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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승진 Oct 17. 2023

1. 경쟁교육!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우리사회에는 경쟁과 관련한 많은 담론이 있습니다. 시중에는 ‘경쟁 없는 교실엔 경쟁력이 없다’라며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도 있고, 반대로 경쟁으로는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고 역설하는 ‘경쟁의 배신’과 같은 책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쟁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합니다. 경쟁의 사전적 정의는 ‘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룸’입니다. 예일대 심리학교수 Leonard William Doob는 ‘경쟁은 2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절대 다 같이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경쟁교육은 모두가 다다를 수 없는 상호 배타적인 목표를 설정해 둠으로써, 동기를 부여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교육방식이라 하겠습니다. 10명의 사람에게 빵을 다섯 개만 주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경합하게 만드는 식입니다.


경쟁교육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주의력 향상, 효율성 신장 등을 장점으로 강조합니다. 그 예로 국제학업성취도평가, PISA에서 우리학생들이 얻은 높은 학업성취를 경쟁교육의 성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경쟁교육은 분명 득보다 실이 많은 교육인 듯합니다. 이해를 돕고자 실제 이야기를 하나 나누겠습니다.


2005년 4월 23일 오후 10시. 텍사스 주 아마릴로 소방서 소속 소방대원 브라이언 헌튼은 생애 마지막이 될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우스포크스트릿’에 있는 어떤 집이 불타고 있다고 했습니다. 경보가 울린 지 60초. 그 짧은 시간 만에 헌튼을 비롯한 다른 소방관들은 모두 소방차에 탑승했습니다. 바지, 재킷, 후드, 장갑, 헬멧, 장화를 모두 착용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헌튼에게는 그날이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고, 그의 죽음은 아주 비극적이었습니다.


사실 헌튼은 화재 현장까지 가지도 못했습니다. 소방차가 사우스포크스트릿으로 질주할 때 교차로에서 한 차례 급하게 우회전을 했는데, 그때 왼쪽 뒷문이 열리면서 헌튼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혀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이틀 뒤 사망했습니다.



만일 그가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다면, 문제의 그 문짝이 아무리 벌컥 열렸다 해도 죽음을 부르는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미국 소방관들의 대대적인 안전벨트 매기 캠페인이 일어납니다. 일명 'Brian Hunton National Seat Belt Pledge' 캠페인입니다.


출처: https://www.everyonegoeshome.com/seatbelts/

이 사건은 터널링 효과에 대해 상기시킵니다. 화재경보가 울리면 소방관들은 출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하게 됩니다. 다만 이때 어떤 한 가지 집중한다는 의미는 다른 많은 것들을 무시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브라이언 헌튼의 경우처럼요. 화재진압이라는 긴급함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다가 오히려 가장 간단하고 중요한 안전수칙을 간과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터널링 효과>

경쟁교육도 이러한 터널링 효과를 보입니다. 경쟁교육은 집중력 향상, 효율성 신장을 강점으로 내세우지만, 사실 교육의 본질적인 요소 대부분을 놓치게 만듭니다. 이때, 본질적인 것을 놓치게 만드는 방식의 ‘집중’은 한 소방관의 ‘생명’을 잃게 만든 것처럼 아주 치명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경쟁교육은 치명적입니다. 경쟁교육은 교육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소중한 가치들과 과정들을 간과하게 만듭니다. 학교라는 공동체를 바라보는 방식을 왜곡시키고, 개인의 발달과 성장이라는 교육의 소중한 가치를, 오직 시합의 장으로 치환시켜 승자와 패자를 내면화합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을 합리적인지 않은 선택에 빠지게도 만듭니다.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골드만 딜레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1984년, 로버트 골드만이라는 의사 겸 생화학자는 198명의 엘리트 선수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약물 검사에서 발각되지 않고 금메달을 보장해주는 약물이 있다. 그런데 이 약물을 먹을 경우 5년 후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당신은 이 약을 먹겠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무려 52퍼센트가 먹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그 후로 10년 동안 2년마다 이 설문을 반복해보았는데 결과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우리 삶에서 진정 소중한 가치는 건강한 삶과 정신일까요? 아니면 1등이라는 성취일까요?


