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이제 또 눈을 떴으니 뭘 먹어야 하는구나.'였다. 임신하고 입덧으로 무식욕자가 되어버린 나는 뭘 먹는다고 생각하는 게 아주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먹고 싶은 게 없어도 배는 고프고 배 속에 아기는 걱정되고 뭐라도 먹어야 하는 게 늘 곤욕이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에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는 임산부는 출근 전 매일 도시락을 싸야 한다. 뭘 먹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도시락은 또 뭘 싸야 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한숨이 푹푹 나온다. 그렇다고 안 싸면 먹히지 않는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또 하루 종일 속이 부글 거릴 테니까 뭘 먹어야 할지 생각하고 뭘 먹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먹는 생각을 하니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응? 왜 그래? 어디가 안 좋아?"
아내 민감도가 거의 100%인 남편은 작은 한숨소리에도 벌떡 눈을 떠서 내 컨디션을 살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한숨이 나온 거야."
"아니 너 어디 안 좋지? 또 말 안 하는 거지?"
눈을 맞추고 어디가 안 좋은지 살피기 바쁘다.
"나 밥 먹기 싫어!!!! 아무것도 안 먹고 싶어!!!!"
갑자기 소리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그래도 먹어야지. 밥을 안 먹으면 어떡해.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보자."
임신하기 전에도 내 밥을 늘 챙기던 남편이기에 '아기 때문에 먹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전혀 없었다. 만약 아기 때문에에서 '아기'라도 나왔다가는 불을 뿜었을 거다. 내가 지금 무언가를 먹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아기' 때문이지만 남편까지 아기 편만 들었다가는 임산부의 서러움을 폭발했을 거다. 임신하기 전에도 임신한 후에도 남편에게 '늘 아내를 우선해야 한다.'를 세뇌시켜놓은 덕인지 남편은 이런 대처는 거의 완벽하게 하는 편이다. 거의 100점에 가까운 답을 늘 내놓는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남편이 출근을 하면서 한 마디 툭 던지고 나갔다.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그런데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꼭 먹어야 한다?"
안 먹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남편 덕에 힘을 내서 겨우 샐러드와 과일 몇 종류를 챙겨 도시락을 싸서 집을 나섰다. 임산부는 거의 미운 일곱 살에 버금가는 청개구리다. 그냥 안 먹어도 된다는 말이 작은 위안이 되었다. 밥을 안 먹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늘 밥부터 챙기는 남편이 안 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말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주는 모든 돌발 상황을 거의 100점으로 풀어간다. 아침부터 생떼를 부리는 아내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집을 나설 수도 있겠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다정한 말로 모든 상황을 풀어나간다. 정말 나에게 늘 정답인 그런 남자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나도 출근 준비를 하면서 배에다가 손을 올리고 가만히 말했다.
"아가야. 엄마는 역시 아빠가 1번이야. 섭섭하겠지만 엄마는 아빠가 제일 좋아. 네가 나오고 또 바뀔 수도 있겠지만 엄마한테는 아빠가 1번이고, 아빠한테는 엄마가 1번이니까. 섭섭해하지 마라. 너도 어차피 너만의 1번을 찾는 삶을 살게 될 거야. 그때 엄마도 섭섭해하지 않을게."
아기와 아주 작은 약속을 했다.
콩깍지가 벗겨질까 봐 늘 조마조마했는데 벗겨질 틈이 없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늘 주는 남편의 행동과 말 한마디 한마디가 늘 콩깍지를 보수하며 살고 있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그 사랑에 늘 되갚아주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