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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호숲 Dec 21. 2020

엉덩이 씰룩거리게 하면 그게 장난감이지 뭐!

태리야 제발 놀아줘

뉴 올드 장난감


오늘은 잠자리 장난감으로 태리 흥 돋우기에 도전! 작두 타듯 잠자리를 텐트 속으로 넣었다가 빈백 소파 뒤에 숨겼다가 허공에 날렸다. 태리가 줄광대처럼 날아다녔다면 이 책을 쓸 일이 없었겠지. 그렇게 쉬웠다면 내 고양이가 아니지. 후후후.... 태리는 자기 앞으로 지나가는 잠자리를 대충 한 번 잡고 냅다 누웠다. 


하지만 나는 이제 노력 천재니까 포기하지 않는다. 잠자리가 별로라면 다른 걸로 놀아주겠어. 후후. 장난감 서랍을 향해 가는데 입질이 느껴졌다. 장난감 끄트머리에 달린 리본에 태리가 낚였다. 여성 속옷의 리본처럼 쓸모없는 장식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태리를 줄광대로 만들었다.


퇴사하고 슬슬 바닥나는 통장잔고가 걱정됐는데 리본이 금 동아줄로 보였다. 돈 안 쓰고도 잘 놀아줄 방법이 보이는구나 얼씨구! 리본 놀이가 끝나고 바로 장난감 서랍을 엎어 정리했다. 


애들 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 폐기. 

열렬한 호응으로 인해 과용한 결과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분해해서 보관. 


명절용 전(煎) 바구니를 가득 채울 만큼 수북했던 장난감 중에 남은 건 절반 정도였다. 다섯 가지 종류로 분류해서 정리했다. 깃털, 굵은 끈(신발끈 등), 얇은 실(옷 택 실),  비닐, 기타(강아지풀 모형, 자동 장난감 등).


몇 주 동안 장난감 조각을 재활용해 매일 새로운 조합을 선보였다. 깃털이랑 비닐을 묶거나 끈에 강아지풀을 달고, 실에 비닐을 엮었다.


태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줄을 탔다.




마음의 여유


대학생 시절, 일이 안 풀릴 때면 친구와 읊던 만트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래. (feat. 사는 게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평소에 잘하던 일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실수하기 십상이다. 생각할 겨를이 없으면 생각을 안 하게 되니까. 결혼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쇼핑을 했다. 휴일마다 쇼핑몰에 갔고, 부족한 건 인터넷 쇼핑으로 채웠다. 수납장이 터질 것 같은데도 부족했다. 


부족한 건 내 마음이었는데. 


우울의 늪에 빠지면 그게 잘 안 보인다.


나는 같은 방법으로 태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쇼핑이 주는 잠깐의 쾌락에 빠져 태리도 마찬가지로 장난감을 사 주면 행복해질 거라고, 무책임하게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서 치웠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태리가 왜 안 노는지,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반대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야 했다. 내가 쇼핑하기 전에 내 마음부터 돌봐야 했던 것처럼. 


방바닥에 뒹굴던 끈이나 마른 아레카야자 잎만으로도 신나게 노는 태리를 보며 반성했다. 역시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수명이 짧다. 태리한테 사 준 장난감이나 내 마음의 허기를 달래려고 산 물건처럼. 찬찬히 태리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보는 관심의 시간만으로 태리는 다시 놀이를 즐기게 됐다.


진작에 깨달았더라면 돈도 아끼고 태리도 더 행복했을 텐데. 늦게 안만큼 소급 적용해서 더 열심히 뉴 올드 장난감을 만든다. 덕분에 1년 넘게 예전처럼 장난감을 무더기로 산 적이 없다. 몇 달에 한 번 한두 개 사는 정도다. 

장난감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태리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어서 장난감을 사는 건 도박이다. 그리고 나는 도박에 소질이 없다는 걸 오랜 실패와 텅장으로 깨달았다. 


태리가 리본을 잡아준 덕에 대재활용 시대가 열려서 정말 다행이다. 돈도 굳고 태리도 잘 놀고! 


남편 걱정 마! 이제 장난감 안 사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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