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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Jan 20. 2021

동주와 함께 걷다

안소영, 『시인 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들여다보는 사나이, 돌아가다 잠시 머뭇거리다 되돌아와 우물을 또 들여다보는 사나이,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 그리고 추억을 들여다보는 사나이. 동주.     


사각모를 쓴 동주가, 갸름하고 선한 눈매에 미소를 머금은 동주의 얼굴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후우- 책장을 덮으며 깊은숨을 내쉬고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시인 동주』를 읽는 이틀간 참 많은 감정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스쳐지나고 머물렀다. 애틋하고 안타깝고 눈부시고 사랑스럽고 원통하고 슬프고 애잔하고 먹먹하고.     


몇 년 전 윤동주 영화가 나왔다길래 심야에 보러 갔다. 남편과 오랜만에 영화라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둘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으며 죽어가는 동주가 철창 밖 밤하늘을 보며 나지막이 노래하는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아름답다고 하기엔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동주의 짧은, 영화보다 영화 같은 생애를 제외하고,  아름다운 시만 마음 편하게 좀 즐기고 싶은데… 동주의 시는 그게 안 되어 불만이기도 했다. 소월도 이상도 다 불쌍하게 일찍 죽었는데 다 나라도 없이 떠돌다 제대로 쓰이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유독 동주의 시는 마음이 울렁거려 쉽게 책장을 넘기기 어렵다. 편한 마음으로 동주를 읽을 수 없어 미뤄두었다가 이제야 책을 읽었다.     



시인 동주의 눈부신 청춘, 티없이 맑고 깨끗한 고뇌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동주가 시를 쓰는 길목길목 함께 걸으며 그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시를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때 표정이 어땠는지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주의 동시가 하숙집 주인의 일곱 살 난 아들과 놀아준다고 쓴 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 천황의 이름을 외우다 아버지에게 들켜 혼쭐이 나서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동주는 말한다.     


‘뾰, 뾰, 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그러면 아이가 훌쩍이다 말고 답한다.     


‘꺽, 꺽, 꺽
오냐 좀 기다려’
    엄마 닭 소리    


동주는 아마 북간도에 있는 열두살 아래 동생 일주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연희 전문에 입학해 빳빳한 교복을 차려입고 친구들과 경성 거리를 활보할 때는 동주의 설레는 청춘이 눈부시어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이 부근에 구보, 아니 소설가 박태원의 집이 있지 않나?”
그 말에 동주와 벗들은 새삼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해 전 신문에 연재되었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다들 재미있게 읽은 터였다. 작품 속의 구보는 곧 작가 박태원이었고, 실제로 그의 벗들은 작가를 구보라 부른다 했다. 과연 구보 씨가, 아버지의 공애당 약방 문을 열고 불쑥 거리로 나설 것만 같았다. 껑충한 키에 바가지를 씌운 것처럼 둥그런 ‘갓빠’ 머리를 한 박태원 곁에는, 더벅머리에 턱수염이 무성한 짝패 이상이 해맑게 웃고 있을 것이다. 47-48p    


구보, 이상, 지용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같은 숨을 쉬던 경성 거리. 나도 그 거리 어딘가에 뚝 떨어져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멀찍이서라도 엿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조국일랑 잊고 일신의 안락을 좇아 살 수도 있었을까? 너무 맑고 깊고 깨끗한 동주의 성품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의 삶을 참회하는 청년의 가슴, 그 두근거리는 심장’으로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동주의 짧은 삶과 죽음을 애통해하기만 해서는 그의 시를 다 느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담담하고 담백하게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시가 되는 동주의 사색과 성찰의 시간들을 아주 조금이라도 같이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한 길보다 험한 길을 가야 한다면 험한 길을 선택할 양심과 용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동주도 자기 시를 하나 더 읽어주기보다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길을 걷는 길동무가 되는 걸 더 반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을 한번씩 되뇌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몇 년 전,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를 만나 한동안 행복했는데 이 겨울 『시인 동주』를 만나는 행운을 가져다준 안소영 작가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스무 살, 5월 찬란한 봄날, 교정 주변을 산책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노래한 동주의 청춘과 시가 눈부시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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