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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Jan 26. 2024

아빠의 기일

벌써 5년

이번 주 시작부터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은 날이 조금 풀려서인지 햇살이 따숩게 느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모닝 수영을 가서 무서운 언니들 사이에서 샤워를 하고 오리발 끼고 수영 열심히 하고 나왔다.

감기가 거의 2주째 가는 듯.
어제 좀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새벽에 또 깨서 한참 기침하느라 갈비뼈가 아플 지경이었다. 수영을 다니니 감기가 더 안 낫는 것 같다. 수영 다녀와서 콧물을 한바가지 흘렸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다가 친정엄마한테 전화해서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이까지 셋이 함께 추어탕 집에 가서 추어탕 세 그릇 뚝딱.

집에 와서 아이 수학 문제집 채점하고 같이 틀린 문제 풀어보고 아들이 태권도 간 사이에 잠시 낮잠을 잤다.

태권도에서 돌아온 아들과 강철 부대를 보았다. 우린 요즘 강철 부대(시즌 3) 과몰입 중.
나는 HID, 아들은 USSF 응원한다.

아이가 체육센터 배드민턴을 간 사이에 집안 정리하고 영어 공부를 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아이도 돌아와서 우리는 바로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같은 단지에 살고 있는 친정에 갔다.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도토리묵을 쑤고, 온면을 삶았다. 도토리묵은 아빠의 시그니처 같은 거였는데 엄마가 전수받아(?) 이젠 아빠만큼 찰랑찰랑한 도토리묵을 만들어낸다.

보자기에 싸서 깊숙이 넣어둔 아빠의 영정사진을 꺼냈다. 작년까진 거실에 잘 보이게 뒀었는데 영정사진은 안 보이게 보관하는 거라고 누가 얘기해서 넣어두게 되었다.

영정사진을 세워놓고 그 앞에 정말 소박한 한상을 차렸다. 사과, 배, 감 하나씩, 도토리묵, 온면 한 그릇, 김치 메밀전병, 아빠가 좋아하던 막걸리 한 잔 가득.

누구는 기도하고, 누구는 절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 그곳에서 잘 있는 거지?
우린 잘 있어요. 이제는 아빠 기일에도 안 울어.
우리가 아빠 몫까지 더 즐겁게 지낼게. 내가 엄마랑 동생 잘 챙길게. 우리를 계속 지켜주세요.

아빠 제사는 아주 간단히 끝이 났다.

그때 기억나? 아빠가 나한테 내기에 져서 10만 원 뺏겼던 거. 그때 아빠가 무조건 이긴다고 나한테 10만 원 준비하랬다가 내가 이겨서 아빠가 너무 억울해했잖아.

엄마, 이제 아빠보다 묵 잘 쑤네? 아빠가 보면 깜짝 놀라겠어. 우리 도토리묵 장사할까?

오늘 막걸리 어디꺼야? 왜 아빠가 좋아하는 장수 생막걸리로 안 샀어?
(동생 왈, 아빠가 양평에 있어서 양평 막걸리로 사봤어.)
아빠가 화낼 것 같은데? 환불하고 장수 생막걸리로 다시 사 오라고 할 것 같은데?

우리끼리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남편도 막걸리 한 사발을 다 마셨다. 얼굴이 벌게져서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말리니 '내가 이것도 다 못 마시면 장인어른이 뭐라 하실걸. 이건 다 마셔야지.'한다.
사위만 보면 같이 술 먹고 싶어 안달 났던 울 아빠. 사위가 술꾼 장인어른의 모습을 잊지는 않았나 봐요.

엄마, 동생, 남편, 아이, 나.
아빠가 없는 우리가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서 한자리에 모여 밥 먹을 때도 빈자리가 허전해서 한 번씩 눈물을 쏟곤 했는데.

아빠 돌아가신지 벌써 5년.
아빠가 없다는 게 아주 조금씩 익숙해져간다.
오늘은 아빠의 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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