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의 힘』을 읽고
올해 내 짝꿍은 수학선생님이다. 교무실 윗층에 나란히 반도 붙어 있고 여행, 독서 등 취미도 통하는 데가 많다. 아들 생기부에 쓰기 좋다며 책을 한 권 준다, 『미적분의 힘』 . 책을 선물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 마음이 고마워 기쁘게 책을 받았다. 책의 시작은 ‘무한’이다.
무한의 정확한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수인가? 장소인가? 개념인가? 43p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수학적 질문들이 매력적이었다. ‘무한에 이르면, 모든 것이 간단해진다.’ 무한히 잘게 나눌 수 있다면 모든 다각형은 원에 가까워진다. 수천 년 기하학이 풀지 못한 원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무한’이다. 1/3이 0.3333…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것처럼 도달할 수는 없지만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다. 0.3333333…이 어디까지 갈까 궁금해 머릿속에 3을 무한히 그려 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3/10이나 33/100, 33/1000보다 1/3에 마음을 빼앗긴다. 극도로 단순해서 아름답다. 거기에 비해 33/100, 333/1000은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구질한가. 갈릴레이는 기하학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패턴을 알아내기 위해 수도 없이 경사면에 공을 굴려 홀수의 ‘법칙’을 찾아낸다. 아르키메데스, 뉴턴이 세상과 우주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쓰고 쓰고 또 써서 마침내 도출해낸 ‘공식’은 또 너무도 간결하고 아름답다. 지난 겨울, 피카소 미술관에서 그의 방대한 그림들을 훑어보았는데 미술관은 초기작부터 후기까지 변화 과정을 볼 수 있게 배치되어 있다. 보는 데만 반나절이 걸린다. 이렇게나 많이 그렸단 말인가. 데생과 소묘부터 시작해 극사실주의를 거쳐 궁극에는 몇 개의 선과 색만 남긴 추상화로 남는 게 인상적이었다. 수학자들이 세상과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공식’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꼭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최소한의 숫자와 기호만 남긴 공식들로 채워진 뉴턴의 노트가 피카소의 게르니카(그나마 내가 아는 피카소 작품)처럼 한 편의 예술 작품 같다.
모든 과학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수학적 모형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무시해야 할지 늘 선택을 해야 한다. 추상의 예술은 무엇이 필수적인 것이고 무엇이 사소한 것인지, 무엇이 신호이고 무엇이 잡음인지, 무엇이 추세이고 무엇이 요동인지 아는 데 있다. 이것이 예술인 이유는 그런 선택에는 항상 위험 요소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280p
나는 너무 많은 말을 듣고, 너무 많이 말한다. 입으로 하는 말도 많지만 머릿속에도 항상 말들이 떠다닌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인 걸까, 그런데 나는 왜 불편하게 느껴질까, 예민해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사람이 다 다르지 생각해버리고 표현하지 않는 게 좋을까. 그런 말들이 한가득이라 머릿속이 말끔하지 않다. 상대방의 생각, 감정의 ‘패턴’을 이해할 수 있는 공식을 찾아 노트 정리하듯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수학의 매력에 빠져 있던 요며칠은 주변이 온통 미니멀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