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맘은개뿔 Oct 29. 2020

뻘짓을 시작하기까지

[워킹맘의 존버 실패기] #3

안구와 방광뿐 아니라 위장에도 이상신호가 자주 왔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메일을 읽거나 중요한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랬다. 상사가 나를 따로 불러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까 심플하지만 간단하지만은 않게, 의도가 잘 반영된 기획안을 준비하자.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일단 러프하게 내일까지 해봐’ 할 때 어김없이 명치 아래 제2의 심장처럼 위가 꿈틀댔다. 심장 박동에 맞춰서 꿈지럭꿈지럭 느리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브레이크 댄스처럼 콰콰콰콱 관절을 꺾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몸의 신호는 명징했고 나는 이 모든 것이 존버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품게 됐다. 무엇보다 일도 너무 안 맞았고 자의 반 타의 반 다른 부서에 꽂아져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그를 외면하고자 했다. 나의 좌뇌는 근엄하게 꾸짖었다. 원래 이렇게 참으면서 계속 회사 다니는 거라고, 괜찮다고, 버티라고 했다.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좀 버티면 또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했다. 그럼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줄 알았냐고, 집은 사놓고 이러는 거냐며 야단쳤다. 그렇게 나는 참고, 속이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늦은 새벽이나 잠이 안 올 때 우뇌의 반박도 만만찮았다. 나이가 벌써 마흔 접어드는데 이만큼 열심히 했으면 이제 좀 하고 싶은 거 할 수도 있지 않냐고, 어쩌면 지금이 다른 기차를 탈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이 시간이 지나가면 나중에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차에서 끌어내려지게 될 거라고 했다. 매일매일 고민했다. 전직을 위해 준비하던 대학원은 아직 학기가 남아있다. 어쨌든 논문학기 전까지는 회사를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벌어서 다닐 수 없다면, 남편에게 학비를 내달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염치없는 짓인 것 같았다. 




이렇다 할 결단을 내릴 자신이 없었던 나는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는 미명 아래 여기저기를 쏘다님과 동시에 여러 뻘짓들을 해 보기로 결심했다. 언제라도 그만두게 된다면 그나마 월급이라도 나올 때 나를 위해 더 투자하겠노라 가열찬 다짐을 했다. 그동안 하고 싶지만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보고 싸던 비싸던 그냥 해보기로 했다. 


그때 나는 주말마다 수영을 배우고 있었다. 늙은 나는 아들과 함께 킥판을 들고 발차기를 했다. 강습이 끝나면 선생님이 우리에게 잠수 연습을 시키기 위해 수영장에 돌을 던져 주셨는데, 나는 그 어떤 유치원 어린이보다 열심히 헤엄쳐서 돌을 주웠다. 

(Photo by Zbysiu Rodak on Unsplash)

                                              

나는 통통하고 귀여운 스타일의 장 선생님이 좋았고 수영모를 쓰고 못생긴 얼굴을 한 채 선생님과 바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나도 그녀도 바다를 무척 좋아했는데, 나는 스노클링을 좋아하고 선생님은 다이빙을 좋아한다는 게 달랐다. 장 선생님은 ‘물과 잘 맞는 것 같고, 물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스노클링만 하지 말고 다이빙을 시작해보라’ 고 했다. 그리 어렵지 않다고, 그냥 시작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주 다녀왔다는 보홀 다이빙에서 본 수 백 마리의 잭 피시 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 가득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여행을 하며 다이빙도 하고, 바다를 보며 생선도 보고. 여러 면에서 재밌을 것 같았다. 그때는 도전과 일탈에 대한 의지가 충만했을 때였으므로 나는 오랫동안 버킷 리스트에 장기 주차되어 있던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 보기로 했다. 뭔가 익스뜨림한 레포츠를 하고 싶어 졌다.

작가의 이전글 와이키키와 화장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