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는데 자다 일어나서 눌린 머리에 눈도 못 뜨고 잔뜩 찡그린 얼굴로 다다다다 뛰어오더니 뽀뽀만 쪽 해주고 휙 뒤돌아서 다시 다다다다 뛰어서 침대로 점프하는 남편을 보았다.
월요일에 쉬는 나는 월요일 아침이면 늘 남편 아침밥을 차려주고 침대에서 꼬물꼬물 하고 있다. 남편이 출근한다고 인사를 하면 나는 늘 "출근하기 딱 좋은 날씨네. 갈 때 가더라도 뽀뽀 한번쯤은 괜찮잖아.(신세계 이중구의 대사)"라고 외치면 남편이 뽀뽀해주고 출근한다. 가끔은 "갈 때 가더라도…."라고 다 말하기도 전에 "나 늦었어~ 얼른 뛰어와!" 현관에서 외치면 다다다다 뛰어가서 뽀뽀해주고 휙 돌아서 침대로 점프하곤 했다.
그런데 이거 거꾸로 당하니 기분이 상당히 괜찮다. 자다가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잔뜩 찡그려서 못생긴 얼굴로 다다다다 뛰어와서 뽀뽀만 쪽 해주는 뒷모습이 동글동글하니 귀엽다. 이 맛에 출근하는구나 싶다.
이렇게 가끔 남편이 내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붙여 넣기 하듯 할 때가 있는데 늘 좋은 거만 따라 하는 건 아니다. 남편이 과자를 먹다가 흘리면 "어허! 누가 소파에서 과자 먹다 흘리랬어!" 이러면서 궁둥이를 찰싹찰싹 때리는데 가끔 그것도 거꾸로 당하기도 한다. 또 남편이 뭘 가져다 달라고 하면 "싫은데~ 싫은데~" 이러면서 짱구처럼 약 올릴 때가 있는데 그것도 거꾸로 당하기도 한다.
나를 따라 하는 따라쟁이 남편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꼭 모든 것을 흡수하는 4살짜리 아이 같기도 하다. 애 앞에서는 숭늉도 못 마신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거 같다. 물론 나보다 3살 많은 남편이지만 꼭 내 앞에서는 4살짜리 어린아이 같아진다.
대부분 내가 남편을 대할 때 나오는 많은 행동들이 행복하고 좋아서 장난기 가득 담아 하는 행동들이 많기 때문에 남편이 나를 따라 할 때도 그냥 웃음이 난다. 물론 나도 남편을 따라 할 때도 많다. 서로 참 많이 닮아가는 것 같다. 거울처럼 나를 닮아가는 남편을 보면 더 좋은 아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 남편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웃음이 난다. 그렇게 앞으로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제도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서 나도 모르게 "참 행복하다."라고 말했더니 "나도 행복하다."하고 남편이 따라서 말했다. 남편은 요즘 회사에서 업무가 늘어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퇴근하는 길에 늘 전화를 하는데 보통은 전화를 할 때는 피곤한 기색을 감추는 편인데, 그날따라 여과 없이 피곤하고 지친 음성에 마음이 쓰였었다. "여보. 오늘 엄청 힘들고 피곤했다며 뭐가 행복해?"라고 물었더니 "집에 오면 행복해. 회사 가면 다시 세상 최고의 불운아가 됨." "그게 뭐야. 집에서 충전하고 회사에서 다 쓰고 오는 구만!" 괜히 좋으면서도 핀잔을 주었더니 회사 가면 표정이 이렇게 되고 집에 오면 표정이 이렇게 된다고 하면서 갑자기 표정 쇼가 진행되었다. 결국 같이 웃었다.
나를 닮은 행동을 하는 남편을 보면 이 사람이 나를 참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낀다. 내가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나를 감싸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나 참 사랑받는구나 하고 느낀다. 그렇다고 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가끔 삐뚤이처럼 굴 때도 있다. 허리가 아프면서 5~6시간 게임을 한다던지, 담배를 끊기로 했는데 담배를 피운다 던 지 하면서 말을 안 들을 때도 있다. 그래도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이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뜻대로 안 되는 구나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가끔 남편한테 모성애 같은 게 툭 하고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말썽 부리는 아이처럼 말을 안 들으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하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부탁하고 못 하게 하는 건 대부분 건강과 관련된 잔소리라서 상충되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