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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resson Oct 01. 2021

[소안재_ ep.0] 퇴사 그리고 귀촌

10년 45일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에 집짓고 살기.





최근,

2011년 3월 14일 입사해서 4월 31일 까지 10년 하고도 48일을 가득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 두었다.

퇴사의사는 작년 12월 말 팀장님께 보고 이후 4개월 넘게 더 다니고 그만둔 것이다.


그 기간동안 마음이 바뀔수도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의지가 확고했지에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잘했단 생각으로

하는 일에 대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추억이 있었다.

아 추억이라고 해야 할지 버팀이라고 해야 할지,




26살 입사 초기엔,

어떤 열정으로 그렇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대학 4학년 1학기가 오기전 겨울방학,

담당 교수님께 지금 생각해보면 건방져 보이지만

“교수님 4학년 학교를 다녀봤자 의미가 없을것 같아요.

이 회사(지금의 회사) 에 들어가고 싶은데 바로 실습투입이 가능할까요?

제가 알아보니 이 회사(지금 회사의 협력사)에서 실습을 해보면 좋을것 같아요.”

라고 말했었다.





자랑 아닌 자랑이지만,

대학 4년 내내 1등으로 평점 4.3으로 수석졸업을 했었다.

(물론 대학교가 좋은 대학교는 아니지만 말이다.

대학 또한 가정형편이 안좋아 용꼬리보다 뱀머리를 선택했던 것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교수님께선 놀랍게도,

내가 목표로하는 회사에 실습사원으로 추천서를 넣으셨다.




30분간의 면접을 받고 돌아와 1주일간의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는,

“다음 주 부터 출근하도록 하세요.”




그렇게 해서 나의 회사생활,

아니 슬기로운 회사실습생활이 시작되었다.





26살 3월 14일 월요일 아침 첫 출근,

당시 차가 없는 나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회사에 7시 반에 도착하여 집에 오면 밤 9~10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동기들 말고는 나만 그렇게 생활했던것을 알고 나중엔 화가 살짝 났었다.)




롯데리아 알바로 다져진 인내심과 끈기가 빛을 발휘하였다.

(20살때부터 회사 들어오기 전까지 줄곧 알바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살았었다.)

출근길 버스에서의 쪽잠은 나에게 꿀잠이었고,

퇴근길 버스에서의 쪽잠 또한 꿀맛이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버텨

27살 2012년 3월 정식사원으로 전환되었다.


그때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것 같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정사원이 된지 3개월만에 사표를 냈었다.




이유는 10년뒤 나의 모습이 그려졌었고,

스트레스로 인해 위에선 피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사표를 내었을때 주변에서는 다들말리고,

특히 부모님께선 너무 심난해 하신게 아직도 눈에 선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불효가 없었다.




홀로 등산을 가서 한없이 생각을 하던 찰나

지금의 와이프 (당시는 지인관계)에게 물어보니 잘못된 선택이라고

나를 설득시켜주었고, 나 또한 신기하게 설득당했다.


다음날 아침 바로 부장님께 찾아서 죄송하다고

사표를 반려처리 부탁드린다 하였다.




당시엔 그렇게 힘들었던 스트레스가

10년뒤 바라보니 그냥 일상적인 일이었더라.




그렇게 몇번의 고비들을 넘기게 되었고,

정신차려보니 여기까지 왔고 그 기간은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작년 4월 말 갑작스럽게

뇌수막염과 심내막염, 안내염, 균혈증이라는 병명을 얻어 한달 반동안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 와이프와 가족들과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처음 퇴사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고,

딩크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렇게 퇴사와 딩크족이 결심이 되니,

자연스레 미래의 꿈이었던 귀촌이 자연스레 스토리가 이어져갔다.



어릴적 힘들게 살아와서 그랬을까,

지금까지 잘 버텨와서 그랬을까

10년전의 어머니는 그만둔다 했을때 한없이 등짝을 때리시며 말렸는데,

지금의 어머니는 그만하면 되었다고 둘이 행복한게 최선이라 하셨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때 항상 하나뿐인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하고 진행하곤 한다.

토르와 로키를 키우게 된것도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했었다.

첨에는 질색팔색 하시더니 지금은 안부를 물으신다.




그리하여 작년 12월 고심끝에 퇴사한다고 팀장님께 구두보고하고,

그때 부터 퇴사와 귀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예전에 공간기록을 인스타그램에서 만나

나중에 귀촌하게 되면 공간기록과 같이 집을 짓고 싶어요 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렇게 만난 우연이 진짜 인연이 되었고,

2월에 설계계약을 하고 몇 차례 미팅 끝에 세부 도면까지 진행하였다.






2021년 1월에 매매한 토지







공간기록 건축사분들과 토지에서의 미팅








드론을 통한 토지 분석








당시 찍은 드론샷











초안 미팅







초안 미팅










공간기록과의 설계 계약서




2021년 2월 22일 드디어 공간기록과의 설계계약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귀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두려움은 당연히 계속 안고 갔다.



"이게 정말 잘한 짓일까?"

"시세가 오르고 있는 노른자 땅의 아파트를 팔고 시골로 간다니 미친짓 아닐까?"

"목구조, 철구조, 콘크리트구조, ALC구조 뭐로 하지?"

"난방비는 괜찮을까?"

"벌레는 괜찮을까?"




수많은 두려움과 걱정은 지속적으로 떠오르고 있었지만,


단 한가지만 생각했다.

와이프와 둘만 생각했다.


그러니 모든 우려는 심플해지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지금의 선택이 나중에 후회 할 날이 올까?


아마 후회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앞으로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갉아먹는 삶을 살지는 않겠다.

내 인생 목표는 나와 내 주변사람 행복하게 만들기이다.



제 2의 인생 시작이 설레인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공간기록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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