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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열두달 Oct 18. 2023

해열제와 반창고의 의미

차곡차곡 너의 기억 속에 남겨진 것들

안녕, 푸른아.       

         

네가 태어난 지 19개월이 조금 지났어. 오늘 아침엔 엄마가 으슬으슬 몸살감기가 있어서 거실에 누워 있었어. 네가 노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지. 그 어떤 장난감과 교구들, 책들보다도 엄마와 같이 노는 걸 가장 좋아하는 너. 오늘도 엄마와 놀고 싶어 옆에서 칭얼대며 울었다 웃었다, 안겼다, 치댔다 했었지. 


그런 너에게 오늘은 엄마가 아프다고, 힘들다고 계속해서 말했어. 그러자 너는 갑자기 소파에 낑낑 올라서더니 구석으로 가서 부스럭부스럭 뭔가를 끄집어냈어. 며칠 전 네가 갑자기 3일 간 고열로 고생을 했거든. 고열과 감기로 아팠던 네게 엄마가 먹였던 약이 들어있던 약봉지였어. 꽁꽁 묶어둔 약봉지를 직접 열지는 못하고 작은 두 손으로 힘들게 당기고 뜯고 하더니 네가 먹었었던 해열제를 하나 들고 와서 엄마 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 네가 아직 말은 정확히 하지 못하지만 너의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너의 마음은 엄마에게 충분히 전달되었어.     

           

'아 하고 입 벌려보세요. 아픈 엄마, 엄마가 저에게 주던 이 약, 이 약 좀 먹어봐요.'          

     

엄마 입을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아 하고 입을 벌리라고 했어. 그러고는 너는 식탁 위에 놓인 반창고를 들고 와서 엄마 손가락에 갖다 대고 이걸 엄마 손에 붙이라고 했어. 네가 다칠 때마다 엄마는 호 하고 불어주면서 늘 반창고를 붙여줬었거든.

               

최근 들어 너를 돌보는 일과 떨어져 가는 체력과 타지에서 육아하는 외로운 마음들로 힘들고 지쳐서 너에게 잘 웃어주지도 못한 엄마였는데.. 너는 네가 아플 때 엄마가 해주었던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엄마의 마음 그대로 똑같이 엄마에게 해주었던 거야.

                



그래, 엄마가 너에게 모든 순간 완벽하게 좋은 엄마로 잘해줄 순 없었지만 너를 아끼고 사랑해 준 순간순간들을 너는 차곡차곡 네 기억 속에, 네 마음속에 담아 가고 있던 거였어.        

        

엄마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놀아달라고 다가오는 네게 때론 냉담하게, 엄한 얼굴로 기다리란 말만 반복하며 집안일들로, 휴대폰 보는 일로 바빠 네 얼굴, 네 눈 한번 더 쳐다봐주지 못한 게 참 미안했어.      

          

주변의 많은 부모들이 18개월부터 육아가 참 힘들다고들 하더라. 요즘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고 있던 중이었어. 갑자기 성장하고 변화하는 너의 모습을 대하고 다루는 게 참 어렵게 느껴졌거든. 그런데 찬찬히 너를 살펴보니 이젠, 네가 마냥 가만히 앉아있던 아기가 아니라, 네 주위의 많은 걸 이해하고 눈치채고 기억하고 기대하는 한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있었어. 그리고 싫고 좋음이 생겨나고 너의 마음속 단단한 주장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였지. 그렇게 너무도 잘 성장해가고 있는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푹푹 한숨을 쉬며 힘들다고만 불평하고 있었단다.          



      

이렇게 오늘도 엄마는 너에게서 배우고, 오늘도 엄마는 너를 통해 자라가.      

네가 2살인 만큼, 엄마로서의 나이도 2살이란다.     

          

어제는 또 실패한 부분들이 많지만, 오늘은 또 새롭게 다짐해 본다. 그저 밝고 건강하게, 예쁘게, 한 단계 한 단계 잘 성장해 가는 네 모습을 기억하고 마음속에 담아두려 해. 한 번 더 너의 눈을 마주치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정하게 너의 말과 행동에 반응해주려 해.             

   

푸른아, 같이 잘해보자 내일도 모레도.      


푸른아 사랑해. 엄마도 아빠도 너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자.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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