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기획자가 되어본 적이 없는 젊은 꼰대의 '감히' 하는 말
이번 글은 PM, PO로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려 하는 취준생, 그중에서도 '하고 싶은 게 있어서'가 아닌, '멋있어 보여서, 서비스의 꽃이니까, 범용적이니까' 등의 사유로 '서비스 기획자'를 꿈꾸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다. 호기롭게 PM, PO를 꿈꾸는 취준생들이라고 명시했지만, 사실 나는 Product를 다뤄본 적도, 가져본 적도 없는 운영팀원이었다. MAU, DAU, AARRR 등 서비스 기획을 이루는 모든 용어들이 아직도 낯선 나로서, '감히'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많이 조심스럽긴 하나, 국내 난다 긴다 하는 개발자들과 PM, PO들이 있는 집단에서 3년을 보내면서 깨닫고 생각한 것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슬슬 취업을 생각할 때쯤, 코로나로 주춤했던 취업시장은 이른바 'IT버블'에 있었고, 신입 초봉이 6,000만 원부터 시작하는 개발자 호황기였다. 이미 레드오션이라며 진입을 말리는 사람들도, 지금이라도 개발자로 전향한다며 부트캠프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던 시기이다. 채용공고가 10개 올라오면 그중에서 1~2개 정도만 비즈니스 직군이었고,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이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나 무형의 서비스를 다루는 IT기업들의 경우, 주로 신입으로 채용하는 비즈니스 직군은 운영직군 혹은 영업직군, 간헐적으로 서비스 기획자가 있다. 운영직군은 서비스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루틴한 업무를 처리하는, 다소 반복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직군이다. 그에 반해 서비스 기획이라 함은, 나의 Product를 0부터 1까지 만드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일이다. 당연히 운영직군 대비 페이밴드도 높고, 책임감도 막중하며, 재미있는 직업인 것은 맞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취업을 앞둔 3,4학년들을 만나보면 '서비스 기획자'가 꿈인 친구들이 정말 많다. 채용면접을 봐도, PO/PM이 되겠다는 꿈이 또렷한 지원자들이 많았다. (모두 채용하지 않았다) 나 또한 처음 토스에 입사했을 때는 멋진 PO가 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비스기획자가 되겠다는 친구들의 꿈을 너무 이해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운영팀에서 오랜 시간 업무를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기획했으면 망했겠다'라는 것이고, 신입 PO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토스는 PO는 '0부터 1까지 만드는 사람', PM은 '1부터 100까지 만드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PO는 말 그대로 '내 사업'을 하는 '사장님'인 것이다. 단지 회사 돈으로 시작한다는 것만 다를 뿐... 1인 사업가는 기획도, 전략도, 마케팅도, 운영도, CS처리도 모두 혼자서 해야 한다. 그 말인즉슨, (1) 내가 맡는 product의 산업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전문가이거나, (2) 기획자로서 타 팀과 일하는 방식에 도가 튼 경력자이거나 (3) 기획, 개발, 전략, 마케팅, 운영, CS 모두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고 '잘' 하는 제너럴리스트이거나, 이 3가지 중 2가지 이상은 충족하는 사람이 '좋은' PO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영팀원으로서 많은 PM, PO분들과 협업하며 배운 점도 많았지만, 상호 간 서비스 운영에 대한 '이해도'가 맞지 않아 갈등을 일으킨 적도 많았다. 운영을 하다 보면 수많은 엣지케이스들을 만나게 되고, 클릭 한 번의 영향도가 엄청나다는 것도 알게 된다. 따라서 PO/PM과 협업할 때, 여러 영역에 걸쳐진 서비스 구조를 고려하며 굉장히 지엽적이고 사소한 것들도 요청하게 된다. 아마 나와 협업한 PO/PM이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은 '(굉장히 사소하지만) 이거 없으면 우리 일 못해' 일 것이다. 여기서 요구사항을 쳐내는 것 또한 PO의 능력이다. 그냥 쳐내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기본 기조를 지키면서도 VOC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도록 중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련한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이고,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우선순위가 떨어지는지, 결합되어 있는 서비스 조직은 어디인지, 영향도가 어떻게 되는지, 법적 이슈는 없는지 등 모든 요소들의 파악을 아주 잘해야 한다. 이런 요소들을 잘 파악하는 능력은, 절대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경험은 무시 못한다'라는 말이 굉장히 꼰대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정말 무시 못한다. 어느 영역에서든 경험이 쌓일수록 전후 영향도 파악을 잘하게 되고,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역량이 향상된다.
