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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Mar 28. 2024

18화_개를 사랑하는 각기 다른 방법에 대하여

개와 함께 행복해지는 일

요즘 개를 키우면서도 종종 내 행동을 돌아본다. 내가 하는 이 일이 과연 개를 위하는 걸까 인간인 내 입장에서만 좋은 걸까. 물론 대부분의 행동은 사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그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래도 개와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보려 애는 쓴다. 가령 집안의 온도나 습도 같은 것들도.


우리 집엔 겨울 개가 산다. 이 친구는 기본적으로 추위에 강하고 더위에 약하다. 이중모 코트는 어찌나 빽빽한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다. 해서 해탈이는 여름엔 얼음통과 에어컨을 끼고 살고 겨울엔 낮에도 밤에도 냉방에서 창문을 열고 잔다. 다행히 조선 개 복주는 체온이 나와 많이 다르지 않아 나와 함께 방을 쓴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걸 개한테 양보하는 건 아니다. 또 나는 개들의 이런저런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해서 우리 애들은 하루 세 번 정해진 산책시간 즈음에 산책 가자고 조용히 찾아오는 것 외에 집에서 놀아 달라거나 하며 울고 보채지 않는다. 아마 얘들도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


사람 사이도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어렵듯 개 하고 인간 사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어도 다르고 생활 습관도 다르다. 그러니 적당히 서로 양보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분란이 적다.

이렇게 단호하게 개와 나 사이에 규칙을 지키는 이유는 애초에 개들을 집에 들일 때 함께 행복하고자 시작 한 거지 나 혼자 행복하고자 저 친구들을 데려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전부터 특히나 주의하고 싶었던 게 맹목적인 헌신이었다. 말하자면 개한테도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도 종종 마음을 단속하며 지낸다.


하지만 이 일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면 개가 사료를 잘 안 먹는다고 나도 못 먹는 소고기를 사다 볶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럼 다시 머리에 힘을 준다. 어려운 얘기다.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감자를 삶는다. 감자는 괜찮지 않을까 하면서. 그럴 때마다 머리를 흔든다. 뭐든 과유불급이라 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며.

언제 한 번은 반려견 놀이터에 누가 한 여름에 개 한 마리를 솜이불로 꽁꽁 싸매고 왔다. 속으로 날도 더운데 저러고 왔다면 필시 개가 많이 아프거나 늙었거나 둘 중 하나겠거니 했다. 한데 웬걸 아니었다. 주인의 품에서 풀려난 개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한 살짜리 시바견이었다. 그 친구는 땅에 발을 딛기 무섭게 이리저리 뛰며 개 친구들 냄새 맡기에 열중했다. 그러다 우리 복주와 잠깐 악어 놀이를 했다. (*악어놀이: 개들끼리 서로 입을 벌리고 상대를 무는 시늉을 하며 노는 놀이)


그때였다. 갑자기 시바견의 보호자가 내게 불같이 화를 냈다. 이유인즉 지금 너희 개가 우리 개를 물려고 하는데 너는 왜 가만히 서서 말리지를 않느냐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건개들끼리 노는 거지 싸우는 게 아니다 했다 그러자 그가 세상 어느 개가 이렇게 노느냐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선 더 설명해 봐야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알겠다고 하고 그냥 목줄을 챙겨 놀이터를 나왔다. 밖에 나가 한참 줄 산책을 하고 오니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다 쫓겨났는지. 어쩐 건지 그분 혼자 아무도 없는 개 놀이터에서 자기 개를 오도카니 탁자에 앉혀두고 비눗방울을 개한테 불어주며 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 개한테 “좋지? 어때 예쁘지?” 하며 물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개는 모르겠지만 비눗방울을 부는 사람만큼은 확실히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친한 훈련사 말도 그렇고 내 생각에도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보이는 문제견의 보호자들은 전부 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개를 인간처럼 대하다 일을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반려견을 극진히 대하는 건 좋은데 가끔은 그 사랑이 과연 개 입장에서도 좋을까 싶을 때가 더러 있다. 사람도 사람으로 존중받을 때 행복하듯 개 역시 마찬가지다. 개를 개로서 존중해 주는 것은 사랑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이를 폴란드 시인 바스바와의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자두 속에 씨앗이 있듯 살아 숨 쉬는 우리 모두에겐 각자 고유한 영혼이 있다. 그러니 설령 상대가 미물이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 각기 다른 저마다의 씨앗을 서로 지켜주자.


또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개와 사람 사이도 적당한 시공간의 거리 유지다. 이는 복주와 해탈이를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인데 인간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듯 개 역시 마찬가지다. 개도 혼자 편히 잘 쉬어야 함께 잘 어울린다. 그러니 개에게도 분명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는 버지니아 울프식의 ‘자기만의 방’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곳이 침대 밑이든 캔넬이든 상관없다. 이들이 쉬는 공간이 그 누구의 침범이 없는 절대 불가침의 영역이면 된다.


그러니 개나 인간이나 털가죽을 입었느냐 안 입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내면에 있는 공통의 욕망만큼은 오십 보 백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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