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살 예방의 날 #자살예방 #9월 10일 #극단적 선택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는 ‘벼랑 끝 선택’, ‘어쩔 수 없는 선택’, ‘마지막 탈출구’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자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사망’, ‘숨지다’ 같은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도 적절치 않다. ‘어쩔 수 없는 선택’과 ‘극단적 선택’의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극단적 선택’은 언론에 의해 자살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 용어는 자살 방지라는 의도와 달리 자살의 원인과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자살을 택하게 될 때까지 맞물렸을 수많은 사회적 요인들은 ‘선택’이라는 단어 뒤에 가려지고, 개인의 기질이나 어려움만이 남는다. ‘죽을 용기로 살아라’는 말도 자살을 생각하게 된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살이라는 선택에만 집중하기에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말이다.
자살위기 개입은 CPR과 비슷한 개념이므로 응급조치 후에는 삶의 회복이 필요하다. 내면, 인간관계, 사회와의 관계, 일자리 등 무척 더디고 힘든 일이며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 한 해 동안 644명이 일하다 사망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먹고살기 위해 나간 일터에서, 일하다 죽는 사회다. 뭐라도 해야 한다. 진부한 통계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자살률 1위 국가다. 지금도 약 40분에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하루에 약 1.7명이 출근한 뒤 귀가하지 못한다.
자살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다. 자살을 막을 단 하나의 묘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 뒤엉킨 문제들을 하나씩 찾아 풀어나가야 한다. 최소한 우리 사회가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뉴스를 훑어보기만 해도 학교폭력, 교권침해, 직장 내 괴롭힘, 빈곤, 양극화 등 세대와 성별, 지역을 초월한 문제가 생애주기별로 고루 분포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수많은 사회 문제들 중 단 하나라도 해결하기 위해 지속으로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살 예방에 힘쓰고 있다고 본다.
반면 우리 사회는 문제 발생 후 사후적 조치에 급급해왔다.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고 문제는 형태와 시기, 그 문제를 지적하는 용어가 조금씩 변할 뿐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다. 정치는 서로 권력을 이양하며 적당한 이익을 나눠가지는 선에서 합의하기를 반복했고, 청년들에겐 정치를 통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무력감만 남겼다. 남은 건 각자도생. 지나친 경쟁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온다는 것을 알지만 살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기도 한 사회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