유하며 감탄했다. 그때마다 녀석들 보호소에서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작은 생명들이 주는 기쁨이 말도 못 했다. 우리는 매일 단톡방에서 어렵게 구한 생명이니만큼 최대한 잘 보내자고 결의를 다졌다.


여기서 애들을 “잘 보낸다”는 의미는 별 거 아니다. 재산세는 얼마나 납부하는지 자동차 배기량은 어느 정도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우리는 개를 존중할 줄 아는 집에 보내고 싶었다. 한창 예쁠 때 어디서 개 한 마리 데려다 덩그러니 집에 던져두고 한 달에 한 번 마트 가서 사료 한 포대 사다 퍼주면서 저들 할 일 다 하고 시간 남으면 어쩌다 한 번씩 예뻐해 주는 그런 사람들 말고, 개와 교감하고 개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줄 그런 보호자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가족을 구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진발 잘 받는 배달이>

이런 연유로 입양 절차를 까다롭게 설정했더니, 더더욱 입양 문의가 없었다. 대부분 개를 직접 보기도 전에 포기했다. 그러자 나는 자꾸 조급증이 났다. 이러다 개들 예쁜 시기 다 보내고 이른바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잘 밤에 누워서는 시시 때때로 포인핸드라는 유기견 입양 어플에 들어가 입양코너에 이름을 올리고 입양 가족을 기다리는 개들을 찾아봤다. 웬걸 하나 같이 귀엽고 예쁜 애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반면 그에 비해 우리 애들은 별로 눈길이 가지 않는 평범한 시골 개였다. 그렇게 매일 같이 걱정에 걱정을 하는데 어느 날 기적처럼 배달이 녀석에게 먼저 입양 가족이 생겼다. 그 후 배송이한테도 기적처럼 입양 가족이 나타났다. 만세.

개들은 사이좋게 3월 초에 각자 평생 가족을 찾아 방을 뺐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나는 얼른 한빛이네 알렸다. 선생님께서도 뛸 듯이 기뻐하셨다. 그간 내게 괜한 짐을 지운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으셨다며 거듭 고맙다고 하셨다. 그런 한빛 엄마께 나는 결코 이 일 혼자 한 거 아니라고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람이 도와준 일이라 했다. 정말이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녀석들은 지금도 유기견 보호소의 닭장처럼 작은 캔넬에 아직 갇혀 있었을 것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를 낼 수 없었으니까. 또 녀석들이 만약 한빛이네 버려진 게 아니었다면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나는 단 칼에 거절했으리라.그러니 혼자 한 게 아니지.

한빛 엄마랑 인연이 된 건 416 재단에서 주관하는 재난 참사 피해 자조 모임에서였다. 우린 거기서 첫 만남에 덜컥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세례명까지 밝혔다. 누가 보면 전생부터 알고 지낸 인연이라 여길 만큼 우린 급격히 친해졌다.  그렇다 우리를 그토록 단숨에 단단하게 연결시켜 준 건 불행히도 서로의 생을 처참하게 짓밟은 비극이었다. 그 후로 종종 만나 차도 마시고 밥도 함께 먹으며 속 편히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이렇게 아프다. 선생님은 어떠시냐. 나는 이게 사무친다. 선민 씨는 어떠냐 서로 묻고 보듬으며.  


누누이 말하지만 겪은 사람은 다르다. 이 차이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하나는 우리는 우리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특유의 감정이 있다. 그건 버틴 것. 견디는 것 그런 것들, 또 직접 당하지 않고는 도저히 모르는 일들이 만든 감정들.


이런 연유에서 우리는 세상을 쉽게 믿지 않고 어지간해서는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간 참사 피해자나 유가족이 되어 만난 비정한 세상의 민낯 때문이었다. 예컨대 그간 살며 겪은 생면부지 타인의 무례한 질문들. 호기심 어린 시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뺨이라도 있는 힘껏 후려 치고 싶을 정도로 기분 나쁜 빈정거림,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혐오와 막말들.


하지만 이번 일로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이 모든 위험과 경계를 넘어서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야 달라진다는 것. 보라 낯 모르는 이들이 달려와 조건 없이 베푼 선의를. 만약 이 일을 세상에 말하지 않았다면 이 꼬맹이들의 생은 결코 장담받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기꺼이 세상에 도움을 요청함으로서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 작은 생명들을 구할 수 있었던 거다. 그것만으로도 이 일은 세상의 적대와 냉대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 그나마의 환한 온기였다. 아 그러니 어찌 잊으랴. 이 감사한 마음을.

이번 일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사람들이 차고 넘치지만 일단 배송이 배달이 입양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이들만 기록하고 가겠다. 그간 녀석들을 돌본 친구들 또 이 친구들을 가족으로 맞아준 분들.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사는 동안 내내 잊지 않고 녀석들을 돌봐준 분들을 떠 올리며 감사 기도를 드릴 생각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글을 쓰는데 다급하게 지구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글쎄, 배달이 녀석이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는 (파양) 소식이었다.

투비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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