이런 요소들의 파악을 신입이 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하나하나 배워가는데 오래 걸리고, 끝내 얕고 넓은 지식으로 얕게 만들어진 제품이 탄생할 확률이 크다. 얕은 제품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제품이 깊어질 때까지 많은 수정이 필요하고, 이런저런 수정을 지속하다 보면 1년이 훅 가있다. PO로 시작했지만, PM으로 자연히 전환되고, VOC에 휩쓸려 제품의 정체성을 잃어가게 된다. 곧, 기획자로서의 전문성을 잃어가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시간 동안 기획의 기본적인 요소를 배우고 실험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 요소를 습득하기란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경험했던 사례를 보면, 내부 운영팀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널 제품을 다루는 PO/PM과 협력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제품은 운영의 본질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고, 운영팀 입장에서 우선순위가 낮은 요구사항들만 점점 반영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운영팀의 VOC를 1차적으로 정리한 뒤, 우선순위가 높은 기능들을 명세화해 전달했지만, PO/PM과의 업에 대한 이해도 차이 때문에 설명을 반복하거나 업무가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잦았다. 운영 실무에 대한 전문성과 개발지식, 서비스의 흐름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기획'부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신입 PO로서 커리큘럼이 잘 짜여져 있는 곳이라면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
대개 팀/사일로의 구성은 PO/PM 1명, 개발자, 디자이너로 구성되며, PO/PM은 리더이다.
제품의 기획과 플로우차트 설계,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역할분담, 그로스 전략 등 모든 것을 리딩해야 한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기획자라면, 팀원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베이스로 깔고 간다. 개발자들은.. 아주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 번의 삽질도 신뢰도를 깎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모든 업무가 처음일 병아리 신입에게 팀을 대변해서 다른 팀과 맞서 싸우는 것,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 한참 나이가 많은 팀원에게 일을 시키는 것,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은, 돌덩이를 끌고 매일 한라산을 등산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도 이런 막중한 부담감은 어쩌면 IT업계에 학을 떼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조직이든 '리더'의 영역은 피플매니징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어야 하고, 신뢰가 있어야 한다. 본인조차 본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신입이 어떻게 리딩을 잘할 수 있겠는가?!
다시 내가 경험한 사례이다. 나는 운영팀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넘어, '기획'의 요소가 가미된 요구사항 정의서를 만들어 PO/PM에게 넘기는 역할을 맡았다. 문제인식, 영향도, 해결방식, 문제가 해결됐을 때의 개선지점을 세세하게 정의한 문서를 만들어, 기획자에게 넘겼으나, 반영은커녕 문서를 봤는지, 이해는 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품을 리딩해야 할 PO/PM이 개발자와 운영팀의 눈치를 동시에 봐서, 상대적으로 공수가 적게 드는 요구사항들만 처리한 것이었다. 그 결과 운영팀과 제품 모두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실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도, 기획에 대한 능력이 좋아도, '리더로서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한 팀의 리더를 사랑할 수는 없다. 특정 팀에게 좋은 리더는 다른 팀에게 나쁜 리더가 될 수 있고, 리더는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사랑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해야 할 신입이 굳이 처음부터 미움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사람인 이상 굳~이 추천하지는 않는다.
PO/PM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너무 부정적으로만 쓴 것 같은데, 물론 공감이 안 되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PO를 해본 것도, PM을 해본 것도 아닌 그저 함께 협업하고 어깨너머 일하는 것을 본 것만으로 생각했으니,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에 가거나, 지인이 있거나, 정말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신입으로 PO/PM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길이다. 운 좋게 이 어려운 길을 뚫는다 해도, 굽이굽이 커브길이 눈앞에 있다.
내가 운영팀으로 업무를 해서 하는 말일 수 있지만, 운영팀이나 지원 직군도 기획자로 성장하기에 충분히 훌륭한 밑거름이다. 물론, 운영도 '생각하면서'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업무가 '왜' 필요한지, 어떤 영향도가 있는지, 어떻게 개선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기획을 할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진다.
영업직군도 좋은 선택이다. 서비스의 최전선에서 고객들의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들으며, 제품의 작은 디테일들이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엣지 케이스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실제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다.
초기 커리어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장기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다. 내가 일하는 조직에 기여하면서도 나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쌓아 나가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