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을 돌아보면, 수많은 순간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에서도 가슴 깊이 의미로 남은 일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남산을 찾았던 기억입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활동했던 아카데미, <흥사단>의 산하 단체인 아카데미에서는 부속 활동 중 하나로 남산 조기 체조라는 명칭으로 일요일에 남산을 청소했었습니다. 아카데미는 매주 토요일 오후 대학로에 있던 흥사단에서 독서토론과 주제 토론을 했던 학생운동 모임이었습니다.
남산 조기 체조, 백범 김구 선생 동상에서부터 팔각정까지 이어진 계단을 조용히 쓸고 올라갔던 시간.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며 낙엽을 치우고, 발길에 채는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 정리하다 보면, 마음도 함께 맑아지곤 했습니다.
남산 계단에서의 아침은 고요함과의 약속이었습니다. 해가 뜨기 전 남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을 위한 것이 아닌, 스스로와 정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남산 조기 체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옆집 순이가 울거나 말거나 일요일마다 매주 행해졌습니다. 청소하는 봉사의 마음도 좋았고, 새벽 공기의 상쾌한 차가움도 좋았었습니다. 20대 후반의 나이까지 참여했었습니다.
또 하나는 대학 시절, 보육원을 찾아가 야학 활동을 했던 기억입니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 작지만 진지했던 손 글씨, 수줍지만 해맑게 웃던 얼굴들.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단순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육원의 야학 시간은 나의 가르침보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운 것이 더 많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기쁨을 알았었습니다. 이 역시도 20대 후반의 나이까지 참여했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제 젊은 시절의 소중한 조각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크게 바꾼 일은 아니겠지만, 제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 순간들이었습니다. 때때로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마음속 한편이 아름답고 따뜻해집니다. 하지만 마음 아팠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팠던 순간들은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터널 같았습니다.
보육 시설의 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 종료 아동이 되어 퇴소해야만 합니다. 그 애들은 자립 준비 청년이라는 용어로 불리며 매년 2,600여 명이 보호 종료 후 사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시설에서 나올 때 자립 정착금으로 겨우 5백만 원 정도만 쥐어질 뿐입니다. 그 외 지급되는 자립 수당은 5년간 매월 35만 원이 전부입니다. 보호의 울타리가 걷히며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만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부모의 울타리는 상상하는 것만도 그 애들에게는 사치가 되겠죠.
그런데 예상 못 한 문제가 생깁니다. 당연하겠지만, 사회에 나오기 전에 5백만 원이라는 큰돈도 만져본 경험도 없고,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나이이기도 해서 쉽게 사람을 믿어 사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보다 나은 장래를 위한다면 학업을 지속해야 할 텐데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혹여 진학하게 되어도 학비, 생활비 등의 마련은 막막하겠죠.
덮어씌어진 삶의 굴레, 그 서글픔이 짙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외로움에 지치고, 인생살이의 힘듦에 술이나 담배에 의지하게 됩니다. 미혼모가 되기도 하고, 노숙자가 되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일들로 삶의 벼랑 끝에 몰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살도 많이 생각하고 실제 극단적 선택을 택하기도 합니다. 자립 준비 청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아려옵니다.
어떨 때는 의도적으로 연락이 닿은 친부나 친모에게 속아 돈을 모두 잃기도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친부모가 자립 정착금을 탐해서 연이 이어진 것입니다. 없느니만 못한 부모가 오히려 끊지 못할 악연이 되기도 합니다. 버릴 때는 언제고 그 얼마 안 되는 자립 정착금을 탐내는 부모라 진짜 악인이 따로 없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땐 악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악이란 무엇일까?
악이라는 개념은 본래 종교와 신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종교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과 같은 토속신앙이 존재했습니다.
애니미즘은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으로, 해, 달, 별, 바위, 강과 같은 자연물에 신격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은 무당, 주술사를 중심으로 초자연적 존재와 소통하는 신앙이며, 토테미즘은 부족이나 씨족이 특정 동식물이나 자연물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숭배하는 형태의 신앙입니다. 초기 인간들은 자연 속 정령과 유령, 데몬 등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왕국의 형성, 교역망 확대와 함께 왕국 전체를 아우르는 권위 있는 존재들이 필요해지면서 다신교가 등장했습니다. 다신교는 풍요의 여신, 전쟁의 신, 비의 신과 같은 다양한 신들이 세상을 통제한다고 믿었으며, 인간은 예배와 재물을 통해 신의 은혜를 기대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힌두교 등의 다신교에서는 여러 신들을 인정하면서도 절대적인 최고 권력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고전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조차도 운명의 여신 모이라와 아낭케에게 복종했으며, 힌두교의 경우 아트만이라는 절대 원리가 무수한 신들과 생명체, 물리적 세계까지 모두 통제한다고 보았습니다.
