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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변호사 Jan 21. 2021

슬픔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햇살이 너무 좋은 겨울날

지루함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모든 것에 변화가 찾아오는 겨울을 좋아했었다. 대학 신입생, 서울살이, 첫 직장 등등 심지어 군입대마저 겨울이었다. 외투 주머니 속 군밤도 좋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어묵도 좋았다. 하지만 40대 중반을 넘어서니 겨울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눈도 시리고 마음도 시리다.


내가 “그”를 만난 것 역시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말수가 적고 무표정했다. 오히려 묻는 말에만 간간히 대답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자신의 능력과 범주 내에서 묵묵히 할 뿐, 싫은 소리를 하거나 내색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형이 없었던 그는 나를 유난히 따랐고, 남동생이 없던 탓에 남자 후배들을 좋아하던 나는 그를 동생이라 생각했다.


평소 자신의 얘기를 잘하지 않는 그와 둘이서 술잔 기울이고 겨우 자신의 개인적인 일과 삶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려대에 합격하고도 학비가 없어서 장학금을 준다던 경희대로 갔다는 이야기, 학원비가 없어서 고시 학원에서 칠판을 닦으며 강의를 들었다는 이야기, 아직 여행이란 것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최근에 유럽 배낭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 그가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하는 말이 왜 그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아직도 잘 알 수가 없다. 그 이후로도 그때만큼 자세한 얘기는 잘 듣지 못했다.


날씨가 아주 좋은 날이면 그가 일하던 여의도에서 그를 만나곤 했었는데, 제주도 수학여행 때 날씨가 너무 좋아서 대열을 무단이탈하여 배낚시를 즐겼던 것에 비롯된 것이었다. 짧게 들려주는 그의 연애 이야기, 새로 산 차 이야기, 옮긴 직장 이야기를 들으며, “고생 끝의 낙”이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일에 치여서 허덕이던 나에게는 소소한 재미로 그를 놀리는 이야기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전화를 할 때마다 전화를 끊고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숨이 차서 말을 할 수가 대화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비소세포성 폐암이라고 했다. 그는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즐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분진이 나는 작업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던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평소와 다름없이 나와 다른 동료들의 근황들을 전하는 것이었다. 반면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폐암이라는 사실에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이야기, 새로 장만한 차를 몰아보지 못하고 세워두기만 했다는 이야기, 자신을 보러 찾아온 여자 친구를 떠나보냈다는 이야기, 기침이 나와서 앉아있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 비소세포성 폐암치료제가 건강보험이 되어 치료비가 줄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아주 담담하게 전했다. 나는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연함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가슴에서 차오르는 슬픔을 숨기려고 몇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고 몰래 숨을 삼켜야 했다. 나는 그의 피지 못한 젊음이 아까웠다. 나는 그의 노력이 어떠했는지 알기에 그 인고의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그의 순수함과 담대함이 참으로 아까웠다.


그날도 햇살이 너무 좋은 겨울이었다. 한통의 전화가 왔다. 그의 동생 전화였다. 전화기 너머 무엇인가 다급함이 느껴졌다. 그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뭔가 서늘했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도 모를 정신으로 달려간 병실에는 그가 완연한 병색을 드러내며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없는 편이다. 가슴으로는 울고 있지만,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나도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10년 치 눈물을 다 흘렸던 것 같다. 그는 그 날 나와 많은 이야기들을 즐겁게 나눈 후 잠이 들었다. 나는 그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내일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슬픔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마치 파도처럼 문득문득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조금씩 밀려오다가 어느 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나서 차를 세울 수밖에 없다. 오늘 같이 햇살이 아주 좋은 겨울날, 나는 아플 정도로 눈이 시리다. 슬퍼하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던 그에게 나는 오늘도 그의 몫까지 열심히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 누리기에는 오늘 햇살이 너무 좋다.


언제나 묵묵히 자신의 삶과 고결함을 지키던, 故 박선태 변호사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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