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서 불행하지 않아

- 함께라서 행복하고 혼자라서 불행한 것은 아니야

by 글쓰는장의사

여행을 다니기 힘든 요즘. 문득 나의 첫 혼자 여행이 생각이 났다.

후쿠오카.

충동적인 티켓팅과 무책임한 일정은 몸은 지치지만 마음은 홀가분해진 여행이었다.


이혼을 하고 본가를 뛰쳐나와 혼자 살던 나는 막연하게 해외여행이 가고 싶었다. 혼자서 가봐야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 실행할 용기는 없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넷상으로 가상 여행을 하던 나에게 솔깃한 금액이 눈에 보였다,

후쿠오카에 어떤 호텔이 오픈 기념 1박에 5만 원.

'부산에서 가까운 곳이라 들었는데 비행기 가격이 얼마인지 볼까?'

왕복 10만 원??

정신을 차려보니 숙박을 예약하고 항공권을 구매했다.

갑작스러운 여행이 생겼다.


일주일의 기간 동안 가볼만한 곳을 검색하고 나름 루트를 그렸다. 2박 3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첫 혼자 여행이라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던 기억이 있다. 하필이면 그 당시 출발을 며칠 앞두고 태풍이 일본을 강타했다. 언론에서는 일본이 완전 물바다가 되었다고 했다.

'아... 가서 아무것도 못하고 오더라도 일단 가보자'


출발하던 날 부산에도 비가 내렸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번 여행은 완벽하게 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에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본 호텔 구경이나 하고 오자'

비가 오는 날씨지만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비행기는 출발했다.

한 시간도 되지 않는 비행시간 후 공항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대~박~"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와 평온한 거리는 내가 듣던 물난리 상태의 일본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의 텐션은 이미 이 세상 텐션이 아니었다.


미친 듯이 걷고 또 걸었다. 한여름 30도를 넘는 날씨에 탈진해서 쓰러질 뻔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걸었다.

대중교통 비용이 비싸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냥 그 동네 사람 사는 모습이 궁금했다. 번화가나 관광지가 아니라 그저 후쿠오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여행에서 우연처럼 다가온 몇 가지 행운이 있었다.


첫 번째 행운은 정말 우연히도 내가 여행했던 그때 전통 축제 기간이었다. 정확한 축제 명칭은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 옷을 입고 거리를 다녔다. 전혀 계획에 없던 상황이라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그저 그날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만 남기고 나의 일정대로 움직였다.

의미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지만 그저 행운처럼 내가 갔던 그날 축제를 했다는 사실에 길을 가다 돈을 주은 것처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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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행운은 첫날 저녁에 찾아왔다.

배고프고, 돈은 넉넉하지 않은 여행자이지만 먹고 싶은 것은 있는 법이다. 일본에 왔으니 초밥이 먹고 싶었다. 돈은 없으니 고급 초밥집은 가지 못하고 100엔 초밥 우리나라에서 천 원 초밥 같은 곳에 들어갔다.

너무 배가 고파서 인지 아니면 정말 일본의 초밥은 맛이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맛은 좋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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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행운은 둘째 날 저녁 포차 거리를 돌아다니다 얻어걸렸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골목골목을 다니던 나에게 아주 조용한 장어덮밥집이 보였다. 가격은 제법 있었다.

'어차피 내일 돌아가는데 부족하지는 않으니 먹자!'

용기 내어 들어간 곳에서 만난 장어덮밥은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다. 덮밥 젤 위에 장어 내장을 올려주었는데 그 맛이 잊을 수가 없다.

(이후 나는 오로지 이 덮밥을 위해 1박 2일 후쿠오카를 한 번 더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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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이런 우연 같은 소소한 행운들이 즐거웠다. 해가지고 숙소에 들어오면 혼자라는 기분이 잠시 들어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 외로움까지도 행복했다.


이혼을 하고 하루하루를 그저 즐기며 살자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딱히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고, 경제적인 압박에서는 벗어났지만 풍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소소한 목표가 생겼던 것 같다.

'무작정 돈을 모으지 않고, 기회가 된다면 여행을 자주 가야겠다. '


아마 이 짧았지만 강렬했던 2박 3일 혼자 여행이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타게 되었고, 혼자 영화도 보게 되었고, 혼자 카페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그저 번화가로 나가서 혼자 걸으며 구경을 하기도 했다.


혼자라는 것이 부끄럽거나 창피한 것이 아니며, 불행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나 보다.

이 여행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쿠오카 2번, 오사카 1번, 도쿄 3번 아주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여행을 다녔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가지 못하는 기간을 빼면 자주 갔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추억을 남겨준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 자신을 바꿔주기도 한다.


나는 이날 이후부터 몸과 마음이 지친 누군가에게 꼭 이 말을 해준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무작정 여행을 가보세요. 돈과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일 뿐, 얼마든지 가능해요. 잘 생각해보세요"



혼자라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행하다고 생각하기에 혼자인 상황마저 불행하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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