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이혼과 사별 둘 다 이별이다. 우리 엄마는 사별을 했다. 벌써 7년이 지난 일이다. 즉, 나는 20대 중반에 아빠를 잃었다. 그러고 1년 뒤 나는 이혼을 했다. 결국 우리 집은 사별한 엄마와 이혼한 아들이 함께 공존했다. 엄마는 나를 방치함으로 위로했다면, 나는 엄마를 무심함으로 위로했다.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방식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주변에 이혼 혹은 사별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특별히 신경 쓰지 말고, 위로는 한 번만 하세요. 동정심 혹은 그 어떤 마음으로도 애써 도와주려 하지 마세요"
아빠는 우리 곁을 갑작스럽게 떠났다. 나는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와 동생 그리고 아빠 이 세 부자가 차를 타고 하루를 함께 했다. 그리고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는 동생과 나로 하여금 평생의 짐이 되어 버렸다.
아빠 : 팥죽 먹고 들어갈까?
나 : 나는 바로 집에 가야 해
동생 : 그냥 엄마 가게 가서 밥 먹으면 되지 팥죽은....
아빠 : 그래
나 : 아빠 나 여기서 내려줘. 먼저 간다.
생생히 기억한다. 이게 나와 아빠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날 밤 아빠는 갑자기 쓰러졌고 그 후로 깨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지만 결국 마지막이 되어버린 대화를 나는 아직까지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엄마의 상심은 아마 우리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엄마 역시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을 거다. 아마도 그날 저녁식사에서 잔소리도 했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 앞에서 강한 척,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는 버티지 못했다. 당시 일들을 이야기하면 우리 엄마의 기억은 온전하지 못하다. 그 정도로 엄마는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엄마 스스로 느끼지 못했겠지만, 그리고 지금도 만약 내가 말하면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아빠가 떠난 후 엄마는 나에게 의존하려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그때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무심함이다. 마음은 아프지만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나는 평생 엄마를 책임지지 못한다. 그럴 자신도 없다. 그러니 엄마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엄마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맹세코 핑계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했고, 의지하려고 하는 엄마를 조금씩 밀쳐냈다. 엄마는 서운하게 생각을 했고, 종종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역시 강했다. 금방 털고 일어나 원래 엄마의 모습을 찾았다. 내가 엄마의 기둥이 되어 주었어도 엄마는 원래 모습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분명 더 길었을 것이다. 반대로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나 혹은 동생에게 많은 의지를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혼 혹은 사별은 당사자에게 충분히 큰 사건이다. 하지만 그 당사자들 중 대부분은 이 사건을 내 주변에서 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주변에서 나보다 더 슬픈듯한 말투와 단어로 위로를 할 때면,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가시가 되었다. 내가 삐뚤어진 사고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친구는 넘어졌을 때 세워주기보다 옆에서 웃고 놀린다고 했던가. 이런 이치가 아닐까? 내가 아픈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그 아픔을 주변에서 콕 집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오히려 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에게 그 상처를 다시 한번 들쑤시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방치가 아니라 방목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가급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사람을 대한다면, 내가 그랬듯, 우리 엄마가 그랬듯, 당사자에게 더 큰 힘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고통의 시간에서 금방 벗어날 것이다.
관심 없다는 듯이, 관심을 갖고 조용히 뒤에서 묵묵히 지켜만 봐주는 것으로 당신의 소중한 그 사람은 큰 힘이 된다. 다리를 다친 사람에게 과도한 부축은 오히려 환자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저 넘어지지만 않도록 한발 물러서서 지켜봐 주는 것으로 주변인의 몫은 다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