대한민국의 학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학생들이 시험기간에 자주 찾는 것이 카페인 음료입니다. 잠을 이겨내기 위해서입니다. 뉴스 프로그램에서도 심각성을 다룰 만큼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저 역시 시험기간에 이 음료를 쌓아놓고 먹는 아이들을 저는 숫하게 보았습니다. 분명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과도한 카페인은 치명적이지만, 눈앞의 성적이 더 중요한 아이들에게 건강은 먼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또한 경쟁교육은 학교라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도 왜곡시킵니다. 널리 알려진 연구가 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자국의 고등학교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고등학교가 ‘사활을 건 전쟁터 같은 곳’이라고 답한 비율이 무려 80% 넘었습니다.


또한 동일한 논문에 게재되어 있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다른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 봤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고 예상하는가?’라는 질문도 주목할 만합니다. 한국 학생의 경우 ‘누가 물어보더라도 잘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는 답변은, 두 번째로 응답률이 높았던 일본보다도 무려 두 배 가량 높았습니다.

이처럼 경쟁교육은 사회적 자본도 저하시킵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구성원들의 사회에 대한 신뢰, 호혜 규범, 협력적 태도, 사회적 포용도 등을 포과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쟁교육에 심각하게 노출된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이러한 사회적 자본에 취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OECD 사회 지표의 2016년 보고서 조사에 따르면 정부 신뢰 비율도 한국인은 28%에 불과해 OECD 평균 46%보다 훨씬 낮은 모습을 보입니다. OECD국가들 중 순위로 따지면, 한국인의 타인 신뢰는 35개국 중 23위, 정부 신뢰는 34개국 중 29로 한국의 사회자본 수준은 하위권입니다.


앞서 본 PISA 결과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012년 PISA의 경우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에서 수학 1위를 했습니다. 대단하지요. 하지만 경쟁교육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효율성 측면을 살펴볼까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주당 수학 학습 시간은 평균 7시간 6분으로 OECD 국가들 가운데서 단연코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붓습니다. 국가별 수학 점수를 수학 학습시간으로 나누어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OECD34개국 가운데, 34위를 차지합니다. 꼴등입니다. 쉽게 말하면 2위를 차지한 스위스 아이들과 비슷한 성취를 얻으려면 스위스 학생들보다 2.3배 이상의 시간동안 공부를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협력교육의 나라 핀란드 아이들보다는 2.5배는 더 공부해야 비슷한 성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말 가성비 최악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주구장창 앉아서 남보다 하나라도 더 맞춰야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어떨까요? 우리나라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만족도는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싱가폴은 OECD가 아니니 우리나라가 OECD 1위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경쟁교육의 실상입니다. 학생들의 건강, 사회적 상호신뢰, 학업효율성, 그리고 삶에 대한 만족도. 놓치고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지요.


PISA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습니다. 전공과 직업의 불일치도를 보여주는 데이터입니다.. 우리나라는 역시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최근 자료를 보기 위해 우리나라 자체 조사도 한번 보겠습니다. 2022년에 자신의 전공과 직업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은 36.8% 가량 됩니다. 이러한 응답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작용하겠지만, 전공보다 대학 간판을 획득하는데 더 경쟁적으로 임하는 우리나라의 교육풍토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끝으로 PISA에는 학생 경쟁 지수라는 데이터도 존재합니다. 학생경쟁지수란 학생들이 경쟁에 얼마나 가치를 두는지, 서로 얼마나 경쟁하고 있다고 느끼는지, 경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지를 물은 결과입니다. 대한민국의 학생 경쟁 지수는 0.52. OECD 평균은 –0.01입니다. 예상하시겠지만 OECD NO.1입니다. 

알피콘의 ‘경쟁에 반대한다’라는 책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 없이는 살지 못하므로 물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에 경쟁교육 풍토는 너무 만연해서, 마치 경쟁이 물고기의 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은 왜 압력밥솥 경쟁교육 사회가 되었을까요? 다음시간에는 대한민국의 경쟁교육의 연원에 대해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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