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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동안 깨지지 않은 기록

대단한 건설

by 하얀돌

(한민족에 맞섰던 나라와 민족 https://brunch.co.kr/@sonsson/31)


수나라는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노력하다 망해버렸다. 수나라는 그 이전까지 중국 대륙에서 존재했던 모든 나라들 중에서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진나라와 한나라의 통일된 한족의 역량과 이합집산 하던 주변 이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합쳐, 이후 한족과 사방의 여러 민족을 모두 아우르는 중국 제국의 모델이 되었던 최초의 국가였다.


청나라와 함께 중국 최고의 전성기로 꼽히는 당나라도 결국은 수나라 멸망에 따른 결과이며, 수나라의 귀족 세력에 의해 건설된 것이다. 고구려 원정으로 수나라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당나라는 건국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중국 최고의 역사서로 꼽히며, 모택동이 열일곱번을 읽었다는 자치통감에 따르면, 수나라는 고구려 정벌을 위해 전투군 1,133,800명의 병력을 투입하였고, 군량을 나르는 자는 그 배가 되었다고 한다. 하루 1군씩 40리 간격으로 점차적으로 진군하니 40일만에야 출발이 모두 끝나고, 군의 선두와 후미가 계속되고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서로 울리며, 깃발이 960리에 뻗쳤다고 한다.


세계 전쟁사에도 보기드문 대규모 출병이었으며, 1300여년이 흐르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이 기록은 깨어지지 못했다. 수나라 장수 우중문을 희롱하는 시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한나라는 전쟁과 내분을 통해 우거왕이 암살되도록 유도하고 왕검성을 함락하였으나, 위만 시대 이미 그 지역을 탈출한 준왕 세력이 머물던 지역까지 영향력이 미쳤는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한나라가 점령했다는 왕검성의 위치에 대해 북경 인근이라든지 요하 인근이라든지 대동강 인근이라든지 하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자주적이며 진취적인 역사관을 별로 취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학계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겠지만, 위치가 어떻든 왕검성이 차지하는 수도로서의 위상은 변함이 없고 한족에 의한 한 때의 패배로 민족 감정의 상처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유사이래 패배를 겪지않은 어떠한 나라나 민족도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민족에 대한 자존을 꺾기 위한 전략으로는 한나라와 조선의 전쟁 그리고 그로인한 한사군이야말로 매우 유효적절한 재료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의 처음을 한나라의 식민지로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의도는 한사군 이전에 이미 이 지역에는 상당한 수준의 국가 체계가 오랜기간 갖추어져 있던 사실로 반박된다. 황하 문명을 휠씬 능가하는 요하 문명의 유적들이 결국 조선의 영토와 겹치고 있다.


대단한 건설이 먼저 존재하지 않는 곳에 대단한 붕괴는 있을 수 없으며, 큰 붕괴 이후에는 또다른 건설이 일어난다



#인문 #역사 #철학 #수나라 #전쟁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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