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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Jan 28. 2021

19. 나는 남편이 꿈꾸던 99.9%의 아내입니다.

퇴근하고 저녁을 차리고 남편을 기다리다가 같이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남편은 수다쟁이인 편이긴 하지만 밥 먹을 때만큼은 밥에 진심인 편이라 밥에만 집중하거나 씹는데 집중하곤 했는데 그날따라 나에 대한 칭찬을 시작했다.


"여보가 해준 음식은 진짜 맛있어. 진짜 맛있는 건지 나한테만 잘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어."

"가끔은 MSG일 때도 있고, 가끔은 정성과 사랑을 담뿍 담은 시간의 싸움이기도 하지."

"반찬 하나에 국 하나 일 때도 정말 맛있는데, 이렇게 반찬이 여러 개니까 막 상다리 부러질 것 같아."

"갑자기 반성하게 되네. 여보.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요즘 남편이 치아교정을 하고 있어서 바깥에서 밥을 먹으면 하루 종일 입이 답답하고 신경 쓰인다고 해서 집에서 밥을 먹었다. 점심을 굶어서 아침과 저녁을 늘 차려주었는데 가끔은 이식(二食)이라고 놀리면서 이러다가 삼식(三食)이가 되면 어쩔 거냐며 놀리기도 했는데 갑자기 반성하게 되었다. 


"나 진짜 결혼 잘한 것 같아. 여보는 내가 어렸을 때 결혼하면 이런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했던 아내의 모습에 99.9% 일치해."

"여보. 지금 밥이 맛있다고 너무 흥분한 것 같아. 그런데 모자란 0.1%는 뭔데?"

"밥 잘 안 챙겨 먹고 면 먹는 거."

"그게 뭐야! 나는 면순이야! 이미 알고 결혼한 거잖아! 그리고 요즘엔 밥도 잘 챙겨 먹으려고 노력 중이야."

"그러니까. 밥만 잘 먹으면 100%야."


이 남자는 왜 키는 175에 덩치도 산만한 나를 못 먹여서 안타까울까. 굶으라고 윽박질렀으면 마구 먹어서 100kg도 넘어 줄 준비가 되어있는데 '늘 밥은 챙겨 먹었냐. 뭐 먹었냐. 간식은 먹었냐.' 내 입에 뭐 들어가는 걸 우선으로 챙긴다. 가끔 입맛이 없다고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을 짓고 있다. 정말 이 사람은 어떤 마음인 건지 그 속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


만약에 내가 이 사람에게 완벽한 아내가 되기 위해서 나를 꾸미는 게 있다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그냥 나로 그냥 당신이 좋아서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싶고, 같이 즐겁게 살고 싶어서, 당신이 즐거운 게 좋아서 그렇게 살고 있는데 갑자기 99.9%의 아내라고 하니 그냥 내가 당신의 짝이었나 싶다.


"나 만약 당신이 내 아내가 아니었으면, 아마 매일을 화내고 싸우고 그러면서 살 거 같아. 그런데 나는 당신한테 화가 안 나. 당신도 알지? 나 당신한테 화 안 내잖아."

"응. 화 안 내지. 정말 착해."

"나도 그게 이상해. 신기하고. 여보 만나기 전에는 처음에는 좋아도 결국에는 화내고 내 멋대로 하고 말 안 듣고 했는데. 당신한테는 그러지 않게 돼."


연애 2년 결혼하고 1년 넘게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갱신이다. 나는 그게 내 성격을 남편이 다 받아줘서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또 거꾸로 생각하고 있다. 그냥 나한테는 화가 안 난단다. 말도 잘 듣게 되고 그 이유를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오늘 회사에서 별일 없었어? 어제는 시무룩해 보였는데 오늘은 기분이 지나치게 좋은 거 같네."

"아니. 오늘 회사에서 이슈 2개나 터졌어. 그래서 진짜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았거든?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다시 기분이 좋아진 거야."

"아이코. 신기하고 다행이네."

"여보. 밥 더 주세요."

"안 돼!"

"밥을 당연히 더 줘야 되는데 더 안 주는 것도 모자란 0.01%야. 국을 시원하게 끓이질 말던가. 반찬을 맛있게 하질 말던가 밥을 더 먹을 수밖에 만들어 놓고 이러는 거 문제야. 문제."

"그렇게 만 번 채울 기세인데? 밥 더 줄테니까 다시 채워 놔."


내가 누군가에게 99.9%의 존재가 된 적이 있던가. 늘 모자라고 모자라다고 생각했었다. 자식으로서도 100점은 아니었고, 학생으로서도, 직장인으로서도 어디에서도 그런 존재가 되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달달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담백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나도 당신이 내게 그런 존재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가 결혼이란 것을 했을까. 아낌없이 주고도 아깝지 않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고,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며, 엄마 아빠에게는 또 든든한 사위 역할도 빈틈없이 하는 당신이 나의 남편이라는 것이 늘 놀랍다. 


당신은 내 인생 계획에 없던 남편이고, 내가 상상하지도 않았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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