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열두달 Oct 22. 2023

볼 수 있는 풍경이 많아진다는 것

그렇게 작은 알을 톡 건드려 보았지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작은 두드림이 

큰 울림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아주 작디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그건 이미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 

알아차린 사실이다. 




변화가 생겼다. 아이를 조금만 더 가정에서 보육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다. 다행인 건 스스로의 상태가 그렇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육아만큼은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많았지만 부모라고 해서 직접 모든 부분을 최상으로 채워줄 수만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비중과 내 삶, 우리의 삶의 비중을 적절하게 잘 맞춰나가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고 상의 끝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결국은 우리가 행복해져야만 아이에게도 더욱 좋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작년 봄, 우리는 처음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함께 적응 기간을 보냈다. 아이는 처음에는 낯선 공간, 낯선 분위기에서 어색한 눈빛과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았고, 주저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힘들어하는 모습들도 있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차 나의 품을 벗어나 친구들에게로, 선생님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아이는 우리가 걱정했던 것보다 더욱 잘 해내는 모습들이 많아졌다. 아이는 그렇게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고, 자신만의 생활과 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낯선 세상을 바라보고, 다양한 것을 경험할 때 우리는 한걸음 뒤에서 도와주기도 하며, 실수하기도 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며 자라나고 있다. 아이로 인해 우리는 삶을 다시 시작해 함께 자라 가는 중이다.


봄날 시작된 변화는 이것에 그치지 않았다. 내 삶에서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간 실패의 연속으로 심각한 무기력함에 빠졌고, 산후우울증과 고립된 육아로 오래 쌓여온 우울을 겪었던 내게 ‘운전’이라는 새로운 도전이 다가온 것이다. 아이가 가게 된 어린이집이 운전을 해야만 하는 거리였고,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며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변화하고 싶지 않고, 생각만 해도 긴장이 되는 운전을 하고 싶지 않아서 버스나 지하철, 택시를 이용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대로만 살아도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왜 해봐야 할 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랬다. 그동안의 내 상태는 항상 작은 변화조차도 두려웠기에 삶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해내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결코 나만은 운전을 할 수 있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갑자기 난생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 아이가 생각났다. 세상에서 고작 2년 간 살았던 아이에겐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로워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때론 낯설고 두렵고 긴장되기도 할 터였다. 조금씩 나아가고, 조금씩 자라 가는 아이를 보면서, 다시금 생동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서툰 아이도 모든 처음인 것들을 해내고 있는데 내가 이대로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넘게 장롱에서 잠자고 있던 먼지 쌓인 면허증을 꺼내 들고 운전을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 가장 어렵다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아 운전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끼어들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고, 주차하고 하는 모든 것들이 어려웠다. 이걸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일까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렵게만 느껴졌다. 과연 조수석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태에서도 혼자 도로에 나갈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 댁에 내려가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운전 연습을 도와주셨다. 이 날은 운전에 익숙해진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그날이다. 당시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주차 연습도 하고, 고속도로 주행도 하면서 포항의 한 바닷가까지 가게 되었다. 힘겹게 주차를 하고 가지고 온 커피를 들고 바닷바람이 부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가 직접 운전을 해서 여기까지 오다니..'


누군가에겐 쉬워 보이는 것이 왜 나는 항상 어려울까 생각했었는데, 나는 항상 그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 보는 것이 늘 어려웠다. 누군가에겐 운전해서 바닷가에 가고, 산에 가고, 공원과 마트를 가고 하는 것들이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내겐 어렵게 발걸음을 내디뎌본 소중한 경험이었고 새롭게 시도한 것의 결과는 생각보다 멋졌다.


커피를 마시며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 운전을 할 줄 안다는 건 네가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더욱 많아진다는 거야 ”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뭉클한 마음이 들어, 괜히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버지의 그 말씀은 서울로 돌아와 운전을 연습할 때마다 내게 생각나는 한마디가 되었다.      


‘그래, 이젠 나도 다채로운 풍경들을 보고 싶어. ’

          

3개월 간 꾸준한 연습 끝에 손과 발과 눈과 머리가 모두 따로 놀던 목각 인형과 같은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조금씩 꾸준히 연습한 결과 이제는 마트도 가고, 어린이집 등하원도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다다랐다. 이렇게 시작된 운전은 이젠 나도 다른 것들도 다시금 해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오랜 실패감을 딛고 일어설 디딤돌이 되었다.      


작은 부분이더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취하는 과정은 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들로 돌아왔고 건강한 자존감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운전 하나만 새롭게 배워할 줄 알게 되었는데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작은 성취와 소소한 행복들을 다시 조각조각 모으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각자의 작은 알을 톡 건드리고, 나아와 변화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변화는 새로운 풍경으로 우리들을 데려다주었다. 나의 오랜 무기력의 그늘에도 점차 햇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해 봄날, 우리는 가끔 느닷없이 찾아온 꽃샘추위의 찬 바람에 떨곤 할 때도 있지만, 잠잠히 걸음을 내딛으면서 다시 따스한 햇살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이전 08화 해열제와 반창고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