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허공을 가르고, 우리를 감싸는 것은 오로지 나무의 밀도
“커피 한잔 하자. 나 시원한 곳에 가고 싶어. 가슴이 답답한데, 좀 확 트인 그런 곳 없을까?”
그가 이런 말을 꺼낼 때,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떤 풍경이었을까? 바다 같은 곳이 먼저 떠올랐지만, 멀어서 운전이 부담스러운 곳은 제쳤다. 어디와 어디를 연이어 말했지만, 순간적으로 떠올린 그곳들 중 어느 곳도, 탁 트인 곳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지금의 그를 데리고 갈 만한 곳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은 나도 어떤 생각을 떠올리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곤 한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끝없이 무엇인가를 처리하고, 수습하는데 정작 하나를 떠올리려면, 그 생각이 튀어나오지 않고 입안을, 머리를 빙빙 맴돌기만 할 뿐이다.
갑자기 놀이공원 근처에 있다는 카페가 떠올랐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은 그곳이었던 것처럼 확신에 찼다.
“나도 가본 적은 없지만, 그 카페 좋아 보이던데, 가볼까? 안 가봐서 나도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어.”
에버랜드 근처라면, 심리적인 거리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30분.
“생각보다 막히네. 괜찮겠어?”
“가보자.”
세상이 가을 색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이른 가을은 초록잎에 아주 조금의 노랑과 빨강을 섞고 있다. 익숙한 길을 달렸다. 고속도로가 새로 뚫린 뒤, 한동안 이용하지 않았던 길이다. 이런 곳에 카페가 새로 생겼구나. 그래서 가끔은 돌아갈 필요도 있는 것인가 보다.
주차장 차단기를 열고 들어간다. 50년간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은, 건강하고 거대하다. 나도 그곳을 헤치러 온 외부인이면서, 금지된 숲에 경이를 느낀다. 이곳이 경기도 용인시가 아니라, 강원도 혹은 이국의 울창한 숲 속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리도 가까운 곳에서, 낯 선 곳에 온 느낌을 들이켰다.
“여보, 힘들면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벌써 여러 번 했던 말이다.
지난 건강검진에서 그 이의 우울감을 인식했다. 내가 무딘 건지, 그가 내색하지 않은 것인지 그동안 잘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나도 회사를 다니며 수차례 했던 건강검진이다. 때마다 마음건강진단도 했었다. 지독하게 회사가 싫을 때, 이 정도면 내가 힘들다고 마음껏 표현했을 것이라고 믿었던 때에도, 나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결과다. 그 사람은 상당한 우울감을 보이니, 전문가의 상담. 회사의 상담센터를 이용해 보라는 권유 전화를 받았다.
“간다고 뭐가 달라져?”
“회사 업무로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해야 해?”
어찌 할 바를 모를 나는, 적어도 그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인 줄 알았는데, 다른 것일 수도 있잖아. 네가 잘 해소를 못한다거나, 그런 다른 것이 원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여전히 한 방향의 말을 한다. 내 말은 그를 달라지게 할 수 없었고, 그의 말은 나를 달라지게 하지 못했다. 다만, 여기가 잠시지만 그 사람을 쉬게 해주는 곳이 맞았기를 바랐다.
트인 곳을 찾았는데, 다시 둘러보니 실은 꽉 막힌 곳이다. 나무로, 숲으로 꽉 막힌 곳.
나무는 깊은 밀도로 우리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