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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Dec 23. 2023

정신질환 당사자의 경험 나누기

<청년들의 정신건강과 나> 2023.12.20(수) @성균관대학교

정신질환 당사자의 경험 나누기

<청년들의 정신건강과 나> 2023.12.20(수) @성균관대학교


당사자로 참여한 여섯 명의 패널은 대체로 양육자의 물리·언어적 폭력이나 방임과 함께 유년기, 성장기를 보냈거나, 가까운 사람을 상실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정신질환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람들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첫째로는 개인의 기질이나 높은 회복탄력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사건에도 스트레스를 덜 받거나, 좌절의 경험을 하더라도 이전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질환'으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을 수 있겠다.


둘째는 '그 사회가 다양성을 얼마나 포용하는가?'이다. 우리 사회는 경직되어 있다. 충분히 쉬고 회복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도 대입을 위해 공부를 멈출 수 없고, 취직을 해도 집을 사거나 결혼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계속해서 일해야 한다.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하루 쉬면 하루 매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서적 어려움을 이유로 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나와 잘 맞는 정신과, 심리상담사를 만나는 게 어려운 것도 이러한 이유다. 우리에게는 돈과 시간이 충분치 않다.


사회 안전망이 잘 작동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국가가 치료비나 상담비를 지원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본인이 신청한 경우에 지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 접근에 취약한 집단은 정부 지원에서마저 밀려난다. 운 좋게 1. 신청 기간 내 2. 대상자 선정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실제 서비스를 받을 때까지는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복지로 사이트를 통해 2023년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을 신청했는데 행정복지센터에 신청해야 한다며 반려당했다. 날짜가 되어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했으나 20명 이상 밀려 있어서 순번대로 연락을 준다고 했다. 연락은 10월쯤에서야 왔다. 순번이 되었다고 했으나 2023년이 열흘도 남지 않은 지금, 나는 한차례의 상담 서비스도 이후 관련 안내도 받지 못했다.

나는 발병 초기 운 좋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구해서 병원비와 심리 상담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재택근무가 불가했다면 질환과 고립의 시간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개개인의 기질과 역량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9 to 6 가 표준인 8시간 노동에 맞지 않다면 많은 일자리를 포기해야 한다. 또한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증상에 대한 이해를 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에 정신질환이 있는 자들은 일자리에서도 밀려나기 일쑤다. 관계의 어려움이나 증상의 재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다반수다. 실제 2021년 기준 정신장애인 고용률은 10.9%에 불과하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가치 측정의 척도로 ESG가 대두되었듯,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인권 또한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속도와 효율만으로는 이 사회를 지속할 수 없다. 일부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면 이 사회는 패망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자원에는 한계가 있고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면 경제 또한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부호들의 적극적인 기부도 경제가 쓰러지지 않도록 수혈하는 것과 같다. 복지제도가 노동자들의 분노와 경제 문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파 계열에서 먼저 시행했던 역사에서 볼 수 있듯 말이다.

일자리, 경제만으로 해결되진 않을 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관계다. 해로운 관계를 끊어내고, 좋은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 어려움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지할 자조모임에 참석하기도 한다. 강연을 맡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 또한 '회복적 대화', '강점 중심' 대화를 강조했다. 대화를 통해 회복이 일어나야 하며, 상대의 잘못된 점이나 실수를 지적하기보다는 잘한 점을 주로 짚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건강한 실패와 좌절은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예리한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제 교수는 "개인적 측면에서는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이 평가나 판단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라며 "장점을 수용해 줄 때 자신의 단점과 약점을 들여다보고 개선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대답했다.


세 시간 가까운 대화가 이어질 수 있던 건 이야기를 경청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듣는 자가 없다면 독백에 그칠 뿐이다. 자리를 마련하고, 함께해 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다. 다만, 사회적 재난과 산업재해, 직장내 괴롭힘 문제 등을 충분히 논의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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