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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Sep 29. 2022

상대방이 고소한다며 연락해 오면?


누군가가 나 모르게 이미 고소를 했다면, 연락은 경찰서에서 올 겁니다. 그런데 고소 전에 상대방이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 카톡, 내용증명 등으로 연락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재산범죄(사기죄 등)나 명예훼손처럼 피해회복이 중요한 사안들입니다. '언제까지 돈을 다 갚으면 고소하지 않을 테니 내 요구조건을 이행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어떻게 대응할지는 사건을 파악해야 가능한 일이고, 이 글에서는 우선 상대방의 연락을 받은 '바로 그 시점에서' 뭘 하고, 또 하면 안 되는지를 짚고 넘어갑시다. 형사사건은 초기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뭘 해야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엉뚱한 실수를 해 버리면 두고두고 후회할 수 있습니다. 



1. 절대로 즉답하지 않는다.


연락을 받고 '올 것이 왔구나!' 싶을 수도 있고, 혹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어느 경우이든, 제1의 원칙은 절대 즉답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사죄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빨리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덜컥 답장을 보내면 대부분 악수를 두게 됩니다. 


흔히 보는 경우로, 사건을 초기에 망쳐버리는 실수가 바로 무심코 보낸 카톡 답장입니다. "미안해", "누구한테 들었어?"와 같이 구체성을 결여한 표현 한 마디도 판사의 심증형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나중에 가서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라고 해봤자 늦습니다. 


덜컥 내용증명 답장까지 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 그러셨냐고 여쭤보면 상대방의 내용증명에 '7일 내로 답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해서 기한을 지키느라 그랬답니다. 내용증명은 그냥 편지입니다. 7일 내 답하지 않아도 벌 안 받습니다. 그렇게 덜컥 보낸 답장은 고소를 막는 것이 아니라 고소장에 유용한 첨부자료로 들어갑니다. 


무조건 부인하고 버티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하며 내가 생각하는 잘못과 상대방이 인식하는 것이 불일치할 수 있습니다. 사과를 하든 반박을 하든 결정의 문제이나, 이성을 되찾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한 후 행동에 옮기라는 것이지요. 단 며칠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가지세요. 상대방이 정말로 고소 전에 합의할 의지가 있다면 그 정도 시간은 기다려 줍니다. 


다만 상대방이 과도하게 흥분해 있는 상태라 당장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면,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연락할 테니 조금 기다려 달라"는 정도로만 답하면 됩니다. 그 이상의 구체적인 답신은 서둘러 하지 않도록 합니다.


정리합니다. 상대방이 형사고소를 하겠다고 연락을 해 온 경우, 말 몇 마디로 좋게 빨리 해결하겠다는 마음에 급히 사과하거나 즉답하면 안 됩니다. 며칠 동안 관련 증거도 수집하고, 관련자의 말도 들어보고, 사건을 전반적으로 정리할 시간을 갖습니다. 상대방과 대화나 통화 중에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했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상대방(고소인)이 많은 말을 하도록 유도하세요. 녹음기를 켜고, 상대방이 무슨 이유로 고소를 하고 어떤 오해를 하고 있으며, 무슨 증거를 가지고 있고, 최종적으로 상대방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물어보도록 합니다. 초반 대응이 그 정도면 100점입니다. 



2. '왜 경찰서가 아니라 나를 먼저 찾아왔나?'를 고민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하지"부터 생각합니다. '나의 행동'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립구도에서 전략의 출발지는 '나'가 아니라 '상대방'이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경찰에 찾아가지 않고 나에게 먼저 연락해 온 이유가 있을 겁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 형사고소해서 서로 경찰서 다녀가고 돈쓰고 시간낭비하느니 그냥 싸우지 말고 빨리 해결하자(주로 돈 문제인 경우)

▶ 네가 사실관계를 알고는 있는지,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해결을 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 나름대로 여러 번 호소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니 고소하겠다고 겁을 줘서라도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고 싶다. 

▶ 어차피 고소할 건데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니 너를 도발하여 증거를 좀 더 모아보고 싶다.


물론 아무리 분석한들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가능성의 문제이지요. 하지만 무대책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해 순위를 두고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내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상대방이 왜 그 시점에, 그 내용을, 하필 그 방법으로 나에게 전달했는지 충분히 분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최근 나와 돈거래를 한 친구가 있다고 칩시다. 성격이 급하고 손가락이 두꺼워 핸드폰으로 문자쓰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문자든 카톡이든 세 마디 넘게 쓰지 않고, 긴 내용은 그냥 전화를 거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중한 말투로 장문의 카톡을 보내 돈을 갚지 않으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돈을 갚아야 하나?'를 먼저 고민하면 안 됩니다. 이는 '나의 행동'에 관한 것이므로 순서상 뒤로 가야 합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얘가 왜 이러지?'입니다. 그 친구가 왜 하필 그날, 전화도 하지 않고 갑자기 장문의 카톡으로, 왜 정중한 말투로, 왜 '법적 조치'를 운운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조력자가 정면에 나서지 않은 걸까? 내가 아는 사람일까? 변호사일까? 왜 나에게 전화통화도 안 하고 문자만 보낸 걸까? 나에게 무슨 답을 원하는 걸까? 경찰에 고소하는 것보다 이 방법이 그 친구에게 무슨 이익을 주는 걸까?


표면으로 주장하는 것과 내심으로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진짜 협상을 제안할 수도 있고 거짓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행동은 그 다음입니다. 



3. 대리인(변호사)이 있는 경우 주의할 점


상대방이 고소 전 단계부터 대리인(변호사)을 선임해 접촉을 시도한다는 것은 전략을 이미 세워놓고 행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민·형사소송으로 진전시킬 실행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아무리 나랑 친했고 착하고 내 말을 다 들어주는 쉬운 상대였다 해도, 대리인이 선임된 순간 이미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잊으세요. 내 상대방은 변호사가 됩니다. 


변호사가 상대방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대사처럼 "저쪽에서 변호사를 샀으니 나도 변호사를 사야겠다"라며 변호사를 찾아 달려가는 것으로 단순히 끝날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 옆에 변호사가 있다면 다음의 생각들이 즉시 머릿속에 떠올라야 합니다.


▶ 상대방은 변호사에게 돈을 주고 내용증명을 보낼 정도로 나와 싸울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 변호사의 존재를 숨길 수도 있을 텐데 나에게 굳이 존재를 드러내 경고하는 것은 계산에 따른 행동이며, 노리는 바가 있을 것이다. 

▶ 앞으로 상대방에게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변호사에게 전달되어 민·형사사건에서 나에게 불리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 상대방은 적당한 선에서 협의해 끝내려 할 수도 있겠지만, 변호사 마음은 다를 수도 있다(변호사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싸움을 키워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사건들을 진행하다 보면 이 부분에 대한 의뢰인들의 자각이 별로 없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미 변호사라는 방패가 앞을 막고 있는데도 여전히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상대라고 착각하고 그전처럼 행동하다가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특히 연인사이였던 경우).


그리고 사안에 따라서는 상대방이 나와 직접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대리인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폭행, 협박, 성범죄 등으로 상대방이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경우 직접 연락을 시도하는 것은 향후 이루어질 수사나 재판에서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방 대리인이 "연락은 의뢰인에게 하지 말고 나에게만 하라"고 명시적으로 통보한다면 그 취지를 살펴 신중히 행동해야 합니다. 


위의 세 가지 단계를 모두 거쳤다면, 이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단계에 들어서도 됩니다. 일에는 순서가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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