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토끼 같은 남편 집에 혼자 두고 출근하는 건 조금 힘들어요. 하하!"
"신혼이면 그게 제일 힘들겠네요! 하하!"
주말에 출근하고 일하고 있으면 이따금 이용자들이나 강연자가 묻는다. 그러면 작은 투정을 부려본다. 오늘도 토끼 같은 남편을 혼자 두고 출근해야 하는 주말이 되었다. 나의 직업 특성상 우리 부부는 휴일을 함께 보낼 수가 없다. 나는 코로나 19로 미뤄진 업무로 벌써 한 달째 주말은 모두 출근하고 있다. 같이 휴일을 보내지 못하니 둘이 보내던 시간이 너무 그립다.
하루 종일 소파에서 뒹굴거리고, 영화를 보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점심이나 저녁은 밖에서 먹기도 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손 꼭 잡고 쇼핑 기분을 내기도 하고 대단할 건 없지만 소소한 주말의 작은 기쁨이었다. 그런데 내가 쉬는 평일에는 남편이 출근하고, 남편이 쉬는 주말에는 내가 출근한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이산가족이 따로 없다.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에 뽀뽀세례를 퍼붓고 출근하기도 하고, 괜히 이불을 빨겠다며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소파로 쫓아내는 심술을 부리고 출근할 때도 있다.
우리는 서로의 개인 시간을 존중해주는 편이었다. 각자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을 포함해서 각자의 취미도 존중해주었다. 남편이 게임하는 시간, 내가 친구를 만나는 시간 등 각자의 시간을 서로 배려해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게임하고 있는 남편을 향한 투정도 많아지고, 주말에 약속을 잡는 남편도 미워진다.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함께 있는 시간이 아무리 애틋해도 각자 보내려는 시간이 너무 야속해진다.
남편은 집에서 게임을 즐겨하기 때문에 코로나 19의 여파가 없었지만, 친구들 만나기 좋아하고 여행 가길 좋아하던 나는 요즘 회사를 출근하는 시간을 빼고는 늘 집에서 혼자 있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집에 오는 시간이 반갑고 같이 놀고 싶고 붙어있고 싶고 남편에 대한 집착도(?)가 높아졌다. 하필이면 남편이 석 달에 한 번쯤 동창 모임이 오늘이다. 평소에는 늘 시원하게 다녀오라고 하고 노는 동안 전화도 하지 말라고 하고 나도 혼자 여유롭게 배달음식을 시켜 혼술을 하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 시간이 매우 행복했는데 오늘은 왠지 심술이 난다.
생각해보면 주말에 일하는 아내를 만나 주말을 혼자 보내야 하는 건 남편이니 삐져야 하는 건 오히려 남편이다. 그런 아내를 배려해서 혼자 밥도 잘 차려먹고 설거지도 잘해놓고 분리수거도 하고 소소한 집안일도 척척 처리해주는 백 점짜리 남편이다. 그래도 심술이 나는 건 결혼하고 1년 동안 내 취미가 '남편이랑 놀기'로 바뀐 탓이다. 지구력이 없는 나는 진득하게 하나의 취미를 오랫동안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도 신혼 초기라 잠깐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어째서인지 날이 갈수록 더 남편이랑만 놀고 싶다. 남편이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꾹 참고 남편이 혼자 있을 시간을 준다. 이것은 남편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이렇게 남편을 좋아하다가 한 순간 지겨워지면 어떡하나 늘 걱정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남편이랑 놀기가 지겨워지는 때가 온다면 '나 대신 남편이랑 놀아주는 친구들도 없고 남편이 취미도 없어지면 그때는 또 어떡하나? 지겨워도 계속 남편이랑만 놀아야 되면 그때는 미워질 거 같은데!' 이런 오직 나를 위한 이유로 남편이 혼자 게임하고 친구 만나러 가고 하는 시간을 꾹 참고 견디고 있다.
오래오래 호호 할머니가 돼서도 남편이랑 노는 게 제일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은 남편이 취미와 친구를 잃지 않도록 서포트해야 할 때다.