다신교의 핵심적인 특징은 개방성과 포용성입니다. 다신교 사회에서는 이단을 탄압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신앙의 강요도 적었습니다. 제국이 확장되더라도 피정복민의 종교와 의례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다신교 내에서 일부 신자들이 특정 신을 절대적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일신교가 탄생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숭배하는 신이 유일하며, 우주의 절대 권력이라고 믿었으면서도 동시에 그 신이 관심과 편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신앙의 흐름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일신교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나사렛 예수를 기다리던 메시아로 확신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메시지를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기독교는 선교를 핵심 전략으로 삼았습니다.
기독교의 성공은 이후 7세기 아라비아에서 등장한 이슬람교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슬람 역시 강력한 선교와 정복 활동을 통해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습니다.
일신교는 다신교보다 배타적이고 전도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단 하나의 신만이 유일한 진리를 소유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인정할 수 없었고, 경쟁 종교를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기원후 1세기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던 일신론이 500년경에는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으며, 7세기에는 이슬람이 등장하여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기원후 1000년경에는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이 일신교를 믿게 되었고, 오늘날 세계 정치질서 역시 일신교적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다신교는 일신교뿐만 아니라 이신교도 낳았습니다. 이신교는 선과 악이라는 대립적인 두 힘의 존재를 믿으며, 악을 독립적인 힘으로 봅니다. 이에 따르면 세상은 선과 악의 전쟁터이며, 악은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고 종속되지도 않습니다. 이신교는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보다 명확한 답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매력적인 세계관이었습니다.
일신론자들은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악과 고통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항상 난관에 부딪혀 왔습니다. 흔히 자유의지로 설명하려 하지만, 이것은 '신이 인간의 지옥행을 미리 알고도 창조했는가?'라는 새로운 의문을 낳습니다. 반면, 이신교는 독립된 악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이신교 역시 한계를 가집니다. 세상에 선과 악이 존재한다면, 이 둘을 관장하는 법칙과 그 법칙을 만든 존재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즉,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신론은 악의 문제를 해결하지만 질서의 기원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신교는 무려 1천 년 이상 번창했습니다.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1000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조로아스터란 이름의 예언자가 중앙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니체가 말했던 자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의 본명입니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그의 교리는 마침내 가장 중요한 이신교인 조로아스터교가 되었고, 그 신봉자들은 세상을 선신과 악신의 우주적 싸움터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이 전쟁에서 선신을 도와야만 했죠.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서 중요한 종교였고, 나중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후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거의 모든 종교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했던 종파의 하나인 그노시스파와 3세기에 페르시아 왕국에서 마니가 창시한 고유의 이원론적 종교인 마니교 등 여러 이신교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일신교는 이신교로부터 수많은 신앙과 관례를 흡수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일신교라고 부르는 것의 가장 기본적 사상 일부는 사실 그 기원이나 정신이 이신교적입니다. 선과 악,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천국과 지옥 등의 기원은 이신론에 있었습니다.
모순되고 우스운 것이 일신론자들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 애니미즘 적 유령을 모두 믿습니다.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이처럼 상충하는 사상을 동시에 인정하는 행위와 각기 다른 원천에서 가져온 의례와 관례를 혼합하는 행위에 대한 명칭을 제설혼합주의(諸設混合主義)라고 합니다. 제설혼합주의는 철학이나 종교에서, 각기 다른 내용이나 전통을 지닌 여러 학파나 종파가 혼합됨을 말합니다.
결국, 종교는 단순한 신앙 체계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배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융합되어 왔습니다. 다신교, 일신교, 이신교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며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까지도 그 유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젊은 날의 봉사 경험은 제 삶을 따뜻하게 해주었지만, 보호 종료 아동들의 현실을 접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자유의지인가, 혹은 세상의 구조적 문제인가? 종교와 철학이 이를 설명하려 하지만, 여전히 명쾌한 해답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진다면 세상의 어둠을 밝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과의 전쟁은 거대 담론이 아닌 오늘의 작은 결심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